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거짓말
기무라 유이치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상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간략하게 말하자면 멜로드라마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촉망을 한 몸에 받으며 잘 나가던 시나리오 작가 나오키는 어느 날 한계에 부딪치고는 기차를 타고 무작정 도피한다.  바닷가 외딴 마을에서 이름을 히사노리로 바꾸고 바텐더로 취직한 나오키는 순수하고 밝은 라멘가게 집 딸인 고토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고는 점차 마을 사람들을 향해서도 마음을 열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아 다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시나리오는 방송국의 가마타 감독에게 메일로 전달되고 드라마로 제작되어 높은 시청률을 올리면서 나오키에게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재기의 발판이 되어 준다. 그러나 정체를 숨기며 시나리오 작업에 골몰하던 나오키는 사랑하는 고토미의 의심을 사게 되고, 결국 고토미는 나오키가 시나리오를 위해서 자신을 이용했다는 오해를 하고 떠나게 되는 이야기다. 

결말은 깔끔한 해피 엔딩이고, 마을 주민인 트렌스젠더 아케미와 언젠가는 남태평양에서 청새치를 잡겠다는 꿈을 가진 타니 할배, 죽이 잘 맞는 두 친구 히라노와 토시, 다정한 오오사코 노부부,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바보’라며 금요일마다 찾아와 술을 마시는 마키 등 소박하고 진솔한 삶을 살아가는 조연들이 돋보이고, 중간에 살짝 삼각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면서 드라마 같은 분위기를 한껏 띄워 놓는다. 

그러나 같은 사건이 나오키의 관점, 고토미의 관점, 다시 드라마의 내용으로 반복되는 마치 나선형 구조를 보고 있는 듯한 지루함이 없지 않았고, 작가가 책의 뒷부분에 적은 대로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p.320)처럼 상투적이고 통속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자주 보였다.  특히 주인공이 외롭고 처량한 기분이 들 때나 갈등이 일어나 헤어질 위기가 오면 어김없이 내리는 비라든가 드라마에서 봄직한 얄팍하고 진부한 설정들이 무척 거슬렸다. 

차라리 문학작품으로서가 아니라 드라마로 만났더라면 더 나았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장르를 잘못 선택했다고 해야 하나?  문학적 깊이를 원하는 사람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고, 멜로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부담 없이 팝콘 먹는 기분으로 읽고 싶은 분이라면 딱 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벼락같은 운명적 사랑을 믿는 나이를 지나, 이제 남녀간의 사랑을 세살짜리 어린애 재롱 보듯이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그러니 이 책이 전혀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는 것을 슬퍼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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