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학교에 가야 하는 수요일이면 일찍 일어나주는 유빈이. 부지런히 밥 먹이고, 감기약도 챙겨 먹이고, 볶음밥에 오이지무침, 부침개를 곁들여 도시락을 싸가지고 집을 나섰다.
장마철이라는데 요 며칠간 날씨가 참 좋다. 아이 데리고 움직이는데 날씨 좋다는 건 이만저만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버스를 타고 다니는 뚜벅이인 나로서는 더더욱.
책엄책아 도서관에 들어서니 벌써 엄마들 몇몇이 와 계시다. 2층으로 올라갔는데, 히~~ 오늘은 선물까지 안겨 온다. 도서관 정기간행물 코너나 서점에서 눈인사만 주고 받았던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잡지 과월호다. 이 잡지가 '보리'출판사에서 펴내는 거라는 걸 처음 알았다. 잡지 속을 휘리릭 훑어보니 일단 심각하고 진지하지 않은 게 마음에 든다. 만화조차도 '지식과 정보 학습'이라는 교육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요즘 세상에 부드럽고 따뜻하게, 일부러 빙 에둘러가는 여유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담긴 이 잡지가 참 신선해 보였다.
오늘 강의를 들을 주제가 '마주 이야기'다. 글쎄... 유진이나 명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해보지 못했던 거다. 그 때는 '언어전달장'이라는 건 있었지만, '마주 이야기'는 못 해 본 것 같다. 오늘의 강사 박문희 님은 '못 생기고, 공부 못 하고, 느려터졌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풀어놓으셨다. 그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모인 엄마들이 모두 깔깔대며 웃었고, 그렇게 '못 생기고, 공부도 못하고, 느려터졌던' 박문희 님의 오늘 모습에서 '외모지상주의에 1등을 위한 경쟁을 강요하고, 빨리빨리 과제를 해치우기를 독촉하는' 요즈음의 맹목적인 교육열의 헛점을 발견했다.
'똥을 푸든지, 거지가 되든지' 상관말라는 악담(?)을 듣고 자란 분치고는 너무나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처럼 보이기에,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1등이 아니면 불행하다는 식의 살벌한 삶의 공식을 몸소 시원하게 뒤엎으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신 삶으로 증명해 보이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문희 님은 강조하셨다. 우리가 하고 있는 '열심히 가르치려고만 하는 교육'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막고 무조건 '들으라'고만 하는 교육이라며 아이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말로 쏟아낼 수 있는 교육이 참된 교육이라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말 속엔 아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들어 있으며 그 '문제'를 들어주고 알아주고 감동해주는 데서 아이들의 자신감이 싹트고 새로운 교육이 출발할 수 있다고. 아이들의 말대꾸는 버릇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이다.
워낙 편하고 재미있게 강의를 하셔서 중간중간 눈물이 쏙 빠지게 웃으며 들었지만, 한글 떼기나 영어교육방법 등등에 밀려서 놓쳐버리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강의였다.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아이의 머릿속에 뭔가를 집어 넣어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쫓겨서 정작 아이의 정서와 감정을 살피고 돌보고 풍부하게 가꿔주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그건 네 살 배기 유빈이에게 뿐만 아니라 중학생 두 큰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박문희 님은 맨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아이의 마음을 청소해 주는 것이다."
엄마는 쓸고 닦아야 할 것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할 것 같다.
참고 도서 ; 1.<침 튀기지 마세요> (박문희/고슴도치)
2. <튀겨질 뻔 했어요> (박문희 엮음, 이오덕/고슴도치)
3. <들어주자 들어주자> (박문희 지음/ 지식산업사)
4.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 (백창우 작곡/아람유치원 어린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