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있는 이 그림책은 1994년 초판 제1쇄 인쇄본이다. 그러니까 지금 중학교 3학년인 큰딸의 첫돌이 지나고 나서 구입한 책인 것 같다. 거의 15년이 된 책이라서 표지도 꼬질꼬질하고 페이지가 낱장으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셀로판테이프로 페이지와 페이지의 이음새 부분을 붙여놓아서 그야말로 헌책 중에 헌책이다. 우리 집 세 아이 모두 이 책을 참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네 살배기 막내딸 유빈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냥 여느 그림책 읽어주듯 평범하게 읽어주면 아무 재미가 없다. 리듬을 타고 노래하듯 읽어주어야 제 맛인데, 아마도 엄마들마다 독특한 리듬을 개발해서 읽어주고 있지 않을까 싶다. 엄마들끼리 모여서 돌아가며 자기만의 독특한 리듬으로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유빈이는 내가 읽어준 리듬을 익혀서 거의 외워서 읽는다. (큰아이 때 개발한 리듬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또 하나 이 책을 갖고 즐기는 방법은 아이와 직접 곰 사냥을 떠나보는 것이다. 유빈이와 내가 쓰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어느 집이나 한 두 개쯤 있는 인형이 바로 곰 인형이 아닌가 싶은데, 집에 있는 곰 인형을 식탁 밑에 놓아둔다. 눈치 챘겠지만 식탁이 바로 동굴이 된다. 동굴의 입구로 쓸 쪽만 빼고 이불로 식탁을 확 덮어버리면 더 분위기가 난다. 그리고는 풀밭, 강, 진흙탕, 숲, 눈보라, 집을 설정해야 하는데, 나는 풀밭 부분에는 신문지를 구기거나 찢어서 거실 한 부분에 깔아 놓는다. 밟으면 제법 사각 서걱 소리가 난다. 이불을 길게 반 접어서 강이라고 하고, 소파의 커다란 쿠션들은 거실에 늘어놓으면 질퍽이는 진흙탕이 된다. 숲 부분에서는 바스락 부시럭 소리가 나게 비닐 봉투나 세탁소 비닐 커버들을 구겨서 놓아둔다. 눈보라는 보자기 두어 개를 꺼내다가 아이 앞에서 마구 흔들어주기도 하고 여름엔 부채나 선풍기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집은 주로 안방이 된다. 말 그대로 안방 문을 꽝 닫고 침대 이불 속으로 아이와 숨어버리면 된다. (우리 집은 안방은 침대를 안 쓰기 때문에 그냥 이불이랑 베개 꺼내 놓았다가 그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아이 손을 잡고 리듬감 있게 노래 부르며 이 책의 내용을 따라 풀밭(신문지), 강(이불), 진흙탕(쿠션), 숲(비닐), 눈보라(보자기, 선풍기), 동굴(식탁)으로 이동하며 곰 사냥을 떠나면 유빈이는 너무 재밌어하며 엄마 또, 다시를 외쳐대곤 한다. 그러니 시원한 물 한 컵이나 피로회복제, 또는 박OO 따위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듯.
나는 아직 못 써먹은 응용버전이 하나 있는데, 곰 역할을 인형에게 맡기지 말고 남편에게 맡기는 방법이다. 남편에게 곰 가면을 씌우거나 아니면 곰 얼굴을 오려붙인 머리띠라도 하게 해서 함께 논다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우리 남편은 정말 곰처럼 덩치도 커서 리얼리티 면에서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서평을 한다는 게 별 쓸모없는 일일 것 같아, 이 책으로 말미암아 아이와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들을 적어본다.
이제 이 책을 노부영에서 나온 영어 그림책으로 구입해 볼까 계획 중이다. 영어 그림책으로 디밀어도 유빈이가 재미있어할지 궁금하다. CD가 함께 있으니, 게다가 ‘노부영’이니, 영어를 가지고 내가 리듬을 만들어야 하는 고충이 필요치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