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튼 -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과 배려
닥터 수스 지음, 김서정 옮김 / 대교출판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왔었다는데, 난 왜 그걸 깜깜 몰랐을까.  큰아이 둘은 극장으로 애니메이션을 보러가기엔 너무 컸고, 막내는 극장 나들이를 하기엔 너무 어려서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었나 보다.  그림책 호튼을 읽고 나니 애니메이션이 궁금해진다.

이 책 속의 착하고 익살스러울 것만 같은 표정의 코끼리 호튼을 바라보고 있자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크고 동그란 눈에 환상적인 속눈썹은 보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아무리 작은 소리도 들을 줄 아는 천부적 재능은 존경스럽다.
‘잘 듣는’ 능력을 가진 아이를 난 알고 있었다.  미하엘 엔데의 책 <모모>의 주인공도 ‘진정으로 마음을 기울여 사람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난 호튼의 이야기에서 자꾸 모모를 떠올렸다. 


먼지뭉치 속 작은 인간의 아주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작은 호소에 최선을 다해 행동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호튼.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같잖은 처세술이 공감을 얻은 지 오래인 우리 사는 세상에서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라.”는 교훈이 아이들에게 잘 먹힐까?  단지 책 한 권 읽어줬다고... 좀 궁상맞은 염려를 해보게 된다.


나는 이 책을 두 가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사회 안에서 호튼이나 다른 정글 속 동물들처럼 상대적 강자의 입장에 놓일 때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으로는 먼지뭉치 속 작은이들처럼 상대적 약자의 입장에 놓일 때도 있다.  <호튼>은 이 두 입장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아닐까.  아주 아주 작고 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호튼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강자의 바람직한 모습과, 내가 아무리 작고 힘없는 사람일지라도 함께 뭉쳐 목소리를 내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마치 요즘의 촛불처럼!!!)는 사회적 약자의 바람직한 모습 말이다.  이 두 모습이 우리에게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사는 세상도 정말 행복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이 아려오는 건 그게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소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만 소통이 가능한 세상은 좋은 세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호튼이 먼지뭉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듯이, 나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먼지뭉치 속의 사람들을 인식할 수 없었던 캥거루나 원숭이들처럼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과 목소리를 나도 내 편의에 따라 무시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온 적이 많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 속의 먼지뭉치 속 작은이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좀 더 넓게 본다면 소수민족들, 제 3세계 국가들 등을 상징한다고 본다면, 내가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며 “너도 호튼 같은 사람이 되어라.”고 말할 자격이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나의 경험들이 그리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배우고 자라나야 한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려면 말이다.  적어도 나보다는 소통에 능한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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