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내가 반한 작가의 세 권의 책이다.



 

 

 

 


 

 

 

 

바로 '유은실'이라는 작가인데,
내가 읽은 세 권의 책에 쓰여진 작가 소개 글을 종합해 보면,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원래는 덕성여대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했는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아 명지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고 한다.  <창비 어린이> 2004년 겨울호에 단편 <내 이름은 백석>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에 반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고, 헌책방에서 사 모은 40여권의 린드그렌 동화책이 보물 1호라고 한다.  
서울독산초등학교 2학년 때(<우리집에 온 마고할미>의 윤이만할 때), 구구단 외우는 게 제일 싫었단다.  텃밭이나 장독대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아서 외로움을 달래던 생각이 많이 나는데, 식구들은 하루에 밥을 네 끼씩 먹고 놀 궁리만 했다고 한단다. 어른들 말 엿듣기를 아주 좋아했고, 단편동화, 단편소설, 단편영화 등 각종 짧은 것을 좋아한다고.  고들빼기 김치, 보랏빛, 손때 묻은 시집, 조용필 노래도 좋아한다.  사람 중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제일 싫고, 책받침 중에서는 19단표 책받침이 제일 무섭다나..  

이 달에 처음 만난 작가다.  책은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만나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만나기까지 왜 이렇게 게으름을 부렸던 걸까.  도서관에서 빨리 가자고 보채는 유빈이의 성화에 약간 펄이 들어간 보랏빛 표지가 맘에 들어 서둘러 뽑아들었던 책이 바로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었다.  유빈이가 보채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책들을 꼼꼼히 살피고 몇 권을 뽑았다 다시 꽂았다 하다가 결국 자주 읽던 작가의 책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얼렁뚱땅 어쩌다 보니 만난 작가지만,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읽으며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만국기 소년>과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까지 읽어버렸다.  그러고도 난 입맛을 다신다.  언제 또 이 작가의 새 책이 나올까, 하고.. 

황선미 님의 작품을 읽으며 아이의 심리를 참 잘 그려내는 작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작가는 아이들의 ‘심리’ 그 이상의 것을 그려내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읽다보면 반짝이는 모래알이 떠오른다.  햇빛을 받으면 예쁘게 반짝이지만 예쁘다고 손바닥으로 싹싹 문지르다보면 까끌까끌한 질감 때문에 따끔거리는 모래알 말이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만국기 소년>,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내면에서 들끓는 치열한 갈등과 고민으로 괴로워한다.  아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속 시원히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불만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서 비읍이는 이모에게 전화로 자기와 싸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엄마를 보며 ‘나를 위로할 사람은 나뿐’이라며 쓸쓸해한다.)

작가가 정말 아이들 편에 서 있구나, 아이들 마음으로 어른들 세상의 복잡하고 너저분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어른들의 기준으로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세상이 정말 힘들 것 같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서는 비읍이와 엄마 사이의 갈등과 할머니와 살고 있는 친구 지혜의 가난하고 쓸쓸한 가정환경이 비읍이가 가장 고민하고 속상해하는 문제다.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는 작가의 다른 책들에 비해 유쾌한 편이기는 하지만 주인공 윤이가 그리 밝고 명랑한 아이 같지는 않다.  간혹 가사분담의 문제로 갈등을 빚는 엄마 아빠 틈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듯 하고, 그래서인지 우락부락하고 씩씩하며 힘이 세고 일을 잘하는 마고할미(?)는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호기심을 갖고 다가가 어쩌면 의지하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만국기 소년>의 경우엔 어른의 세계가 더 리얼하게 그려진다.  아이들은 어른들 때문에 불안하고 고달프며,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안쓰럽다고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상황 때문에 힘들고 속상하지만,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그 어려움을 묵묵하게 감내할 수밖에 없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속의 ‘그러게 언니’를 제외하면 아이를 이해해주는 어른이 눈에 띄지를 않는다.  오히려 어른을 이해하려는 아이들의 안간힘이 가슴 짠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세 권의 책들은 마음에 참 커다란 자국을 남겼다.  까끌까끌하고 따끔따끔하고 얼얼하고 욱신거린다.  아무래도 책이 가진 서정적인 힘이 참 큰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을 참 잘 대변하고 있고, 그 대변하는 말투가 참 단단하고 깔끔하고 예리하다.

앞으로도 얼렁뚱땅 우연히 좋은 작가를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길을 가다가 주은 돈으로 복권을 샀는데 제대로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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