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정미경/현대문학)
---- <장미빛 인생>,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이후 세 번째로 읽은 정미경 님의 소설이다. 아주 세련되고 화려하고 도회적인 분위기의 소설을 주로 쓰시는 것 같은데, 그 안에 들어 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고독하다. 읽는 동안 우주적인 적막감이 느껴졌다.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는 구소련이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에 태워진 개 라이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를 읽은 후 난 간혹 우주공간에 떠있었을 라이카가 가끔씩 떠오를 때가 있다. 이 책도 갇힌 우주선 안에 탄 채 적막한 우주공간을 떠다니다 만나는, 그러나 결코 완벽하게 합쳐질 수 없는, 결국은 자기가 가야할 궤도를 따라 외롭게 떠나야 하는, 인간의 외로운 뒷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여담이지만 스푸트니크에 탔던 개 라이카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스푸트니크호와 함께 우주에서 산화했다고.. 그래서 라이카를 생각하면 좀 우울해지곤 한다. 이 개가 바로 적막한 우주공간을 떠돌다 산화한 라이카다.
2.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황광우/창비)
---- 5월을 맞아 어쩐지 이런 책 한 권쯤은 읽어야 할 것만 같아서 뽑아든 책이었다. 80년 광주민주화항쟁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슬픈 갈피들을, 역사가 아닌 경험으로 엮어낸 책이다. 거기엔 우울했던 나의 이십대가 아직도 겹쳐 있어서, 그래, 그 때 그런 일들이 있었지, 하며 가슴 아프게 읽은 책이다. 그런데, 그 시절이 왜 20년이 넘은 오늘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걸까. 이 책을 읽고 얼마 후 전경들이 시민들을 방패로 찍는 모습을, 군화발로 짓밟는 모습을, 시민들이 피 흘리고 끌려가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3. 그림책 (최윤정/비룡소)
----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을 위해 읽은 책. 우리 그림책에 대한 저자의 글이 무척 와 닿았다. 그림책은 우리의 민족혼을 위해서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는. 따라서 우리 그림책은 좀 더 자유롭고 가벼울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훌륭한 작품이라고 소개된 그림책을 펼쳐보다가 도로 덮어버릴 때가 많다. 훌륭하다는 건 알겠는데, 참 죄송하게도 아이가 좋아할 것 같지가 않아서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무척 많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곱씹어볼만한 지적이 아닐 수 없었다.
4. 촐라체 (박범신/푸른숲)
5. 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쿠오레)
6. 안텍, 우주에 작업 걸다 (란카 케저/푸른숲)
7. 역사를 담은 도자기 (고진숙/한겨레아이들)
8.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문학동네)
9. 도자기 - 마음을 담은 그릇 (호연/애니북스)
10. 영어 잘하는 아이 이런 엄마 곁에서 자란다 (김미영/넥서스)
---- 사방에서 영어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아이 셋을 키우는 무시 못 할 경력의 나도 참 줏대 세우기가 어렵다. 게다가 큰애들 키울 때랑은 또 세상이 바뀐 듯해서 더욱.. 그래서 읽었다. 일단 유아기 때부터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조기교육을 주장하고 있지 않아서 좋았다. 학원이나 학습지에만 맡겨놓지 말고 부모도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수긍할 수 있었고, 아이들의 영어 배우는 고통을 잘 헤아려 놓은 것 같아서 또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온 대로 잘 해줄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적어도 세 돌 배기 아기가 영어그림책을 술술 읽는 걸 보고 충격 받지 않을 만큼의 내공은 쌓아준 것 같다.
11.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이레)
---- 첫 장부터 루트가 나와서 나를 긴장시켰던 소설이다. 이 책 읽으려면 수학을 잘 해야 하나? 하는 당치도 않은 불안에 좀 떨었다. 워낙 수학이라면 질색이라.. 그런데 참 따뜻하고 예쁜 소설이었다. 큰딸도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안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는데, 표지가 무척 낡은데다 책등 부분이 떨어져서 달랑달랑했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그래서 호감을 사지 못했던 걸까. 양면테이프로 책등부분을 수선해서 반납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 보면, 특히 아이들 책은 파손된 것들이 많다. 특히 플랩북이나 팝업북 같은 것들은 온전한 걸 거의 못 봤다. 도서관 책을 빌려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때엔 엄마들이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플랩북이나 팝업북은 망가지면 거의 책으로서의 수명이 끝난 거나 다름없다. 혹시 실수로 파손했을 경우라도 샐로판 테이프로 다시 잘 붙여놓는 정도의 예의는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앗,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아무튼 이 책,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게 흠이라면 흠일 수 있겠지만, 사람의 따뜻함이 그리워질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언젠가 꼭 애들에게 읽혀야지!!!)
이 달엔 열한권의 책을 읽었다. <생각하는 그림들 -정>은 읽기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도 아직 진도가 지지부진이다. 읽었던 줄 또 읽고, 또 읽고 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이런 증상이 계속되면 6월엔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 읽는 일이 이렇게 팔자 좋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읽자, 하고 내 마음을 다독이고 있는 중이다. 책 읽는 일이,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의미 있는 일 중 하나이므로, 천천히라도 멈추지는 말자고.
그러나 6월엔 세상의 함성이 너무 커져서 그 함성을 제대로 듣는 일만으로도 너무 벅차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다. 내 나이가 불혹이라는데, 아직도 세상은 의혹투성이다.
제발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미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으니 몸이라도 상처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