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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ㅣ 풀빛 청소년 문학 5
도나 조 나폴리 지음, 김민석 옮김 / 풀빛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민족의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주인공 로베르토가 무솔리니 치하 이탈리아 국적의 소년이며 당시 이탈리아가 독일과 군사동맹을 맺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고려한다면, 로베르토를 비롯한 그 시대의 아이들에게 일어난 불행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생각하면 전쟁의 참혹함이 아이라고 해서 비껴갈까, 하는 생각에 이야기 속 상황이 납득이 되었다.
로베르토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독일군에 의해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가 전쟁의 광풍을 온몸으로 겪게 된다. 아무리 군사동맹 관계의 독일과 이탈리아지만 히틀러와 무솔리니라는 두 파시스트의 광적인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전쟁이라는 잔인한 속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독일군이 이탈리아 국적의 아이들을 강제 동원, 징용하는 일이 가능했단 사실에 놀랐다. 그런 어이없는 상황, 비참한 현실의 와중에도 로베르토는 함께 끌려간 유대소년 사무엘과의 우정과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온 소녀에 대한 동정을 보이며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 사무엘이 죽자 로베르토는 사무엘의 유언대로 ‘싸우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이 네 마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수용소를 탈출한다. 죽음과 팔짱을 끼고 가는 듯 위태로운 탈출의 여정은 소설의 반을 차지하는 분량이다. 작가가 수용소 안의 비참한 현실과 맞먹는 분량으로 로베르토의 생명을 건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마도 전쟁을 향한 절망보다는 전쟁 속에서도 잃지 않는 희망,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의지를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필요한 건 돌이에요. 돌만 충분하고 물이 깊지 않다면 물 위에 도시를 세울 수 있어요. 베네치아처럼요.”
“아저씨, 나는 돌이 될 거예요. 새로운 도시를 세우는 데 필요한 돌 말이예요. 아저씨도 그런 돌이 될 수 있어요.” (p.258)
로베르토가 이탈리아군의 탈영병 마우리치오에게 하는 이 말은 이 책의 원제 Stones in Water를 생각나게 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전쟁 속에서의 희망과 평화의 재건이라는 상징을 담은 ‘돌’을 수용소에서 만난 비참한 몰골의 폴란드계 유대인 소녀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 땅에서 자라나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로베르토의 돌’을 갖기를 바라면 욕심일까. 총격이 오가고 미사일이 떨어지는 전쟁 중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오늘의 현실은 나름대로 참혹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십대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진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고 답답한 현실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수도 없을 만큼 무능력한 어른이지만 그들의 손바닥 안에 ‘로베르토의 돌’을 살며시 쥐어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포기하지 않는 희망, 절망을 견디고 피워내는 꿈, 캄캄한 현실 속에서도 빛을 찾아가는 용기, 고통 앞에 무릎 꿇지 않는 강한 의지가 ‘로베르토의 돌’의 의미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로베르토가 수용소를 탈출하여 파르티잔으로 살아갈 것을 돌을 손 안에 꼭 쥐고 결심했듯이 우리 아이들도 소중한 자기 삶 속에서 의미 있는 미래를 희망하고 용기 있게 나아가기를 가만히 빌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