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
사토 다다오 지음, 설배환 옮김, 한홍구 해제 / 검둥소 / 2007년 6월
품절


정말 한국이 가난한 나라였던 1960년대보다도 우리는 21세기에 실행한 이라크 파병에서 '국익'이란 말을 훨씬 더 많이 듣게 되었다. 많은 국민들이 이라크전쟁이 정당한 전쟁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국익을 위한 파병이란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에 이라크전쟁이 침략 전쟁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파병반대의 소리를 내지 못했다면, 과연 우리가 20세기 초반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을 비판할 수 있을까? 일본의 조선 점령과 대륙 진출은 분명 일본의 '국익'을 엄청나게 신장시키는 일이었다. (한홍구 해제 중에서)-12쪽

한국 사회가 많이 민주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군국 소년들이 남긴 병영국가의 잔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심한 곳이 이 책을 많이 읽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학교이다. 일제가 키운 군국 소년들을 자신들이 배우던 그 모습대로 한국의 학교를 만들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토를 달지 않고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전투에 임하는 모범적인 군인의 자세이자, 입시 전쟁을 치르는 전사인 학생들이 취해야 할 자세였고 지금도 그렇다. 건강하고 단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면서 오늘의 학교는 역시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하고 있다. 민주화도, 인권도 모두 교문 앞에 멈춘다.
(한홍구 해제 중에서)-13쪽

20세기 전반기만 전쟁을 치른 일본, 그것도 거의 대부분을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전쟁을 치른 일본에 비해 우리는 내 땅, 네 땅 가릴 것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경험이 너무 직접적인 탓이었을까? 일본의 경우 사토 다다오 외에도 전쟁을 겪은 세대의 쓰라린 체험이 평화를 지키는 큰 힘으로 작용했고, 미국의 경우도 베트남 참전 용사들이 반전 평화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쟁의 참화를 겪을만큼 겪었고, 엄청나게 많은 참전 용사가 있는 한국에서 자기 체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고백과 반전 평화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한홍구 해제 중에서)-14쪽

청일전쟁 때의 일본군도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군도 그 나라 사람들을 돕는다고 내세우면서도 실은 그 땽의 사람들에게는 재난을 가져다주었을 뿐이었다.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할 마음이 없는 자를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다. -78쪽

혁명이든 독립이든 결코 이웃 나라의 힘을 빌려서는 안 된다. 이웃 나라의 힘을 빌려서 이룬 혁명과 독립은 결국 그 나라로의 종속을 불러올 뿐 진정한 혁명과 독립을 일구어 내지 못한다. 또한 똑같은 것을 반대 입장에서 말하면 어떠한 나라의 혁명과 독립은 이웃 나라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진심으로 어떤 나라의 혁명과 독립을 도우려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가 하는 것은 그것과 다르다. 그것은 대체로 그 나라를 자국의 종속국가로 삼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된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돕는 것은 언뜻 보아서는 아름다운 것 같다. 그러나 돕는다고 해도 진정으로 그 나라를 이롭게 하는 지원 방법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 돕는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 나라를 나쁜 쪽으로 몰고 가는 일이 많은 법이다. -80쪽

그러나 인간은 역시 자국이 하고 있는 일의 나쁜 면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이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르고 있는 실상이 일부에 알려졌어도 "그거야, 세상사에는 나쁜 면이 있기 마련이지."하는 정도로 수습해 버렸던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베트남전쟁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들의 손해가 너무나도 커지고, 그것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확연히 알게 되었을 때이다. 자신과 가족이 직접적으로 고통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자신에게 직접 고통이 다가오기 전에 우리가 상대에게 가한 고통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이해해야 한다. -86쪽

그런데 사람은 가족끼리는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 비해, 학교에 가게 되면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학습에서 경쟁하게 되고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어른이 된 후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배운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165쪽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다니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장래 좋은 직업을 얻어 편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 이 세계에서 전쟁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더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이다. -166쪽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은 동물은 하지 못하는 식량 생산 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은 두려워할 줄 모르게 되었다. 무서운 것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데서 길러지는,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본능을 없애 버리고 있는 것이다. -236쪽

동물이 지니고 있는, 싸움을 멈추는 본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만큼을 인간은 이성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인간이 이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동물보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성으로 다툼을 통제하고 나서야 비로소 동물과 같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237쪽

우리는 그 때문에 특히 가난한 나라, 경제적으로 뒤처진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활발히 연구하고, 그것을 일반적 교양으로서 사람들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가난한 나라 사람들과 우정을 쌓아 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평화를 위한 학문, 평화를 위한 학습으로 삼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것은 사회과학의 학습인 동시에 어떠한 의미에서는 도덕 교육이기도 하다. (중략) 그러나 평화를 위한 학문은 세계의 정세가 어떠한지, 어디에 어떠한 곤란한 문제가 있는지 등을 생각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반성의 움직임을 피어나게 하는 학문이다. -243쪽

우리는 학교에서 아주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아주 많은 것을 익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고 소중한 것은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중한 것은 인류가 어떻게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244쪽

내가 전쟁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 중 하나가 인종, 국적, 신분 등에 따른 차별과 편견이 얼키설키 뒤얽혔을 때 발생하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종과 국적에 의한 편견과 멸시는 신분과 계급에 의한 차별이나 불평등과 동일한 것이다.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곤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 곤란한 것을 약자에게 강요하지 않겠다고 전 세계인이 결심해야 한다. 그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제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255쪽

지금 세계 최대의 강대국은 미국이다. 미국은 자유라는 이상을 내세워 세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으면서, 이것에 반대하는 세력을 무찔러 왔다.
그러나 자유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자유라는 이상 속에는 사상과 언론의 자유라든가, 기본적 인권을 지킨다는가, 선거의 자유 등 절대적으로 준수되어야 할 것이 많지만, 상행위의 자유와 같은 것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는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히 동의할 수 없는 점도 나온다. 나아가 앞으로는 공해 문제와 자원 보호의 입장에서 무작정 물건을 낭비하는 자유 등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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