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담은 도자기 숨은 역사 찾기 5
고진숙 지음, 민은정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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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 달항아리>

지난 해 여름에 성북구에 있는 최순우 옛집에 가본 적이 있었다.  참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의 집이었는데, 뒤뜰로 돌아가니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백자가 있었다.  최순우 님은 생전에 그 달항아리에 달빛이 비추는 모습을 무척 사랑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본 달항아리는 벌건 대낮에, 그것도 뜨거운 여름 한낮에 밖에 나와 햇빛을 반사하고 있어서 좀 생뚱맞아 보였었다.  그러고 보니 난 도자기를 밝은 하늘 아래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박물관의 좀 어두침침한 전시실 안에서나 아니면 집 안 거실이나 마루, 또는 안방 같은 실내에서나 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작은 도자기도 아니고 커다란 백자가, 그것도 어딘지 균형이 맞지 않은 듯 조금은 기우뚱해 보이는 백자가 여름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반사하고 있는 모습은 낯설고 생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우리가 도자기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리의 생활 안에 도자기의 공간은 격리된 실내였고, 내가 아는 도자기는 나와는 너무 아득한 문화재이거나 고이 모셔둬야 하는 장식물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최순우 님은 도자기를 느끼고 즐기고 어루만지며 사랑할 줄 아는 분이셨던 것이다. 아무튼 최순우 옛집에서 그 달항아리를 본 후로 내가 도자기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도자기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어린이 책이라지만 어린이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도자기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소멸을 참 잘 엮어냈다. 신라말의 최후의 토기라고 할 수 있는 구림도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고 있는 이 책은 그 후 고려시대에 전남 강진의 진흙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가 호족의 후원을 받고 중국 오월국의 도공까지 모셔다 벽돌가마로 만든 청자를 물리치는 이야기로 도자기에 대한 설명을 본격적으로 풀어간다.  내가 몰랐던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져서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고려시대 사람들이 청자에 열광했던 이유, 그리고 그 청자에도 우리가 흔히 아는 비색청자나 상감청자 외에 녹청자, 상형청자, 햇무리굽 청자, 간지명 청자, 진사청자 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청자들이 있었다는 이 책 첫 부분의 글을 읽을 때부터 난 벌써 이 책이 너무 고마워지기 시작했다. 

조선시대로 넘어와 귀족과 왕실만을 위한 도자기가 아닌 백성들을 위한 자유로운 느낌의 분청사기가 등장하고 세종이 분청사기를 사랑하고 청화백자의 수입과 제작을 막은 깊은 뜻에서는 ‘역시 세종대왕’이라며 찬탄할 수밖에 없었고, 책에서 인화문, 귀얄문, 덤벙문, 조화, 철화, 빙렬 등의 용어 설명을 읽으며 행복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왕조의 변천과  새로운 지배세력의 등장과 몰락을 지켜보며 이름 없는 도공들의 치밀한 연구와 창조적 열정 속에서 탄생한 도자기들.  이 책에서 알게 된 우리나라 도자기의 역사를 보면 맨 먼저 자기소의 그 이름 없는 도공들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찬란한 도자기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고종 때 일본인들이 들어와 고종임금에게 “청자를 구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청자요? 그게 뭐지요?”하며 되물었다는 이야기는 비운의 구한말의 역사와 함께 몰락해가는 우리 도자기의 비참한 운명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가슴이 아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제 도자기를 보면 좀 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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