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노래 힘찬문고 14
스콧 오델 지음, 김옥수 옮김, 김병하 그림 / 우리교육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아베총리가 미국의 눈치를 보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오만함을 살짝 숨기는 제츠쳐를 취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 나라의 사죄요구를 뻔뻔함으로 거절해오더니 강대국 미국의 헛기침 몇 번에 고개를 숙이는 척 하고 있는 게 영 기분이 나쁘다.

그러고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일본의 잔혹한 식민통치를 보고 뭐라고 할 만한 입장도 아니지 않은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그들이 아니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미국도 일본을 능가하는 잔혹함으로 그 원주민들을 몰아내었으며, 아프리카 흑인들을 데려다 노예로 삼고 잔인하게 부려먹었고, KKK단으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의 역사를 이어가는 나라니까 말이다.  자기 반성이 부족한 두 나라끼리 서로에게 네가 잘못했다며 충고하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달빛노래>는 최강대국 미국의 어두운 역사를 배경으로 쓰여진 책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1863년에서 1865년 사이에 일어난 나바호 인디언의 2년에 걸친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1863년 6월에 미합중국 정부는 키트 카슨 대령에게 애리조나 북동쪽에 자리잡은 나바호 인디언 지역에 가서 모든 작물과 가축을 완전히 말살시키라고 명령했고, 그 명령을 따른 카슨 대령은 그 지역을 약탈한 다음, 도망치는 나바호 인디언을 추적해서 반항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여름요새'로 강제 이주시켰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한 인디언 소녀의 시각으로 잔잔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주인공 소녀가 사랑하는, 부족의 용감한 전사 '커다란 청년'이 점점 나약해져 가는 모습은 인디언들의 몰락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는 듯 하여 마음이 아파왔다.  옥수수를 키우고 양떼를 돌보며 평화롭고 따뜻하게 살아가던 인디언들은 침입자들에 의해 마을에서 춥고 배고픈 땅으로 내몰린다.  용감했던 남자들까지도 두려움에 질려서 '신이 우리에게 내린 벌'이라고 하며 고개만 저을 뿐이다.  '커다란 청년'과 결혼한 소녀는 뱃속의 아기를 그 춥고 배고픈 '기다란 칼'들의 '회색요새의 그림자가 비치는' 땅에서 낳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고향의 계곡,  돌보던 양떼들이 그리운 소녀는 남편 '커다란 청년'과 함께 요새를 탈출한다.

강대국 미국 역사의 치부를 소재로 쓰여진 글이지만 그 고발성이 짙지는 않다.  그건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 맞춘 글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디언들을 그들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고 보스크 레돈도에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폭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을 불태우고 경작한 밭을 못쓰게 만든 다음 인디언들을 보스크 레돈도를 데려가는 것이 전부다.  강제 이주 되는 길에서 노약자들이 죽긴 하지만 오랜 노정에 지치거나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이지 백인들의 직접적인 폭력 때문에  죽는 장면은 없다.  언어적 폭력조차 없다.  백인은 묵묵히 그들을 몰고 갈 뿐이다.  마치 인디언 소녀가 아침마다 양을 몰고 나가 초원의 풀을 뜯겼던 것처럼 백인들은 인디언들을 몰고 가며 날마다 밀가루를 배급해 먹인다.  인디언 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책의 줄거리 안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다른 인디언들이 전하는 '소문'으로만 다루어 지고 있다.  

백인들의 비열한 모습은 그저 인디언들이 지니고 있던 터키석 목걸이 같은 것을 받고 담요나 필요한 물품을 팔아먹는 부분에서나 조금씩 보일 뿐이다.  커다란 청년이 백인들의 요새로 끌려가는 것도 인디언들끼리 싸웠기 때문이고, 백인들의 요새로 끌려가서도 커다란 청년은 그저 며칠동안 음식 구경도 못한, 두려움이 가득 담긴 퀭한 두 눈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될 뿐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의 애매모호한 태도처럼 이 책도 적당히 보여주고 가릴 건 가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소녀가 고향으로 탈출하는 것도 백인의 폭력성을 견디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고향이 그리워서 라는 식의...

몇 해 전 남편이 미국여행 길에서 인디언 마을에서 샀다는 작은 목각 인형이 생각났다.  그 때 남편은 쇠락한 인디언들의 모습이 무척 초라해보여서 마음이 참 씁쓸했다고 한다.  150 여 년이 흐른 현대의 인디언도 자기 삶의 터전을 찾지 못하고 이 책 속의 소녀가 말하던 '회색요새의 그림자가 비치는 땅'에서 살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책을 덮는 내 마음도 또한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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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3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금은 씁쓸하게 그리고, 잘 보고 갑니다. ^ ^;;;

섬사이 2007-04-3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약자의 편에서 쓴 글은 늘 마음을 씁쓸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덮어버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다시 들추고 드러내기가 더 어려운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