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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의 수수께끼 - 흥미진진한 15가지 쟁점으로 현대에 되살아난 중국 역사
김영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중국사는 긴 역사와 넓은 땅, 그 안에서 격변의 소용돌이가 불 때마다 명멸했던 수많은 왕조와 제왕들 덕에 우리 역사와 긴밀하게 얽혀있음에도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고, 그 광대함에 멀미가 난다. 그러면서도 관심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중국이 이제 그 이름에 걸맞게 세계의 중심이 되어버린 듯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입지를 흔들 지구상 유일한 국가라는 평가를 얻고 있고 게다가 동북아 공정이니 하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제 중국이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고..
이런 저런 이유로 중국에 대한 책이 나오면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EBS에서 ‘사기와 21세기’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던 김영수 님이 쓰신 책이라는 데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흥미진진한 15가지 쟁점으로 현대에 되살아난 중국 역사’라는 부제를 달은 이 책은 글쎄, 단순히 ‘흥미진진’하다고 보기엔 생각보다 무겁고 진지하다고나 할까? 나처럼 중국의 역사를 좀 가볍고 재미있게 만날 생각으로 대했다간 얼마 못 가서 잘못 짚었다는 느낌이 올 정도로 다루고 있는 열다섯 가지 주제들과 그 내용들이 꽤 묵직하다. (물론 내 짧은 역사지식과 한참 모자라는 지적 한계 탓이 가장 크다.) 그 묵직한 무게만큼 읽고 난 뒤에 남겨지는 가치도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 서문에 쓰인 ‘우리 역사가 아닌 중국의 역사라도 각 장면 장면이 우리에게는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하고, 시대를 읽는 깊은 통찰력을 기를 수 있게 돕는다.
역사는 단순히 교훈만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반성의 기회를 주고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주며, 시대를 읽고 미래를 준비하는 수준 높은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자극제가 된다.‘ 라는 글처럼 중국의 역사를 통찰하면서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반추해보게 된다. 역사는 단순히 앎에 머물러서는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다. 과거의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역사를 통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역사와 현재의 가치가 함께 빛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열다섯 가지의 주제를 통해 중국의 역사를 면밀히 살펴보고 오늘날의 우리를 반성하고 고민하는 이 책은 참 착한 역사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이라는 요,순 선양의 비밀에서는 그 감춰진 이면의 진실에서 권력의 위선을 실감하며 씁쓸했고, 절대적인 권력을 쥔 중국 역대 제왕들이 자기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정도를 벗어나 멸망을 자초하는 모습에서는 권력의 위험과 더불어 절제와 균형이라는 쉽지 않은 덕목의 중요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송태조 조광윤과 공명정대하고 청렴하고 유능했던 제갈량, 진시황의 발굴을 일언지하에 반대하며 소신을 밀고 나간 저우언라이 총리에 대한 이야기는 선거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찍어줄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한 나에게 막연한 갈증을 느끼게 했다. 동방의 폼페이라는 나가촌 유적 이야기에서 어머니와 아이가 꼭 끌어안고 죽은 유골 사진 앞에서는 4000년 전에 아이를 안고 죽은 그 유골의 주인인 여인과 못 말리는 모성의 공감이 일어나 울컥, 콧등이 시려왔다. 약 2,200년에 걸친 중국 운하의 역사와 제왕들의 치수에 대한 노력은 그 자체로 장대하고 웅장한 한 편의 서사였다.
이제 중국은 거대하고 막강한 힘으로 하상주단대공정에 이어 동북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등을 통해 중국사 다시 쓰기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그 ‘다시 쓰기’ 작업에 자국에 유리하도록 변형된 왜곡과 끼워 맞추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 게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국가적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국에 비해 우리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둘러싼 논쟁이 일제시대 이후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고, 아직도 식민사관과 반도사관, 집단 이기주의, 심지어 종교적 편견과 독선 등에까지 발목을 잡혀 우리 역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암담하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는 드라마 ‘태왕사신기’로 맞설 것인가, 배용준의 수려한 마스크로 중국의 잘못된 동북공정을 반박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우울해진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의 뿌리가 썩둑 잘려나갈까 두렵다.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는 속담이 쟁쟁 울려온다. 눈 부릅떠야 할 세상인데, 어째 눈을 뜨거나 감거나 안 보이는 건 똑같다는 이 대책 없는 무력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아무래도 요즘 신문이며 TV며 하다못해 동네 담벼락까지 점령한 그 분들에게서 우리의 밝은 미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모두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보호하거나 지켜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굳이 오늘날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 핵무기가 아닌 역사를 무기로 들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송두리째 왜곡하거나 말살할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에 더 무섭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이다!’(p.265)
어쨌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찾는 모든 일들을 우리 손으로 해 나가야 할 때인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