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어린 십대 학생들의 참가가 두드러진다는 참신발랄, 가슴 뭉클, 안면 화끈한 보도가 이어질 즈음, 내 마음 속엔 어린 학생들이 저렇게 애쓴다는데 우리도 참석했다는 도장이라도 찍고 와야 내 아이 얼굴 떳떳하게 마주볼 수라도 있고 밤에 불편하지 않게 잘 수 있지 않겠냐는 식의, 훗날 아이들에게 “그때 말이야, 미국에서 미친소가 몰려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뭉쳤는데 그 때 우리도 거기에 있었단다.”라고 말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식의, 불타는 투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반대의 뜻은 보여야 하지 않겠냐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걸 생생하게 증명하는 저 확실한 증거의 현장을 아이에게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는, 일종의 의무방어 또는 최소한의 도리표현 혹은 과도한 교육열, 아무튼 나 편한대로의 이유로 참여의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참 소심하고 쩨쩨하기도 하지...)
그러던 어느 날 옆지기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큰딸과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보낸 문자였다. 아이들을 집회에 보내지 말아달라는. 옆지기와 내 입에서 ‘허~!’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 문자에서 느껴지는 것은 혹시라도 우리 아이들이 집회에 참석했다가 험한 꼴을 당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스승의 따스한 배려가 아니라 행정당국이나 교육부의 눈치를 보며 혹시 자기 학교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했다가 그 불똥이 학교로 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히스테릭한 강박증이었던 거다.
그 문자를 보고 안색이 변하는 나를 보고 옆지기는 “참 좋은 학교네.”한다. 아이들만 보내지 말고 온 가족이 함께 참석하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오호~~~ 그렇게 깊은 뜻이? 옆지기의 재치 있는 ‘꿈보다 해몽’식의 농담 덕분에 나도 굳어지는 얼굴을 풀고 웃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자꾸 찝찝하다. 학교에서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고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그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려 할 때엔 왜 저렇게 적극적으로 막는 걸까. 아이들은 그런 모습들을 보며 무엇을 느낄까. 우리나라는 무늬만 민주주의 국가라고 느끼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래서 우리가족은 촛불집회에 참석했을까? 참 못나고 우습게도 아직 참석하지 못했다. 온가족이 함께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네 살배기 막내를 데리고 가기엔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던가, 아니면 목감기에 걸려 고열을 하던가, 무슨 일인가를 정신없이 하다보니 갈 타이밍을 놓쳤다던가, 놀이터에서 실컷 놀고 들어온 막내가 저녁을 먹고는 그대로 뻗어 곤한 잠에 빠져버리던가... 아무튼 핑계는 놀랍도록 많았다.
그러니 저 촛불집회의 현장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저 사람들에게도 집회 불참의 이유와 핑계를 만들자면 놀랍도록 많은 이유와 핑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그 많은 이유와 핑계를 떨쳐버리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거다.
내 속이야 어떻든 난 집회에 참석해서 촛불을 들어준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어린 학생들에게조차 빚을 졌으니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다.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 아이보다 못한 어른(나를 포함해서), 어른보다 나은 아이들이 너무 많다. 이런 걸 실망이라고 해야 할지, 희망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학교에선 급식에 대해선 한 마디 말이 없을까? 학교 게시판에 급식 메뉴에 쇠고기가 포함될 건지, 포함된다면 어떤 원칙을 적용하실 건지 궁금하다고 글을 올렸는데 일주일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내일쯤엔 직접 전화를 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