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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미래를 여는 역사 3 - 화해와 평화 ㅣ 만화로 보는 한중일 공동 역사 교과서 3
김한조 글.그림,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감수 / 한겨레아이들 / 2007년 10월
평점 :
만화라고 좀 얕보았던 책이다. ‘만화’라는 형식을 빌어서 얄팍한 지식을 쉽게 전달하려는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와 아이들이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오히려 슬며시 걱정을 하고 있었으니 이 책이 아주 반가웠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특히 역사는 어떤 시각으로 기술하느냐에 따라 읽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기에 더욱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책이 오자마자 중학생 딸아이가 먼저 잡고 읽기 시작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빠져서 읽기에 책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음, 꽤 괜찮은데?”한다. 딸아이 말로는 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 그 예로 도쿄 대공습과 오키나와 전투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 이 역사 만화 정말 괜찮은가 보네, 하고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도 만화라는 이유로 이 책 저 책에 밀려 계속 읽지를 못하고 있다가 며칠 전에서야 읽기 시작했다. 1권과 2권을 읽지 못하고 3권부터 잡았으니 전체적인 흐름을 이야기 하지는 못하겠지만 책의 뒷날개를 살펴보니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서구열강의 근대화요구와 동아시아 침탈, 일제의 침략전쟁과 패망, 그리고 전후 세 나라의 관계에 대한 조망등을 다루고 있어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 전문 만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만화로 보여주는 데 머문 것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의 원인과 의의까지 구석구석 살펴 보여주면서 냉전체제 아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들에 의해 3국이 조종당하고 멸시받는 과정까지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일본이야 냉전체제가 오히려 그들에게 득이 된 점이 없지 않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우 전후 배상처리 문제 등에 상당한 걸림돌이 되어 현재까지 해결을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만화로 이렇게 자세히 다뤄준 것이 고맙기만 하다. 전범처리를 위한 도쿄 재판, 전쟁 피해 배상처리를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에서 일본 측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두둔해주면서도 중국과 우리나라를 따돌린 미국이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통해서는 일본에 군대를 주둔할 수 있게끔 유리하게 처리한 걸 보면서 아이들은 미국이 결코 진정한 우방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미덕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세 아이를 통해 과거를 발판으로 보다 희망적인 화해와 평화의 미래를 열어가는 비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피해자 쪽이든 가해자 쪽이든 전쟁은 모두에게 비극이며 자라나는 어린이들 어깨에 해결해야할 큰 과제가 남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자극하는 내용과 취지가 마음에 쏙 들었다고나 할까...
이쯤 되니까 이 만화책이 도대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랍게도 이 책의 원작은 최초의 동아시아 공동역사서였다. 2003년 중국 난징에서 열린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 평화 포럼’에서 세 나라가 처음으로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펴내기로 결정했는데 그 후 2년 동안 세 나라의 학자, 교사, 시민 54명이 책의 집필과 토론에 참여하여 노력한 끝에 2005년 5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최초의 동아시아 공동역사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가 출간 되었다고 한다. 책을 검색해서 찾아봤더니 정말 있다. 당연히 구매희망도서목록에 올랐다. 만화 <어린이의 미래를 여는 역사> 1, 2권과 함께.
원작에는 만화에 등장하는 시간의 마법사 뽀삐루스(커다랗고 시커먼 개의 모습이다)나 세 나라의 어린이는 등장하지 않을테니 언젠가 읽을 때 어쩌면 그들이 그리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원작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참 잘 엮어간 만화라는 생각이 든다. 중간중간 인용한 당시의 사진 자료들도 그렇고, ‘역사돋보기’라는 꼭지를 통해 만화로 설명이 불충분한 내용을 설명해 놓은 걸 보면 책에 정성을 기울인 티가 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역사 만화책을 알게 되어 너무 기쁘다. (어른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것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근대사에 관한 역사서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