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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신체적인 나이를 일흔부터 시작한다는 충격적인 설정 때문에 기대가 컸던 소설이다. 표지의 우수어린 눈빛의 소년은 또 얼마나 책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었던가. 그러나 빨리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는 기분이 너무 앞섰던 걸까. 이 책에 충분히 젖어들지 못한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읽은 내 기분은 무척 우울하고 좀 짜증스럽다.
가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적인 나이와 정신적인 나이를 일치시키지 못한다는 게 꽤나 비극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막스가 바로 신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의 불일치라는 선천적인 형벌을 타고난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올드맨’이라고 불렀고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p.38)며 막스가 어릴 때부터 나름의 처세를 가르친다. 그러나 그가 짊어진 비극적인 형벌은 쉰셋의 몸을 가진 열일곱 살 막스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 앨리스와의 만남으로 인해 더욱 가혹해진다. 노인의 몸에서 점점 어린 아이의 몸으로 시간의 흐름을 역행해가는 막스가 평생을 바쳐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리고 막스의 유일한 친구, 휴이. 명랑하고 밝은 모습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평생 슬프고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 책 속의 또 다른 비극적 인물이다.
책은 이미 쉰여덟 살이 되었지만 열두 살 쯤의 어린이의 몸을 가지게 된 막스가 앨리스의 양아들이 되려는 시점에서 자신의 아들 새미와 앨리스에게 자신의 일생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책 표지에는 작가의 ‘유려한 말솜씨와 화려한 문체’를 자랑으로 삼았지만 유려한 말솜씨와 화려한 문체를 이야기의 진행보다는 배경묘사나 심리묘사 쪽에 비중을 두고 있어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읽다보면 ‘이 표현 참 세밀하고 기가 막히다.’며 감탄할 문장들을 만나기도 하니 그리 억울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에서 느끼는 우울과 짜증은 어쩌면 애초에 내가 기대를 걸었던 충격적인 설정이 오히려 감정이입을 방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기이하고 현실감 없는 존재, 그런 존재가 보이는 섬뜩하리만큼 집요한 사랑, 그리고 그에 대한 기록. 어쩌면 나는 막스가 이런 고백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주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고백이 앨리스와 새미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이 고백조차도 막스의 이기적이고 집요한 사랑의 한풀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우울과 짜증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문구가 생각났다. 그 광고를 볼 때마다 쓴웃음 지었던 기억도. 나이가 어찌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랴. 사람들이 구분해놓은 ‘나이’라는 시간의 갈피마다에 꽂혀진 삶과 그 삶이 드리운 그림자들을 몽땅 가려놓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호기롭게 외치는 그 광고가 내 눈에는 처연하게 보였었다. 막스 티볼리의 삶은 그의 가혹한 천형에 의해 뒤틀리고 꼬이고 엉망진창으로 엉켜버렸지만 그래도 막스는 ‘그러나 난 내 인생을 사랑했소.’(p.406)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역행하는 신체의 나이와 순행하는 정신의 나이 양쪽에 새겨진 삶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일 게다. 인생이라고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어떻게 꼬이고 엉켜버리든 그 속에 담긴 삶의 내용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여전히 우울하다. 고백은, 하는 쪽도 어렵지만 듣는 쪽도 부담스러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