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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생각하는 개똥클럽 ㅣ 높새바람 20
수지 모건스턴 지음,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8년 7월
평점 :
솔직히 제목보다는 수지 모건스턴이라는 작가에 이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너무나 유명한 <조커>라든가 <공주는 등이 가려워>, <엉뚱이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 등은 물론이고 <공주도 학교에 가야한다>, <우리 선생님 폐하>, <어느 할머니 이야기>, <0에서 10까지 사랑의 편지>, <딸들이 자라서 엄마 된다>, <중학교 1학년> 등을 읽으며 유쾌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라 기쁜 마음으로 책을 펼칠 수 있었다. 수지 모건스턴, 쏙 빠져들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즐겁게 이어가면서도 할말은 다 하는 작가가 아니던가.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간혹 식당이나 옷가게에 액자처럼 걸려 있는 성경 구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였다. 주인공 자크가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친구와 머리를 맞댄 끝에 만들어낸 개똥 클럽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고 유쾌했기 때문이다. 이 책 <개똥 클럽>은 프랑스인들의 유별난 개 사랑의 이면을 살짝 들추면서 환경문제를 언급하고, 어린 친구들의 기발하고 엉뚱하고 야무지고 발랄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길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개똥’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개똥’, 거리환경을 해치는 불결한 배설물에 불과하다고 보면 그만이지만, “개를 교육시킨다는 건 자기 자신을 교육하기 시작하는 것이며 주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의식하는 것이며 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의식하는 거”(p.47)라는 자크의 할머니 말씀대로라면 ‘개똥’은 곧 우리의 버려진 양심과 책임감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징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심심함이 클럽 결성의 원동력이었지만 개똥문제를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지며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행동으로 직접 부딪치며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고 깨달아가는 아이들의 좌충우돌하는 깜찍 발랄한 모습들이 부럽기도 했다. 특히 개똥 문제로 자크와 첨예한 대립을 이루었던 뤼씨가 자기 개를 사고로 잃고 슬픔에 빠지자 자크가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장면은 어느새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화해할 만큼 성장한 아이들의 멋지고 흐뭇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즐겁다. “부주의한 어른들을 고발”(p.128)하면서 “어른들에 대해서 지독하게 실망”(p.128)했다는 아이들의 발언에야 구차한 변명이라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어쩌면 그게 또 보기 싫고 냄새나는 개똥 하나를 보태는 일인 것 같아서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 예순을 넘겼다는 수지 모건스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이제 소위 말하는 ‘감각’을 잃을만한 나이인 것 같은데도 여전히 건재함을 느끼게 한다.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단다. 똑똑하다는 것은 하나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전부 다 이해하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되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는 것까지 제대로 다 해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다 ‘꿈’일 뿐이야.”(p.126)같이 다분히 교훈적이고 잔소리스러운 말을 티 나지 않게 슬쩍 이야기 속에 끼워 넣을 줄 아는 재주를 가졌고, 부유한 집안 아들인 티에리를 두고 “그렇지만 애들이 걔를 안 좋아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게 아니고 걔한테서 보이는 우월감 때문이다. 걔는 돈과 물질적인 것들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p.23)라며 소비를 과시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속내를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 살짝 꼬집어주는 능력도 지녔다.
그러고 보니 이 얇은 책 속에서 ‘개똥’이라는 글감 하나 가지고 환경, 양심, 책임감,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 현대인의 소비 과시, ‘꿈’을 이루기 위한 집요한 노력과 ‘똑똑하다’라는 말의 의미까지 참 많은 문제와 가치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수지 모건스턴의 글들은 대부분 말끔하게 정돈된 세련되고 깨끗한 방보다는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산만한 방을 닮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온갖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것 같은 그 방에서 구석구석에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내고 그 방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방주인의 너그럽고 푸근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에 나도 모르게 편안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 느낌이 좋아서 수지 모건스턴의 책을 만나면 반갑고 자꾸 다시 찾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