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 참 우리 고전 6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 돌베개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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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연암선생 서간첩’을 번역한 책인데 연암 박지원의 소소한 일상과 꾸밈없는 자잘한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는 편지 33통이 소개되어 있다.  주로 친구와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인데 <열하일기>의 글들을 통해 만났던 연암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풍긴다.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리듯 꾸짖는 모습하며, 해산한 며느리나 병든 손자를 걱정하는 세심한 마음하며, 큰아들의 과거 준비를 멀리서나마 하나하나 챙겨주려는 세심함, 그리고 직접 고추장을 담가 아들에게 보내는 다정다감한 심성 등이 드러나 있어 <열하일기>에서 보였던 호탕하고 호방하면서도 정곡을 찌르고 핵심을 꼬집는 서슬 퍼런 기운은 발견하기 어렵다. 

연암의 가난함이야 모르지 않았지만 치질과 당뇨병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돼서 그런지 어쩐지 웃음이 나면서도 안쓰러움이 느껴졌고, 백탑파의 아름다운 벗들 중 하나인 박제가를 두고 무상무도하다고 표현한 데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상무도하다는 말은 ‘버릇없고 무례하며 도리에 어긋나서 막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거의 욕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옮긴이 박희병 님의 말마따나 우리가 알고 있는 텍스트의 이면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대문호 연암 박지원’이 아니라 ‘인간 박지원’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박희병 님은 책의 말미에 붙은 해제글을 통해 이 책에 실려있는 연암의 편지들은 ‘사적인 가족성’(p.153)과 ‘꾸밈없음’(p.153)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집에 실려 있는 문학성 짙은 편지들과 구별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편지들을 통해 연암의 가족애를 볼 수 있고 연암의 꼼꼼하고 주도면밀한 성격과 함께 유머러스한 면모를 살필 수 있으며 그의 서화 취향과 애민적 면모, 주변 인물들에 대한 연암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의 주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비판적 조선 지식인의 내면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200여 년 전의 조선시대 사회상을 모르니 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생각보다 글의 분량이 적은데다가 편지글마다 꼼꼼한 각주와 해설이 딸려 있어서 읽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골수 친일파 박영철이라는 인물에 의해 이 서간첩을 비롯한 연암의 많은 글들이 후세에 전해졌다는 것은 좀 찝찝한 일이지만 (이 서간첩은 박영철의 컬렉션 번호 274번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연암집>도 박영철 간행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책을 통해 영웅화된 대문호 연암이 아니라 이웃에 사는 친근한 할아버지로서의 연암을 만나게 된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아버지를 회고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 있다.  <나의 아버지 박지원>이라는 책인데 아들의 눈으로 바라본 아버지로서의 연암을 또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스멀거리며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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