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책 + CD) - 섬진강 아이들이 쓰고 백창우가 만든 노래 보리 어린이 노래마을 2
마암 분교 아이들 시, 백창우 작곡, 김유대 그림 / 보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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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햇볕 화창하고 따뜻했던 어느 봄 날, 네 살 배기 아이와 함께, 자주 들르곤 하는 어린이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공립도서관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도 읽고, 싸가지고 간 간식도 나눠 먹을 수 있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라, 늘 그렇지만 그날도 아이는 책보다는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며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나는 밖을 향해 나있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과해 들어오는 밝고 가벼운 봄의 기운을 흡수하며 넋을 놓고 앉아 있었는데, 도서관을 지키는 선생님 한 분이 카세트에 CD를 얹어 노래를 트시곤  동그랗게 생긴 낮은 책상에 아이들과 엄마 몇몇이 모여 앉아 있는 쪽으로 가서 앉으셨다. 그러고 나서 너 댓살 정도의 아이들과 엄마들이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며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함께 부르는데, 그 노래가 어찌나 정겹고 재미있던지 어느새 나도 쫑긋 귀를 기울이며 듣다가 곁에 다가가 함께 앉았다.  우리 아이도 어느새 노래 소리에 이끌려 와서는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따라 부른답시고 노래책을 보며 어설프게 흥얼거리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노래책을 살펴보니 김용택 시인과 함께 공부했던 마암분교 아이들이 1998년에 쓴 시에 백창우님이 곡을 붙인 노래들이었다.  백창우님의 전래동요 CD를 집에 갖고 있는데, 물론 그것도 좋지만 이 노래들처럼 가깝고 정겹고 친근하고 재미있게 듣진 못했던 것 같았다. 

결국 그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주문했다.  한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악보는 더더구나 볼 줄 모르는 네 살 배기 작은딸이 이 CD를 틀면 꼭 노래책을 갖다 펼쳐놓고 지금 어느 노래가 나오는 거냐며 묻는 걸 보면, 아이도 그날 도서관에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함께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꽤 좋은가 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베란다 창 밖을 내다보며 “비가 온다, 뚝뚝, 비가 온다, 뚝뚝”하며 노래 부르고, 변기에 올라앉아 쉬하면서 “할 수 없이 싸버렸네~~”하고,  심심해서 같이 놀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지 어떨 땐 갑자기 “내 친구 이름은, 내 친구 이름은~~”을 부르기도 한다. 

마암분교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든 순박한 시들이 노랫말이 되어서인지, 아이들 마음에 참 잘 다가가 웃음 짓게 만드는 그런 노래들이다.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어른들도 잊었던 어린 날의 추억 한 조각, 잃어버렸던 동심의 아련한 파편들이 찌든 마음 한 구석에서 반짝이는 걸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릴 적 친구들과 팔방하고 고무줄놀이 하던 먼지 뿌연 운동장이며, 동네 언니가 돌부로 시멘트 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들려주는 무서운 옛날이야기를 같은 또래 꼬맹이 친구들과 둘러앉아 듣던 기억하며, 부뚜막에 가마솥 모양이었던(지금은 가스오븐렌지에 예쁜 냄비더라만) 소꿉장을 꺼내어 빨간 벽돌 갈아서 고춧가루라고 하며 놀던 기억,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던 기억, 생전처음 수영장에 놀러가 미끄럼틀 타다가 물에 빠졌던 기억까지 차례로 떠올라 베시시 웃게 만드는 그런 노래들이다.

놀이터에 나가 아이가 탄 그네를 밀어주면서 요즘은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 꽃 저 꽃, 저 꽃 이 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를 부르다보면 놀이터에 놀러 나온 아이들이 다 예뻐 보인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를 따라 나온 엄마, 할머니들도 예쁘고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참 예쁘고 괜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예쁘고 괜찮은 노래들이 마음속까지 흘러들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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