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능력과 더불어 개인적 친밀함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행동 유형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교회와 세속 당국의 합법성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떤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의 자유 공간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독립적인 자존심 또한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세상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상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출생과 전통으로 매개된 모습이나 남자가 보는 모습과는 분명코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부장적 후견에서 여자가 해방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들판을 향해 난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17세기무렵)-27쪽
케르테츠의 사진에서는 세계의 모든 장소에서 가능한 상황이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책은 읽혀진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독자는 항상 아주 특별한 - '선택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들 정도다 - 개인이다. 케르테츠의 카메라는 책 읽는 사람을 주변 세계로부터 고립시킨다. 독서를 위해서 그리고 독서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주변 세계와 격리시키는 것처럼. 고독한 대중 속에서 그는 내면으로 침잠해가는 개인이고, 외면을 향한 소비자 무리에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 게으름뱅이다. 시선의 방향을 바꾸지 않은 채로 그는 책이나 신문을 쳐다보고,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상을 관찰자에게 준다. -44쪽
독서는 유쾌한 고립 행위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예의 바르게 자신을 접근하기 힘든 존재로 만든다. 외부 사람을 외한 것이 아닌 이 같은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마도 화가들이 오래 전부터 책 읽는 사람을 그리는 것에서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점일 것이다. -47쪽
조용하게 책을 읽는 여인은 책고 동맹을 맺고, 이런 동맹은 사회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공동체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녀는 오직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자의식을 획득하게 된다. 이제 그녀는 전통적인 모습이나 남자의 세계상과 일치하지 않는 자기 나름의 세계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69쪽
개인의 감수성을 가꾸는 일에서 중심적 위치가 독서에 부여되었다. 독서는 종이에 옮겨진 다른 사람의 감정 속으로 자신을 옮겨놓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의 감정적 가능성의 지평을 탐구하고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125쪽
열광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독서와 삶을 동일시하는 유혹에 아주 쉽게 그리고 기꺼이 굴복한다. .......... 책 읽기는 삶을 살고 견디도록 이끌고 고무하는 것이다. 독서를 삶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책에서 치유력을 빼앗는 것이며 열정에서 고통의 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43쪽
독서는 일종의 정식 만찬 사이에 낀 간식 같은 것이다. 현실 속 삶의 곡예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항상 커다란 장면만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중간 휴식 시간에도 종종 세상의 취미와 무게에서 생겨난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그것이 사람들이 삶을 감지하는 순간이다. -149쪽
...... 그녀는 내용에 아주 집중해 있으며 자신과 책 사이의 거리를 되도록이면 줄이려고 하는 것 같다. 책 읽는 사람과 책이 하나로 녹아드는 것, 그들 사이에는 더 이상 어떤 빈 자리도 없다. 이렇게 책을 읽는 여자는 작은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편안한 의자와 등불 그리고 마음을 사로잡는 책만 있으면 된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등잔불 옆에서 책 읽기',1858년)-162쪽
이 평범한 중년의 우수에 찬 현명한 부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정신적 삶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을 밝고 서 있는 거야. 책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안내를 하지. 하지만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야.' -고흐의 '아를의 여인(지누 부인), 1888년--170쪽
독서가 책에 쓰인 것을 그대로 믿고, 책과 현실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부터 책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영혼의 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남은 마지막 광채조차 빼앗아가 삶을 초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책은 삶이라는 험난한 항로에서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의 기능을 수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넘쳐나는 책 사태 속에서 올바른 책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필수 과정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는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어려운 탐사 여행과 같은 것이 되었다. -182쪽
즉각적이고 공감각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시각 매체가 인간의 지적, 정서적 활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대중 매체 시대에, 구시대를 표상하는 인쇄 매체인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거의 모든 사람이 이 같은 질문을 한 번쯤은 던져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환경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빠르게 지나가는 삶의 흐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고 정신적 안정을 주는 고정된 발판을 찾으려는 내면적 욕구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마치 특정한 냄새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된 중년 남자처럼, 파편화한 세계에 살고 있는 개인은 책을 통해 이전의 온전했던 삶, 행복했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187쪽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해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통해 얻게 된 고독의 순간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고독하게 책을 읽는 사람을 빨아들일 정도로 강한 궤적을 남기면서 삶은 독자의 주위를 지나가고, 책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성벽은 삶의 흡인력을 막아낼 정도로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88쪽
마르케는 화가로서 자신은 삶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이 아름답거나 흉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린이 지닌 진정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경전 속에서 끄집어낸 듯한 자세의 모델이 아니고, 화가(그리고 관찰자)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독서에 몰두한 모습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다. - 알베르 마르케, 서 있는 여인의 나체화, 1910년-206쪽
독서의 보호를 받으면서 우리는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228쪽
책 읽는 여자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녀들은 좀더 영리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또 단지 이기적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녀들은 혼자서도 아주 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혼자 있는 것, 자신의 환상과 작가의 환상만이 만나게 되는 것이 독서가 주는 커다란 기쁨 중의 하나다. -263쪽
독서에서 자신감이 자라나고, 자신감에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용기가 자라난다. 남자는 생각하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고트프리트 벤은 한 편지에서 말한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서 두뇌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이 자극받기를 원한다." 우리 여자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는다. 나이가 들수록 여자에겐 때때로 책이 남자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심장이 감동받기를 원한다. 시인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269쪽
"사람은 삶을 통해서 배우며, 독서를 통해서 배운다."라고 귄터데 브로인은 말한다. "그리고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항상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삶에 대해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독서를 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도 함께 사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보충해서 말하겠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느끼고 함께 사랑한다'고.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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