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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신화의 수수께끼 - 아주 오래된 우리 신화 속 비밀의 문을 여는 30개의 열쇠
조현설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평점 :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한겨레 옛이야기’시리즈를 2003년 1월에 구입했었다. 어린이 대상으로 쓰인 우리나라 신화와 민담, 전설에 대한 책인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15권을 한꺼번에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내가 아끼는 책으로 책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책들에게 내가 마음을 빼앗겼던 이유는 건국신화나 시조신화만이 우리 신화의 전부인양 여겨지고 있던 때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대별왕 소별왕, 바리데기, 한락궁이, 황우양씨와 막막부인, 오늘이, 궤네깃또, 자청비 등등의 무속신화를 소개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라는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만화책이 한창 유행을 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반갑고 예쁜 책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그 이후로 아이들을 위한 우리 고전과 신화에 관련된 책들이 꾸준히 출판되어 나왔던 것 같다.
우리의 다양하고 정겨운 신화들이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오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신화가 감추고 있는 상징과 비밀들을 덮어두고 재미있는 옛이야기로만 알고 지나간다는 것이 자꾸 개운치 않아서 누군가 내게 신화의 비밀을 풀어 설명해줄 책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이 책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던 단군신화에 대해서조차 내가 모르고 있던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단군신화 속 웅녀와 연결되는 곰나루 전설과 에벤키족의 웅녀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여성신의 타자화, 주변화에 대해 안타까움이 일었다. 게다가 단군을 낳은 것이 웅녀가 아니라 백호라는 신화도 존재하고, 환웅의 남근이 너무 길어서 다른 동물들이 모두 마다했는데 오직 곰이 환웅을 맞이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다소 민망하고 황당한 설화도 있다고 하니(물론 신화에서 표현되는 거대한 남근은 처음엔 창조신의 상징이었다가 국가권력의 상징으로 변형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도대체 잊혀진 우리의 신화와 전설, 민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싶기도 했다.
저자에 의하면 신화의 섬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에만 18000여 명의 제주신과 500여 편의 신화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건국신화나 시조신화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인 셈이다. 이 책 안에서 새롭게 만난 신화와 전설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 숨은 뜻을 알고 나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다. 그 안에는 문명화된 세계에 대한 비판, 여신의 역사적 패배와 소외로 인한 주변화, 남신의 수렵문화와 여신의 농경문화의 만남과 충돌, 왕권의 정당화와 강화를 위한 신화의 변용, 남성 중심 문화로의 변모 등등의 속내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원래 시를 공부하다가 신화를 만났다고 한다. ‘시적 상상력과 신화적 상상력, 시적 사유와 신화적 사유가 둘이 아님’을 알고 신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데 그 말의 의미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30개의 챕터마다 마지막 부분에 본문에 나온 신화나 전설 등을 간략하게 실어주기는 했지만 우리 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있어야 읽기가 더욱 수월할 것 같다. 게다가 몽골과 시베리아, 중국과 일본, 인도네시아 등지의 여러 부족의 신화와 전설이 얽혀 들어가 있어 저자가 우리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줄 여유는 없는 듯 보인다. 따라서 <살아 있는 우리 신화>(신동흔 저, 한겨레출판)이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서정오 저, 현암사), <왜 우리 신화인가>(김재용,이종주 저, 동아시아)등등의 우리 신화를 소개한 책들과 함께 읽는다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