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누가 슈퍼맨인데?”
그때 내가 물었다.
“나.”
그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너,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바로 우리들이지.”  (p.79)

가슴 속에 부모와 세상에 대한 증오와 경멸, 분노의 불을 갖고 있던 발테르와 안드레아는 자신을 슈퍼맨이라고 인식한다. 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 시선의 변화를 돌아보았다.  발테르와 안드레아의 시선과 의식세계를 좇아가다보면 예전 나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그렇게 심도있고 날카롭게 한 인간이 자신의 내부와 외부 세계를 탐색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었고 그것이 이 소설이 가진 힘이 아니었나 싶다.

내게도 치기어린 시절이 있었고, 세상의 부당함에 대해, 부모의 꽉 막힌 사고방식과 고집스런 삶의 태도에 대해 분노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나도 나 자신을 예민한 감각으로 세상을 직관하는 능력을 가진 슈퍼맨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 시절  세상은 싸워야 할 상대였고, 나는 세상에 대해 엄정한 심판을 내려야 했다. 세상은 이해 불가능한 혼돈이었으나 웃기지 않게도 나는 그 혼돈의 수수께끼를 풀고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플라스틱 장난감 칼 하나 들고서 세계대전을 막아보겠다는 무모함과 다를 게 없었다.

“분명 우리를 위한 가까운 길도 있을 거야.”
페데리코가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다면 평등이란 게 얼마나 거지같은 거겠어? 하지만 여긴 흐르는 모래들로 이루어진 미묘한 구역이야.  냄새를 맡고 철저히 검사할 필요가 있어. (중략) 그 안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어느 날이든 그 균형은 깨질 수 있어.  (중략) 그 안에 들어가고 싶으면 네 자신의 꽃다발을 만들어야만 해. ” (p.185)

바깥세상의 혼돈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했다. 어떤 방법을 쓰든 패배가 자명해 보였다. 난 내가 들고 있는 것이 겨우 플라스틱 장난감 칼이었다는 것을 알아챘고 저 페데리코 같은 인물들이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내 손에 쥔 것이 플라스틱 장난감이었다는 걸 확인한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무릎 꿇기? 패배 인정?  아니었다.  내게 플라스틱 장난감 칼밖에 쥐어주지 않은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었다. 나는 속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장난감 칼을 놓지 않았다. 우습게도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꽃다발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난 가끔 아버지가 말했던 ‘미안하다.’라는 말과 안드레아가 되풀이 했던 말을 되새겨 보았다.
“무엇 때문에 죽는 순간에 두 사람 모두 똑같은 말을 했을까요?”
수녀님이 대답했다.

“여정의 끝에 서 있을 때에서야 뒤에 있던 게 분명히 보이는 경우가 있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빛으로 자신의 행동을 비춰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갑자기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과거의 일들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는 거지요.  아마 나 역시 그럴 겁니다.”  (p.340)

그래, ‘미안하다.’는 게 어떤 마음의 결을 타고 흘러나오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에 왔다.  언젠가는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 사람도 몇 있다.  난 이레네 수녀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레네 수녀님은 안드레아를 파멸로 몰고 간 것은 그의 지적 능력이었으며 안드레아가 자신을 현미경 같은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안드레아는) 날카로운 사고를 통해 자신이 전능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그 위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아마 부분적으로는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그 도구 위에 딱 달라붙어 있는 눈 때문에 자기 앞에 열린 건 아주 작은 조각의 현실뿐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죠. 망원경들은 사물을 가깝게 볼 수 있게 해주고 제한된 모퉁이를 확대시켜 주지요.  안드레아는 망원경으로 20도 각도의 현실을 보았는데 그 주위에는 340도가 있었지요.  결국 안드레아는 망원경에서 눈을 뗐을 때 그 총체적인 광경을 지탱해 낼 수 없었어요. 그는 참을 수가 없었지요.” (p.342)

이제 화해할 시간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난 이제 나의 부모님보다 인생을 더 훌륭하게 살았다고 자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분들이 이루어 놓은 것보다 난 훨씬 더 적은 것을 이루었고, 그 분들보다 더 치열하게 삶을 살지도 않았다.  세상은 거칠었지만 장난감 칼을 내려놓은 나에게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도 차가운 얼음도 아니었다.  그저 따스한 온기,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기였다. 어린 아기를 안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순수의 온기, 연민, 애정 같은 것들... 

발테르는 허름한 수녀원에서 고백한다.
‘성장한다는 것은 그 상태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되찾는 것이다.  우리들 본래의 눈빛을 되찾는 것이다.’(p.354)라고.  그리고 ‘나는 숨을 쉬고 성장을 하는 우주였다.’(p.355)고.  세상은 내 건너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내가, 우주와 내가, 모든 생명과 내가 함께 하는 그 어떤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일 터이다. 발테르의 방황과 고민은 세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의 과정이었으리라.  그리고 안드레아가 사막에서 여우를 만나고, 살육의 현장에서 어린아이의 눈빛을 마주하고 괴로워했던 것은 지성만으로 살아지지 않는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차가운 지적 판단 체계에 틈을 내고 올라온 연민과 동정의 싹 때문에 그는 그가 여지까지 확신했던 가치체계가 무너지는 혼란을 겪고 당황했던 것은 아닐까. 

충분히 방황하고 부족함 없이 고민하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레네 수녀 같은 현자를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 서평의 글이 책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 책을 통해 만난 나의 모습을 고백한 게 돼버린 것 같아 어쩐지 불편하다. 그러나 끝나지 않은 나의 삶에서도 방황과 고민 앞에 놓여있는 다른 이들의 삶에서도 그 마지막엔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함과 ‘본래의 눈빛을 되찾는’ 지혜와 세상에 대한 연민과 타인의 대한 사랑, 구름 속에 가려진 어두운 허공이 아니라 작은 씨앗 속에도 가득차 있는 완전한 세계를 만나게 되기를 빌어본다. 

사족 ; 책 표지에 어둡고 흐릿한 색으로 그려진 물고기 떼에서 슬쩍 벗어난 물고기의 반짝이는 몸통 반쪽이 보인다.   물결을 타고 흘러가는 어둡고 흐릿한 물고기 떼 속에서 가끔은 슬쩍 빠져나와 빛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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