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자주 만나던 언니가 있었다.  일 때문에 만났지만 조용조용하고 차분한 성품이 매력적인 언니였다.  어느 날엔가 그 언니와 다른 사람들 몇이서 함께 일을 마치고 한가하게 수다를 떨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의 소변보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아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가사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화장실 청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다 남자들이 소변을 볼 때 변기 주변으로 튀는, 그런데도 남자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성토를 하다가 나온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언니가
“그래서 우리 남편은 작은 일도 앉아서 봐.”
라며 씨익 웃는 것이었다.
다들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져서는 잠시 대화가 중단되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의아해 하는 우리들에게 언니는 조목조목 그래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앞에서 말한 ‘튀는 문제’가 가장 주된 원인이었는데, 냄새에 유달리 민감하면서 경증의 결벽증이 있는 언니는 튄 소변이 풍기는 지린내를 견디기 어려웠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게다가 언니는 아들만 둘이었다.)

그다음은 집집마다 비데를 사용하는 집이 늘어났다는 게 이유였다.  언니의 말로는 잘못하면 비데의 노즐에까지 튀어서(다분히 그럴 가능성이 짙다.) 위생상 좋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나 남의 집에 가서 화장실을 사용할 때 변기 가장자리는 물론이고 비데까지 불결하게 만드는 것은 큰 실례라는 주장이었다.  남편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가 돌아가고 나면 먹고 난 자리 뒷정리만 하는 것도 힘든데 남편 친구들이 쓰고 간 변기 닦는 일은 정말 “내가 왜 이렇게 사나..”하는 신세한탄을 하게 만든다는 것.  주부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할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소리’가 듣기 안 좋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소변보는 소리는 그 낙차 때문인지 유난히 소리가 큰데, 예전 같으면 화장실이 뒷간이라고 해서 주거공간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요즘 아파트에서는 화장실이 주거공간 안으로 가깝게 들어와 달랑 문 하나를 사이로 공간구분이 되어 있는 터라 남자들의 소변보는 소리가 참 민망하게 들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언니의 주장이 꽤 근거 있고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맞아....”를 연발했는데, 그래도, 마누라가 그렇게 말한다고 고분고분(?) 앉아서 볼일을 보는 아저씨가 참 대단하다는 게 결론이었다. 

집에 돌아와 옆지기에게 슬쩍 떠봤다.  “있지, 요즘은 남자도 앉아서 소변 보는 게 예의라던데...” 슬쩍 말을 꺼냈더니 우리 옆지기 그게 무슨 말이냐며 펄쩍 뛴다.  언니에게 들은 근거를 설명해주었는데 우리 옆지기는 그래도.., 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이다.  그렇게 정색하는 옆지기를 보니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옆지기는 ‘앉아서’ 볼일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갖고 있는 남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훼손당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옆지기가 갖고 있는 그 ‘남성’이라는 성의 도도한 위상이 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후론 남편이 서서 볼일을 보건, 앉아서 볼일을 보건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작년이던가?  아침에 유빈이가 비디오를 틀어달라는 바람에 TV를 켰는데 무슨 토크 프로그램인지에 최민수가 게스트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최민수도 앉아서 볼일을 본단다.  갑자기 몇 해전 언니 이야기가 생각났다.  진행자가(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깜짝 놀라며 “천하의 최민수씨가 어떻게 그렇게 되셨습니까?”하며 물었다.

최민수는 앉아서 볼일을 보게 된 사연을 간단하게 이야기했는데, 어느 날 아내가 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변기 속으로 손을 넣어서 박박 문질러대는 모습을 보았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내가 너무 측은하고 안쓰러워 보였다나?  자기에게 시집오기 전까지 집에서 공주같이 귀한 딸로 자랐을 여자가 나랑 결혼해서 저런 일까지 하며 사는구나 싶어서, 그 다음부터는 아내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고 앉아서 볼일을 본다는 거다.  게다가 자주는 못하지만 가끔은 자기가 직접 화장실을 청소를 한다고도 말했던 것 같다.  잔뜩 폼 잡는 남자 배우로 생각했던 최민수에게 그날 나는 의외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가 참 멋져 보였다.  그의 성정체성이 훼손되기는커녕 가느다란 잔금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옆지기에게 최민수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도 우리집 남자는 요지부동이다. 다른 남자들은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가끔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슬쩍 남자들이 앉아서 볼일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그러고서는 반응을 살펴보는데, 여자들 중에도 “그래, 남자들의 화장실 사용법이 좀 바뀌어야 해.”하는 분들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절대로 안 되지!”하는 분들도 꽤 많다.  뭐,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앉아서 볼일 보기가 그렇게 싫다면 일주일에 한 두 번이라도 직접 수세미 들고 변기도 닦고 욕실 타일도 박박  문질러 닦아주기라도 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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