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 '이해의 선물' 완전판 수록
폴 빌리어드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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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빌리어드라는 작가가 이 책 속에 기록해놓은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에 비하면 내 어린시절은 정말 따분하고 너무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가 어린시절에 저질렀던 사건과 사고들, 그가 만났던 따스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에 은근히 질투가 나기도 한다.  나도 좀 더 말썽도 부리고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해보기도 하면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다. 

지난 시절의 추억은 흘러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기본 골조가 되어 아직도 나와 함께 숨쉬고 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견딜 수 없게 아팠던 상처들과 온 세상이 내 것만 같았던 기쁨들 모두가 이제는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기준과 틀이 되어 나를 제약하기도 하고 부추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폴 빌리어드라는 이 사람은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완고함과 엄격함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들의 말을 믿고 아들 편에 서는 믿음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도 있고, 팍팍한 경제논리에 앞서 아이의 순수함을 지켜줄 줄 아는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위그든씨와 자전거를 선물해주고 타는 법을 가르쳐주는 상냥한 작은아버지와 작은 어머니, 어린 아이의 순수한 애정을 믿고 이해해주는 벤슨 선생님과 천진한 질문을 위해 대답을 미리 준비해가며 기다리던 전화교환원 존슨 부인, 개구쟁이의 양배추 서리를 눈감아 주고 품평회에 내보낼 소중한 양배추를 아이에게 선물해 줄줄 아는 아량 넓고 정 많은 존 베커씨 등등..  그가 어린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은 순박하고 정이 많은, 따스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도 내 지나간 과거의 시간 어디쯤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만났건만 내가 그들의 따스하고 다정한 마음을 헤아릴 만큼 마음이 깊지 못하여 내 추억이 행복한 기억으로 더 풍부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건 아닐까?  작가의 추억이 이렇게 따스한 건 작가가 따스한 시선으로 지난 기억들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읽으면서 종종 책을 덮어가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보려고 애쓰게 만드는 책이었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내가 그리워할 지난 시간이 될 거라는 생각에 갑자기 모든 것이 소중해진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좋은 추억이라던데, 나에게 이 책 속의 이야기만큼의 좋은 추억이 없다는 걸 불평하기보다, 이제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냉혹살벌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솜털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기분에 젖게 만드는 책들도 있다.  양쪽 모두 삶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 근본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은 나쁜 면도 있지만 좋은 면도 함께 갖고 있다는 것, 양지와 음지, 비극과 희극이 늘 공존한다는 것, 그 양면 모두를 세심하게 살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점점 추워지는 계절에 맞게, 시기적절하게 출판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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