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향하여
이태수
걷기로 했어.
한 줄기 외진 길을
가혹하게 죄어드는 어둠 속을
걷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가기로 했어.
무디고 무딘 놋쇠 조각, 혹은
번뜩이는 칼날되어
먼동을 기다리기로 했어.
바람 드센 날의 밀집모자, 헐렁거리는 챙처럼
불안하게 그러나 완강하게
마음 다져먹고 나아가기로 했어.
강물은 뒤채이며 흐르듯이
그렇게 흔들거리면서라도
눈은 뜨기로 했어.
우리의 역사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밀리고.
하지만 진실이 두 개나 다섯 개 쯤으로
뻥 튀겨질 수는 없다는 생각,
그 확신을 결코 잊지 않기로 했어.
별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깨어나듯
눈 비비며
주저앉지는 않기로 작정했어.
끝내 눈 감지 않을
이 조그만 거역의 피를, 목마름을,
끌어안기로 했어.
밤낮없이 무너져 오는 어둠과
때 아닌 칼바람을 헤치며
까욱 까욱, 발길에 채이는
까마귀 울음 떨구어내며
낮은 포복으로,
더욱 낮은 포복으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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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주화 항쟁의 불길이 타오르던 대학시절엔 이 시를 읽으며 비장함을 느꼈었다. 민주화의 선봉에 선 일도 없었음에도 그런 비장함을 느꼈던 건, 계속되는 수업거부와 시험거부, 캠퍼스 곳곳에 붙어 있던 대자보, 두 열사의 죽음, 흔하게 맡을 수 있었던 최루탄 가스.. 같은 사회적 분위기 탓이 컸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젠 내 일상의 삶 속에서 지쳐버릴 때 이 시가 떠오른다. "더욱 낮은 포복으로라도" 계속 가야만 한다는 생각, 삶을 계속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다잡게 하는 시가 되었다.
내 일상에 포복 운운할 정도로 힘든 일이 뭐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