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역겨웠다.  성폭행, 살인, 복수에 대한 이야기로 처음부터 독자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다니 시작이 불손하다 싶었다.  너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비난받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이 책의 시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섬뜩하고 잔혹하고 오물을 뒤집어쓴 듯 불쾌했다.  그렇게 유난스런 감정을 느꼈던 건, 아마도 내가 여성이며 두 딸의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량청소년이라는 표현이 너무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뻔뻔하고 악독한 열여덟 살의 아쓰야와 가이지는 납치해서 성폭행한 소녀 에마가 죽자 강물에 사체를 유기한다.   몇 년 전 아내를 잃고 딸 에마 하나만을 삶의 이유로 여기며 살아가던 나가미네는 휴대전화로 걸려온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딸 에마가 잔인하게 성폭행당하고 죽임을 당한 아쓰야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그 곳에서 에마가 유린되는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된다.  분노와 증오에 휩싸인 나가미네는 마침 집에 들어온 아쓰야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이미 도주한 가이지를 찾아 다니기 시작한다.  딸을 성폭행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그들이 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그들이 저지른 악독한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가미네는 자기 손으로 직접 딸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한 것이다.

사건만 놓고 보자면 독자의 호기심을 확 끌어당기지 않을 수 없다.  성폭행, 살인, 복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관음증을 자극하고 잔인함을 즐기는 사람의 본성에 잘 영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볍지 않다고 느껴졌다. 

작가는 미성년자의 범죄 문제와 그에 대응하는 법적인 처벌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이 책을 통해 제기하고 있는 걸까.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의 글들이 이 책 여기저기에서 많이 눈에 띈다.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나가미네의 입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또 다른 피해자의 아버지 아유무라, 나가미네와 가이지를 좇는 형사 오리베와 하싸스카 등을 통해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책을 더 읽어가다 보면, 표면에 드러나는 그런 사회적 이슈를 넘어 소년 범죄에 대한 현실성 없는 이상주의적인 대처와 미성년 범죄자의 ‘갱생’에 대한 맹목적 희망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방임하는 기성세대의 또 다른 과오임을 이야기한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 예로 작가는 아쓰야와 가이지의 부모들의 무책임하고 뻔뻔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사회적 방임과 무관심에 대해 성토한다.
‘왜 그런 녀석들이 태어나고 방치된 것일까? 세상은 왜 그런 녀석들이 일을 벌이도록 놓아둔 것일까? 아니, 놓아둔 것이 아니다.  다만 무관심할 따름이다.
......(중략).......
그러나 그도 그러했다.  자기의 생활만 보장되면 다른 사람의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소년범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느냐?  문제 해결을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느냐? 그렇게 물으면 그도 대답을 할 수 없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기 역시 세상을 이렇게 만든 공범자라는 사실을.  공범자에게는 죗값을 치러야 할 책임이 똑같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번에 선택된 사람은 자신이었다.‘(p.481)
작가는 이 글을 통해 이 책을 읽는 사람 모두를 사건의 공범자로 끌어들이며 언젠가 우리가 저지른 무관심과 방임의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작가는 우리가 믿고 있는 ‘정의’를 문제 삼는다.  우리가 정의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들이 과연 올바른 것이냐고.  그 ‘정의’에 입각해서 과연 악을 처단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정의란 무엇이며 그 정의를 어떻게 행사할 수 있으며 그 ‘정의’에 입각해서 과연 악을 처단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우리의 삶이 부조리하고 이율배반적이니만큼 그 어떤 명제도 절대적인 선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쥐고 있는 ‘정의의 칼날’은 - 이 책에서는 국가의 법 - 무력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방황하는 칼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이 작가의 책으로 <흑소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단편을 묶은 책이었는데 읽으면서 작가가 사회를 꼬집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방황하는 칼날>이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두 번째 책이 되었는데,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다.  다만 사족 하나를 달자면 이 책이 제기하는 진지한 메시지에 비해 옮긴이의 말이 너무 가볍다는 인상을 받아서 좀 아쉽다.  이 책의 초점을 너무 사이코패스 쪽에 맞추어 ‘어쩌면 당신 옆에 끔찍한 사이코패스가 있을지도 모른다.....’라며 무슨 공포영화 예고편처럼 글을 맺는 게 오히려 이 소설의 깊은 맛을 망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사족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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