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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유럽 1 - 프랑스·독일·그리스·노르웨이 ㅣ 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이형준 글,사진 / 시공주니어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무엇보다 이 책이 탐이 났던 것은 큰딸이 올여름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여행을 떠나기 전 예비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가야 그만큼 받아들이는 폭과 깊이가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서양미술사나 그리스로마 신화정도는 읽게 했지만 이 책을 보는 순간 내가 빠트린 게 있었구나 싶었다. 유럽에 가서 미술관만 보고 올 것도 아닌데, 왜 미술 쪽만 생각했을까. 아마 유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유명한 화가들과 곳곳에 세워진 조각들, 그리고 미술관이라서 그랬나보다. 아무튼 이 책이 무척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을 전공한 전문 사진작가답게 선명하고 시원시원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여행담’ 쪽에 더 비중을 두었으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이 주가 된 책이었다. 친절한 ‘~어요.’ 또는 ‘~습니다.’ 문체로 문화유산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참 조곤조곤하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청소년이나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읽기에도 무난할 것 같았다. 각 장 끝마다 딸려있는 ‘흥미진진 포인트’, ‘감상 포인트’를 통해서 본문에서 부족했던 설명을 추가하고, 직접 가서 문화유산을 보게 될 경우 어떤 식으로 감상하면 더 좋을지를 설명하고 있어 작가의 세세함이 드러난다.
1권에는 유럽하면 떠오르는 나라 프랑스와 독일, 그리스, 노르웨이의 문화유산에 대한 글과 사진이 들어있다. 프랑스 그 중에서도 파리에 대한 은근한 동경을 갖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파리보다도 더 가보고 싶은 곳이 새로 생겼다. 그 곳은 바로 독일의 포츠담 상수시 궁전이다. 포츠담이야 역사시간에 배운 ‘포츠담 선언’ 덕분에 꽤 익숙했지만 상수시 궁전은 생소했다. 상수시는 프랑스 어로 ‘근심 없는’이라는 뜻이라는데, 이 책에서 본 상수시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상수시 궁전은 ‘사색의 황제’, ‘철학자 황제’, ‘예술가 황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 프리드리히 2세가 애정을 갖고 지은 궁전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상수시 궁전도 작가의 말처럼 ‘소박하고 아담’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베르사유 궁전에 비하면 뭔가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것 같긴 했다. 특히 궁전 전체 면적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넓은 정원이 매력적이라는데, 인공적인 분위기의 정원이 아니라 자연스런 편안함이 흐르는 정원이라니 그 곳에 가서 상수시라는 이름대로 ‘근심 없이’ 조용하게 거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정원을 만든 페터 요제프 레베라는 정원사와 철학자, 예술가, 문인들과 어울렸던 프리드리히 2세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한가롭게 거닐다가 일본으로부터의 우리나라 독립을 확인하는 포츠담 선언의 현장 체칠리엔호프 궁전도 비장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창피하고 민망했던 부분이 있다. 프랑스 편에 카르카손 요새도시가 소개되고 있는데, 난 카르카손이 그저 보드게임 이름인 줄 알았었다. 몇 해 전에 아이들에게 카르카손이라는 보드게임을 사 준 적이 있었다. 성을 짓는 게임이었는데, 이제야 그 게임 이름이 왜 카르카손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난 죽을 때까지 카르카손은 보드게임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참 끔찍하면서도 실소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나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명찰 뒤엔 그에 어울리는 역사와 문화, 예술, 종교의 배경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 말은 그 배경이 되는 역사, 문화, 예술, 종교 등등의 지식이 없이는 그 문화유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니 무조건 중요한 것이고 그러니 무조건 잘 보존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함과 교과서에 나오는 거니까 그게 무엇이든 달달 외워라 하는 식의 구시대적 주입식 교육으로 버티기에는 세상이 너무 열려있지 않은가.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열려 있는 세상을 향한 작은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