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짧은 소설집’이라는 수사가 따라붙었지만 작가의 소소한 일상들, 가족에 대한 사랑, 좀 더 넓게는 우리나라와 문학 등등에 대한 생각들을 모아놓은 수필집이라 보는 편이 더 무방할 것 같다.  <별들의 고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 등의 작품은 영화화되기도 했을만큼 ‘최인호’라는 작가가 대중 속으로 파고 든 힘은 상당했다.  당시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할만 한데, 최근 <유림>등 역사를 되짚는 작품들이 출판되는 걸 보면서 ‘최인호라는 작가도 나이를 먹는구나..’했었다. 

<꽃밭>을 읽으니 새삼 그런 느낌이 더 진하게 다가온다.  환갑을 넘긴 지긋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인생길에서 만난 한 송이 꽃처럼 피어 있던 아름다운 친구와 지인들에 대한 추억, 그 길을 함께 걸어준 아내와 가족에 대한 고마움, 분단된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글픔, 사회 저변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고 걱정하는 애정과 관심들이 책 속에서 곱게 피어나고 있었다. 

암투병 중에 그려낸 김점선님의 꽃그림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어떤 때는 옆구리에서, 또 어떤 때엔 모서리에서, 때론 밑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마치 길을 가다 돌 틈에서 문득 피어난 꽃을 발견하고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러다가 중간 중간 페이지 하나 가득 펼쳐있는 꽃밭 그림을 만나기도 했는데, 마치 강물에 떠내려 오는 꽃을 따라 가다가 무릉도원을 만났다는 옛이야기를 책 속에 재현해 놓은 듯, 흐드러지게 또는 소박하게 피어있는 꽃 그림 앞에서 잠시 따스한 봄볕 아래 서 있는 듯한 황홀함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 안으로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기도 하고, 새 한 마리가 종종대며 지나가기도 하고,  오리 두 마리가 고개를 디밀기도 하여 정겹기 그지없다.

나이가 들고 병이 들면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더 진해지나 보다.  젊음의 열정이 찬물을 맞아 푸시식 식어버리고 삶이 저만치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싶을 때,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고 느끼고 감동하는 감수성은 더 민감해지는 것 같다.  생명이라는 그 펄떡이는 눈부신 에너지를 만땅으로 재충전하고 싶다는 바람, 지난 삶에 대한 그리움이 글과 그림에서 느껴진다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 

너무 아름답고, 너무 긍정적이고, 너무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난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꽃밭>을 읽은 지금만큼은 나도 내 살아온 나날들 속에서 꽃처럼 피어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고 싶어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에게 아름다운 꽃이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로맨틱한 감상에도 젖어본다. 내 인생의 ‘꽃밭’이 좀더 꽃으로 울창해지기를, 나 또한 서슴없이 다른 이의 꽃밭에서 활짝 피어나는 꽃이 될 수 있기를,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게 되는 책이었다.

 

아쉬움 하나....
‘껍데기는 가라“(p.215)와 ’아직 오지 않은 평화‘(p.248)은 글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읽다가 출판사에서 실수로 같은 글을 제목만 바꿔서 두 번 실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경우엔 둘 중 하나만 책에 싣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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