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 지음 / 눌와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능하다면 하루에 하나의 사물씩만 마음에 드는 제목부터 건반을 튕기듯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그녀의 당부에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하루에 하나 혹은 둘의 사물을 그녀가 내어준 길을 따라 만났다.  그녀가 보여준 사물의 세계는 물(物)의 영토를 넘어 영(靈)의 영토에 닿아있었다.  겉으로는 묵묵한 사물들의 내면, 그 깊고 은밀한 곳까지 맑게 들여다볼 줄 아는 시인의 시선이 따사롭고 눈물겹다.  사물들은 따사롭고 눈물겨운 시인 앞에 기꺼이 자신의 본질을 꽃잎처럼 활짝 펼쳐 보이는 것 같다.

스스로를 ‘꿈꾸는 것을 즐기는 종족’(p.30)이며 ‘바다와 혼인하고 산과 섬과 우주와 혼인’(p.47)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은밀한 사물의 내면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천박한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느라 어느새 사람도 사물화 되어가는 것을 당연시 보아오던 우리가, 우리 삶의 죽은 배경이며 소비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던 사물들이 시인의 시선을 통해 스멀거리며 살아나 우리가 이루고 있는 긴밀한 관계망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일은 신비스러운 경험이었다.  거울, 반지, 촛불, 화장대, 소라껍데기, 부채, 잔처럼 낭만적인 멋을 풍기는 사물부터 사진기, 휴대폰, 손톱깎기처럼 차가운 문명의 비릿한 쇠 냄새가 나는 사물들과 지도, 수의, 바늘, 못처럼 비장함이 느껴지는 사물들을 거쳐 쓰레기통, 걸레, 생리대같이 논의의 주인공으로 삼기에 금기시 되었던 사물까지, 시인의 맑은 시선을 받은 사물들은 하나같이 고해성사를 보듯 자분자분 자기의 속내를 털어 놓는 것 같다.

그 비결이 뭘까?  거울에 대한 글에서 시인은 나르키소스를 이야기하며 ‘하나의 풍경에 그토록 오래도록 그토록 지극하게 매료되지 않고서는 풍경의 저편을 깨달을 수 없다’(p.24)고 말한다.  또 걸레에 대한 글에서는 공간을 천천히 훑어가며 자기가 ‘건넬 말을 기꺼이 받아줄 만한 사물과 만나’(p.119)려 애쓰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사물의 속내란 그것에 말 거는 내 무의식의 속내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수줍거나 완강한 자기 보호벽을 지니기 십상이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말 거느냐에 따라 글의 운명이 달라지곤 한다.’(p.119)는 시인의 고백은 이 책 속의 글들이 사물과 시인의 무의식이 만나 서로를 오래도록 지극하게 바라본 결정체라는 뜻이리라.

어떤 사물을 지극히 바라봄으로써 내 무의식과 만날 수 있다면 그 순간 사물과 나는 한데 엉기어 ‘나’와 ‘너’가 다름없는 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김선우 시인의 글에는 ‘연민’이라든가 ‘연대’라는 낱말이 자주 눈에 띈다. 다분히 불가의 향기를 풍기기도 하는데 우주와 자연과 사물과 내가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서로에게 공양되고 순환하며 결국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사유가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다.

‘저편의 숨결까지 감지하고자 온몸을 기울이는 극진함이 살아있는 세계’(p.225)를 희망하며 ‘갖가지 사물들이 실은 너무도 풍성한 말을 거느린 언어의 마법사들이라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p.225)는 그녀는 우리에게 비결 하나를 더 알려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진하게 잘 들을 수 있는 낮은 무릎이 필요하다.’(p.225)고.

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사물들을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소용에 닿지 않아지거나 유행에 뒤떨어지거나 단지 싫증이 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물은 쉽게 버려질 수 있다는 우리의 오만한 즉물적 사고 때문에 사물은 온기를 잃고 말을 닫는다.  쉽게 얻고 쉽게 버려진다.  쓰레기통에 대한 글에서 시인은, 너무나 즉물적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대체 쓰레기란 너의 어디에서 오느냐.’(p,161)고 묻는다. 

어떤 사물이든지 ‘그 어느 것이나 이별의 핏물이 스며 있고 고동치는 따스한 맥박이 번져 있다.’(p.97)는 시인으로서는 별 하나와 눈 맞출 틈도 없이 메마르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참 가련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세계에 우연히 오는 것은 없’(p.184)‘모든 우연은 필연이 몸을 감추는 방식이며 또는 몸을 드러내는 방식’(p.184)이라는 생각으로 자기 앞에 있는 모든 사물과 자연과 우주 앞에 조용히 무릎을 낮추고 그 안에 있는 ‘나’를 찾아 물아일체의 질긴 인연을 아름답게 감싸 안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꿈대로 만나고 스치는 인연 모두가 소중해진다면 내세울 것 없이 평범하기만 한 내 삶도 아름답고 귀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살며시 웃어본다. 

전에 읽었던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새움, 2007)나 <물밑에 달이 열릴 때>(창비, 2002)보다 시인으로서의 글 향기가 더욱 진한 책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자꾸만 그녀의 글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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