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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기 - 세계가 높이 산
최준식 지음 / 소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우리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록유산 등재라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사실로 다가오지 않았었던 건, 등재가 당연하다는 식의 우월감 때문이 아니라 우리문화를 폄하해 바라보는 문화적 열등감과 무지 때문이었다. 이 책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우리 문화재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학교 국사시간에 누구나 들어봤을 ‘직지심체요절’,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고려대장경’,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과 차례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의궤’까지 다루고 있다.
그것이 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는지,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중국문헌으로 분류되어 있던 직지를 발견하고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인쇄본으로 인정받기까지 분투한 박병선 박사님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세계 최초의 인쇄본 다라니경이 발견되던 때의 극적인 이야기, 조선 세종 때 고려대장경을 탐낸 일본이 사신을 보내 단식투쟁까지 벌여가며 대장경을 가져가려고 하던 이야기, 또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에 불복하면서까지 귀중한 유산을 지켜낸 김영환 대령님의 이야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의 실록을 지켜낸 선비 안의와 손홍록의 이야기 등등의 일화가 소개되고 있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의 찬란한 기록유물들을 토대로 풀어내는 우리민족의 드높은 인문정신, 치밀하고 세밀한 기록정신, 그리고 그런 훌륭한 기록물들이 나올 수 있었던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적 토대들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반성하게 되고 폄하되었던 우리 옛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의 싹이 돋아나는 걸 느끼게 된다.
매일매일 날씨와 천체의 변화는 물론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히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이라크 자이툰에 우리 군대를 파병하는 국무회의 기록이 단 두 줄로 처리되었다는 사실도 참담하거니와 전재산 29만원의 신화를 남긴 전두환은 아예 국무회의 기록을 자기 집으로 싸들고 들어갔다니 어이없고 황당하기만 하다.
‘훈민정음’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글에 담긴 과학적 원리와 한글의 우수성을 피력하고 있다. 수박 겉핥기식이거나 세뇌시키듯 되풀이 되던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주장은 항상 뚜렷한 근거도 논리도 없는 듯 보였었다. 심지어 고등학생 시절 한 선생님은 영어는 항상 주어 동사가 분명하고 우리말처럼 애매하지 않다며 영어에 비해 우리말과 글이 한참 뒤떨어진다는 듯 혀를 끌끌 차곤 했다. 그러나 이 책에 쓰여진 글대로 휴대전화 문자시대의 엄지족의 탄생도 한글의 과학적인 구조와 편리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IT시대에 우리가 컴퓨터 자판에 적응력이 뛰어난 것도 필경 한글 덕이다. 간송 전형필 님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키기 위해 힘쓰신 노고(전형필 님께 우리가 어디 훈민정음 해례본의 덕만 입었겠냐만) 새삼 머리가 숙여지는 것은 해례본이 아니었다면 한글 창제의 원리도 모른 채 ‘세종이 문의 창살을 보고 우연히 만들었다’는 해괴한 주장을 한 마디 반박도 못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는 아찔함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 앞서 <한국인을 춤추게 하라>는 책에서 우리민족의 신기를 설명했다고 한다. 신기에 문기를 덧붙이면서 저자는
“저는 지금까지 본 문기와 신기의 정신이 한국인의 심성 안에 내장되어 있는 멜로디 혹은 가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멜로디가 한국인에게 다시 들려질 때, 한국인은 자신만의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춤을 추면서 한없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동안 겪었던 많은 아픔들을 스스로 치유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자신 속에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이나 자신들의 문화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문기와 신기의 정신이 어우러진 멜로디가 우리 귀에 하루 속히 들려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