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의 유산 VivaVivo (비바비보) 1
시오도어 테일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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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독일군은 카리브 해의 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열두 살 소년 필립은  ‘불안해하는 게 주특기인'(p.16) 엄마와 함께 마이애미로 떠나기 위해 배에 오른다.  그러나 항해 도중 어뢰공격을 받게 되고 필립은 눈이 먼 채로 흉측한 생김새의 흑인 티모시와 바다를 표류하게 된다. 그러다가 ’악마의 아가리‘라는 외진 무인도에 도착한 필립과 티모시는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함께 하면서 인종과 나이,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키우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나 <파이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고 소년이 고난을 이겨내고 성장한다는 성장 소설 특유의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시대배경이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점, 그리고 인종을 초월한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지나친 비약일지는 몰라도 공간적 배경이 되는, 탈출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외딴 무인도 ‘악마의 아가리’가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배경과 겹쳐지기도 했다. 전 인류가 전쟁의 화마 속으로 떨어져 눈이 먼 것처럼 방향을 잃고 표류하던 시기가 ‘악마의 아가리’라는 소설 속 공간으로 상징화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도 그렇지만 일본의 식민정책에 의해 온갖 차별과 억압, 폭력과 희생을 강요당했던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차별과 편견에 의한 잔혹한 폭력이 횡행하던 시기이니 저자가 2차 세계대전을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헌정하는 작품의 시간적 배경으로 선택한 것이 무척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티모시의 강인하고 우직한 성품은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는 신경질적인 필립 엄마의 성격과 무척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시력을 잃은 필립은 처음엔 티모시에게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의존할 뿐 아니라 반항하고 투정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이지만 야자열매를 따고 돗자리를 짜고 낚시를 하고 병든 티모시를 곁에서 지켜주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마치 자신과 아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면서 남편과 섬 안의 다른 주민들을 버리고 떠나는 엄마의 유아기적인 이기심을 따르던 필립이 열악한 삶의 조건을 강인하게 견뎌가며 살아낼 뿐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도 돌볼 줄 아는 티모시의 성숙한 인간적 면모를 닮아가는 것만 같다.

필립은 구출되고 엄마를 만나고 시력을 회복한다.  그리고 미국이 아니라 아빠가 계시는 카리브 해의 빌렘스타트로 돌아간다. 필립이 성장한 것만큼 엄마도 변화한 것에 마음이 놓였다.  필립이 훌쩍 성장했는데 엄마가 계속 유아기적 심성에 머무른 채 필립을 대한다면 무척 난감할 터..  (아이의 성장을 못 알아차리는 둔감한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

어린 소년의 성장이야기라고만 볼 수 없는 숨은 뒷맛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흑인 인권 운동에 헌신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사건도,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도 이제 거의 반 백 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악마의 아가리’ 속에서 구출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우리가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어 필립과 티모시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우정과 신뢰, 배려와 존중이 가능해져야만 ‘악마의 아가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한 소년의 성장이 아니라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인류 전체의 성장과 변화를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립의 엄마가 보여주는 변화된 모습은 그래서 더욱 이야기를 희망적으로 만드는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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