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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풀 도감 (양장) - 우리 땅에 사는 흔한 풀 100종 ㅣ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10
김창석 글, 박신영 외 그림, 강병화 외 감수 / 보리 / 2008년 7월
평점 :
책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참 보리답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이 많이 들고, 공이 많이 드는 만큼 책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나 비용도 많이 들었을 텐데, 출판사 이익을 따지자면 이렇게 만들기도 어려운 풀 도감 같은 책 말고 재미있는 창작 그림책이나 아니면 외국의 유명 작가의 그림책 판권을 따와서 출판하는 편이 더 쉬웠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풀 도감을 만들더라도 더 쉽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공을 들여 세밀화를 그려서 분류하고, 설명을 붙이고, 다르게 불리는 이름을 찾아 적어 놓고, 우리 이름으로 찾아보기까지 따로 책 뒷부분에 실어놓고.... 무엇보다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봄, 여름이면 화단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풀들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한 번은 큰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명아주’를 가져오라고 한 적이 있었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는 ‘명아주’란 풀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이라는데도 말이죠. 그 이후로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여전히 모르는 풀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책 속에서 이름은 모르지만 모습은 낯익은 풀들을 보고 반가웠던 것 같아요. 올 여름에는 화단에 내놓은 에어컨 실외기 앞에 자라난 키 큰 풀들을 뽑아냈었는데요, 풀 도감 책을 보니 그 풀이 바로 명아주였습니다. 큰아이 초등학교 때 명아주를 몰라서 아무 풀이나 뽑아 보냈었는데 말이죠. 알게 된 풀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큰아이 방 베란다 창문을 열면 가득 돋아난 풀이 있는데, 그 풀의 이름은 ‘질경이’더군요. 질경이는 놀이터 나무 밑 빈터에도 많이 돋아있는데, 볼 때마다 무슨 풀인데 이렇게 많이 무리지어 돋았을까 하면서도 그냥 지나쳤었거든요. 또 우리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주 작은 하늘색 꽃이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아주 작은 꽃이죠. 특히나 큰딸이 봄에 그 꽃을 보면 참 반가워하는데요, 그 꽃 이름이 ‘꽃마리’였네요. 어릴 적 친구들과 우산을 만들며 놀던 풀의 이름도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바랭이’라는 풀인데, 강아지풀만큼이나 흔하게 보던 풀이었거든요.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가르쳐주셨던 ‘꿀풀’과 ‘엉겅퀴’, 결혼하고 시댁어른들과 여행을 갔을 때 시어머님이 가르쳐주신 ‘아기똥풀’, 얼마 전 산소에 갔다가 만난 ‘달맞이꽃’, 도서관 가는 길에 막내가 나팔꽃이라고 착각했던 ‘메꽃’... 책에 실린 풀들을 보며 제 기억 속의 풀들을 기꺼이 꺼내놓게도 되네요.
그렇게 하나하나 정겹게 풀의 이름과 모습을 읽어가다 보면 가슴 속이 훈훈해집니다. 게다가 풀 하나하나에 적힌 설명글까지 읽다보면 그 하찮아 보이던 풀의 강하고 소중한 생명과 그 착하고 소박한 품성이 느껴져서 공연히 벅차지기까지 합니다.
전 이 책을 읽고 씨앗도 숨을 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생명을 담은 아주 작고 단단한 그릇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씨앗 자체가 숨을 쉬고 있다니 놀랍더군요. 또 광대나물이나 제비꽃 같은 풀에서는 꽃잎을 열지 않는 ‘폐쇄화’를 볼 수도 있는데, 곤충이나 바람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안에서 스스로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랍니다. 풀들도 참 똑똑하고 영리하게 나름대로 어려움을 해쳐나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흔하고 쓸모없는 잡초라고 여기기 쉬운데, 이 책을 보니 이들의 쓰임새가 또 놀랍습니다. 거의 다 약으로 쓰이는 건 기본이구요, 훌륭한 장난감이 되기도 하고, 생활도구를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하고, 빈궁할 때 먹거리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강아지풀로 밥을 짓거나 죽을 쑤어 먹고, 그 뿌리를 캐어 기생충 약으로 썼다는 글을 읽고는 강아지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도감’이라는 책의 형식에 따르다 보니 좀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게 사실입니다. 처음 책을 펼쳐보고는 참 좋은 책이긴 한데 아이들에게 이 책이 먹힐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했죠. 좀 더 재미있어 보이게 편집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일었고요. 그런데 읽기 쉬운 설명글과 ‘풀’이라는 친근한 주제가 도감이 갖는 형식의 딱딱함을 많이 벗겨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중1 아들 녀석이 반겨합니다. 여름방학 과제에 과학탐구보고서를 써가야 하는 게 있는데, 이 책을 참고로 우리 풀에 대한 보고서를 쓰면 되겠다고 좋아하네요. 날씨 좋은 날, 아이와 함께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겠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의 화단만 뒤져도 만날 수 있는 풀이 꽤 될 것 같아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