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됐다.  아침에 저 비를 뚫고 아이랑 어떻게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도서관에 갈까, 귀찮은데 가지말까, 고민했다.  지난 주부터 "도서관에 엄마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품앗이를 위한 도서관 학교'가 8주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주 첫 강의도 무슨 일인가 있어서 가질 못했는데, 이번 주도?  베란다 창 밖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갈등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우리 아파트에 살다가 이사한 지흔이네 엄마였다.  같이 도서관 강의를 듣기로 한 이웃.  "오늘 꼭 와요."한다.  이러면 약해진다.  그래, 가야지.  비 오는데 집에 있어봤자 유빈이도 지루하고 심심해할 테니까 가서 놀다 오자,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난 운전을 할 줄 모른다.  아예 운전면허를 아직 안 땄다.  겁이 나기도 하고, 그냥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바깥 풍경이나 사람들 구경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직접 운전을 하면 정신 바싹 차리고 주변 차나 신호등에만 신경을 써야할테니, 뭔가 시시하단 생각도 들고.  아이랑 우산을 들고 나란히 걷자니 기분이 좋았다.  도서관에 가서 커피부터 한 잔 마셔야지, 하는 확실한 목표의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유리창에 다닥다닥 맺힌 빗방울을 보며 작은 소리로 아이랑 노래도 불렀다. "유리창에 예쁜 은구슬, 또로로롱 또로로로롱~~~"

오늘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도서관의 김소희 관장님께서 '어린이 책과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2시간에 걸쳐 강의를 해 주셨다.  지난 주엔 고양자유학교의 이철국 선생님이 오셨었는데, 오늘 강의 자료를 지난 주 것까지 받고 훑어보니 못 들은 게 너무 아쉽다.  지난 주 강의 자료에 이런 글이 써 있었다.  "교육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의 현실과 너무 대조되는 글이라서 더욱 가슴에 와서 박혔다.  네덜란드와 핀란드의 예가 나왔는데, 그 나라에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교육 표준 경비가 나가는데 부모의 학력이 낮은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기본 단위의 1.25배를 지급하고, 농어촌 자녀는 1.4배, 이민자 자녀는 1.7배,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1.9배의 교육예산이 집행된다고 한다.  우리에겐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오늘 강의에서도 참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 세대의 독서이력과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의 독서 이력의 차이를 점검해 볼 수 있었고, 아이가 책과 가까워지게 해 줄 수 있는 법도 테크닉 차원에서가 아니라 엄마인 나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는 근본적 차원에서 한 수 배울 수 있었다.  가장 좋은 엄마는 "아직도 더 자라나야 하는 엄마"란다.  레오리오니가 어릴 적 학교와 집을 오고가는 길에 있었던 박물관이 자기가 성장하는 데 하나의 BIG MOOD가 되어 주었다고 말했다는 예를 드시면서 아이에게 엄마가 BIG MOOD가 되어주라는 말씀은 깊이 새겨둘 이야기인 것 같았다.

유빈이가 강의 도중에 왔다갔다 하고 '엄마 이제 다 끝났어?"하고 물어대는 통에 좀 산만하긴 했지만, 이게 몇 년만에 강의를 듣는 건지, 감개무량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내 자신은 비누처럼 서서히 닳아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어서 괴롭기도 했었다.  그런 괴로움을 책이, 그리고 도서관이,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이 덜어주었다.  어쩌면 도서관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더 필요한 장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부터 책놀이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다음 주엔 박문희 마주 이야기 대표님이 오셔서 '함께 말하는 마주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신다.  마주 이야기라면 이제 네 살인 우리 유빈이와 함께 해볼만한 활동이다.  기대가 된다. 

돌아올 땐 이웃엄마가 차로 집까지 모셔다(?) 줬다.  기름값도 무섭게 치솟았는데, 나 때문에 일부러 길을 빙 돌아서 가주는 그 엄마가 참 예쁘고 고마웠다.  장마는 얼만큼의 길이로 내릴까.  얼만큼의 길이로 오던간에 나까지 축 처져서 그 길이가 더 늘어지게 하진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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