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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플라톤 국가 ㅣ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4
손영운 지음, 이규환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리뷰의 맹점은 내가 정식으로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내가 20대였을 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플라톤의 <향연>과 <소크라테스를 위한 변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등을 장만하여 읽어보려 했다가 중간에 포기한 적이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 때 덮어버린 후로 섣불리 다시 펴보지 못하고 있는 책들이다. 그러니 내가 600쪽이 넘는 책 열권이 한 세트인 플라톤의 <국가>를 감히 펼쳐보기나 했을까.. 이제 겨우 만화로 된 이 책을 읽었을 뿐이니 원작과 꼼꼼하게 비교해 보고 원작에 대한 충실성을 가늠한다거나 오류를 찾아내는 일은 애초 불가능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플라톤의 철학에 대해서 ‘동굴의 비유’나 ‘이데아론’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의 상식이라고 할 수도 없는, 주워들은 단편적인 풍월만이 전부인 이 무식한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플라톤과 그의 철학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청소년들도 내가 느끼는 정도의 재미와 이해 정도는 무난히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본지식을 얻기엔 딱 좋은 책이다.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플라톤이 살던 당시 아테네의 사회상과 정치상황, 플라톤이 민주정치체제를 반대했던 이유,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계보와 각각의 철학적 사유의 차이점,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그의 철학적 사유와 개념에 대한 설명까지 조목조목 짚어 놓은 것 같다.
그러나 만화라고 쉽고 만만하게 보았다가는 좀 곤란하다. 물론 철학에 조예가 있는 분들이라면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있을 테지만(그런 분들, 정말 부럽다.), 나처럼 철학이라면 지레 신경이 곤두서는 타입이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펼치면서 나는 대학시절에도 난해하게 여겨졌던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지금에 와서 찰떡같이 착착 감겨올 거란 기대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철학개론 시간에 교수님의 설명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아픈 기억과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인 플라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을 때 느꼈던 통쾌함에 대한 기억이 살짝 되살아났던 게 전부였다. (기본지식이 거의 전무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대학시절 철학개론시간에 플라톤 철학에 대해 배웠던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의 지식을 이 만화책을 통해서 얻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플라톤이 주장했던 이상적인 국가 형태인 ‘철인정치체제’에 대해 어줍게라도 주절대며 플라톤의 주장에 반기를 들 수 있었다는 것에 내 나름의 커다란 발전이라고 여기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플라톤은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는 국가를 꿈꾸었다.(그가 민주정치체제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도 민주정치체제는 너무 제멋대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는 수호계급에게 교육과 훈련, 엄격하게 통제된 공동생활, 게다가 배우자와 자녀의 공유까지 요구했으며 아이들의 완벽한 교육을 위해서는 아이들이 열 살이 되면 부모로부터 격리, 모두 시골로 보내어 교육시키는 제도를 주장하고 있다. 마치 로봇에게 프로그램을 입력하듯 인간을 교육을 통해 통제하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에게 질렸다고 해도 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과 플라톤이 주장한 철저한 공교육 시스템은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지만 양쪽 모두 너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다. 플라톤이야 지혜와 용기, 절제가 어우러져서 ‘올바름’과 ‘이데아’를 향해 나아가야만 마침내 철인이 통치하는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나름의 철저한 목표 아래에서 주장한 것이겠지만, 어쩐지 플라톤이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내내 떠나질 않았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로 이성과 격정, 욕구를 이야기했지만 나라면 거기에 정서와 감정을 덧붙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플라톤이 인간의 정서와 감정까지 고려했다면 아이들을 열 살에 부모와 격리시키겠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 것 같고, 또 철인 통치자를 양성하기 위한 경쟁과 시험에서도 인간의 ‘야망’이라는 내면의 그림자를 무시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시를 무용지물로 여기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기게아의 반지’를 낀 목동처럼 인간에겐 교육으로는 통제될 수 없는 본능적인 악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을까?
지나치게 이상적이긴 하지만 (‘이데아’라는 개념자체가 이상적이니 플라톤의 사상이 현실에서 실현불가능한 이상이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민주정치체제의 단점을 꼬집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예리함이 번뜩인다. 특히 얼마 전 대선을 치루고 난 뒤라서 그런지 ‘민주제에서는 지도자가 결정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부분에서 특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대선에서 통치자로서의 자질검증보다는 특정집단의 이익이라든가 매스미디어의 인기몰이에 편승해서 대중의 지지를 얻어낸 후보가 떠올라 무척 씁쓸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플라톤이 다시 살아난다면 “거봐, 민주정체는 역시 좋은 정치체제가 못되잖아.”하며 혀를 끌끌 차지나 않을는지 걱정스럽다.
어떤 정치체제이든 “선과 올바름의 이데아를 실현할 수 있는 국가가 제대로 된 국가이며, 국가의 목표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주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철학적 신념은 따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또한 그가 말했던 ‘통치자의 자질’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플라톤이 요구한 ‘통치자로서의 자질’에 자신이 어느 정도나 적합한지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투표권을 가진 국민들도 선거후보의 자질 검증을 보다 철저하게 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시대에 쓰인 플라톤의 <국가>가 2000년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 인류의 찬란한 고전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주인공인 소크라테스의 대화체 질문이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기 때문이고 ‘모든 계급의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착하고 올바른 국가’라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여전히 우리도 함께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생 딸아이는 내가 보던 책을 슬그머니 빼앗아 읽곤 했다. 학교 도덕교과서에 플라톤이 등장하는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배웠다며 관심을 보였다. 중간에 재미있냐고 물어봤더니, 재미있단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점점 복잡해지니 어디까지 재미있다며 봐줄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 평생에 절대로 펴보지 않았을 플라톤의 <국가>를 맛볼 수 있게 해준(제대로 맛을 본 건지 그것조차도 알 수 없는 처지이지만) 이 책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딸이 끝까지 읽어낸다면 몇 곱으로 고마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