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우의 해적들 - 싱가포르 편 세계의 전래동화 (상상박물관) 7
디 테일러 글, 락 키 타이 오두아르 그림, 신은주 옮김 / 상상박물관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싱가포르의 전래동화 11편이 들어 있는 책이다.  전래동화치고 좀 시시하고 허무한 결말을 보인다는 평이 있어서 미리 각오를 하고 읽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나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싱가포르에 직접 가 본 경험이 없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싱가포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껌을 팔지 않는 나라’, ‘깨끗한 나라’, ‘질서 의식으로 중무장된 나라’, ‘담배꽁초 하나 잘못 버려도 인간성을 의심받고 벌금을 내야 하는 나라’ 등등으로 좀 좋게 말하자면 수준 높은 선진문화 질서의식의 표본이고, 좀 깎아 내리자면 융통성 없는 완전무결 범생이 국가라고나 할까.  잠시 머무르는 여행자들에게야 깨끗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테지만 저 나라 국민들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저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법, 규범, 질서 등에 꽁꽁 묶여서 통제받으며 숨 막혀서 어떻게 살아가나 하며 안 해도 될 걱정을 하게 만드는 나라였다. 살다보면 답답하고 울화통 터지는 날도 있어서 그런 날엔 캔맥주 한 잔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서 빈 캔에 화풀이하듯 힘껏 뻥 차서 요란하게 나가떨어지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은 그런 날도 있지 않은가..  가끔은 왕짜증나게 구는 직장 상사 대신 질긴 풍선껌 한통을 모조리 입안에 털어놓고 소리도 요란하게 짝짝 질겅대며 씹어대다가 회사 옥상에 올라가 “에라~이 못된 XX야!!”라는 저속한 말 한 마디와 함께 빌딩 밖으로 날려 보내고 싶은 그런 날도 있고. 

아무튼 싱가포르에 대해서는 그 나라의 자연환경이나 문화보다는 국민들의 신통방통하게 고분고분한 질서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킬킬거리고 웃으며 재미있게 읽게 되었던 것도 이야기 속에서 허튼 짓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이야기 ‘싱가포르 섬은 어떻게 생겨났나’는 깊은 바다 속 왕국의 포악하고 욕심 많은 하이 룽 왕이 내린 바다 밖에서는 수영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바다 위까지 수영을 나갔던 두 인어 시플럼과 시펄이 말뚝망둥어로 변한다는 이야기이다.  분명 바다 밖으로 나가서 수영하지 말라는 명령은 욕심 많은 왕이 자기 혼자 보물을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내린 부당한 명령이고, 왕의 성격 또한 포악하고 거짓말쟁이로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을 어긴 시플럼과 시펄이 오히려 벌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  일반적인 전래동화라면 부당한 금기를 깬 주인공이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은 후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으로 나오는 것과 비교하면 상큼하리만큼 의외의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격언을 강조하듯 법과 명령을 어기면 불행해진다는 교훈을 남기는 것 같다. 

그런 예는 곳곳에서 더 눈에 띄는데 ‘숲의 여왕’에서는 비밀의 정원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발을 들여놓은 리아공주가 그 댓가로 세상에서 제일 큰 꽃이라는 라플레시아(이 꽃의 냄새가 굉장히 지독하다던데)로 변하기도 하고  ‘사라진 아이들’에서는 금지된 숲으로 들어간 딘과 마흐무두라는 두 아이가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것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을 이끌고 들어가는 인물도 전혀 없이 그저 금기를 어겼다는 사실 하나로 아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숲으로 들어가는 용감한 영웅은 더더욱 없다.  싱가포르의 시조설화라고도 할 수 있는 ‘파라메스와라 왕자와 싱가푸라’에서도 제 아무리 싱가푸라의 시조왕이라고 할지라도 문제를 일으키기를 즐기는 왕은 끝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 같다.  싱가포르인들의 놀랄 만큼 철저한 준법정신은 바로 이런 전래동화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른 전래동화들처럼 권선징악이라든가 정직과 지혜에 대한 교훈이 기본적인 밑바탕이 되고 있긴 하지만 싱가포르의 전래동화는 거기에서 살짝 빗겨난 듯한 의외성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앞에서 언급했던 인물들처럼 법과 금기를 어기는 ‘허튼 짓’일랑 하지 말고 성실한 도비(세탁부) 라마누잔이나 부지런하고 선량한 ‘황금 들판의 두 여인’ 완 말리니와 완 엠포크처럼 열심히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더 강하게 읽히는 것도 그런 의외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상상박물관의 전래동화 시리즈라면 그림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데, 이 책의 일러스트도 역시 싱가포르 사람이 그린 것이다. (미국편과 중국편은 우리나라 일러스트 작가가 그림을 맡았다.)  비만체형이라고 할 수 있는 둥글둥글 통통한 인물 그림이 무척 독특하다.  게다가 부드러운 색채와 명암은 싱가포르의 따뜻하고 밝은 햇볕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림 보기도 이야기 읽기도 무척 즐거운 책이었다.

 

*** 오자 발견
124쪽 ‘케르바우 히탐을 뒷짐을 진 채 갑자기 흥미를 보이며 가슴을 내밀고 물었습니다.’
--->  ‘케르바우 히탐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어린이들이 읽을 책이니까 더욱 신경 써서  교정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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