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손톱을 깎으며
정호승
잠든 아기의 손톱을 깎으며
창 밖에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본다.
별들도 젖어서 눈송이로 내리고
아기의 손등 위에 내 입술을 포개어
나는 깎여져 나간 아기의
눈송이같이 아름다운 손톱이 된다.
아가야 창 밖에 함박눈 내리는 날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린다.
흘러간 일에는 마음을 묶지 말고
불행을 사랑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했다.
날마다 내 작은 불행으로
남을 괴롭히지는 않아야 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이
서로 고요한 용기로써
사랑하지 못하는 오늘밤에는 아가야
숨은 저녁해의 긴 그림자를 이끌고
예수가 눈 내리는 미아리고개를 넘어간다.
아가야 내 모든 사랑의 마지막 앞에서
너의 자유로운 삶의 손톱을 깎으며
가난한 아버지의 추억을 주지 못하고
아버지가 된 것을 가장 먼저 슬퍼해보지만
나는 지금 너의 맑은 손톱을
사랑으로 깎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
가끔 잠든 아이의 가슴에 귀를 대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곤 한다.
나의 일상이 버거운 무게로 느껴질 때나 내가 한없이 보잘 것 없게 느껴질 때
나는 아이의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 심장의 소리를 듣는다.
내 안에서 만들어졌을 아이의 심장이지만 열심히 콩닥거리며 뛰고 있는 심장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난 아이의 생명 앞에 경외심과 신비함을 느낀다.
아이는 그대로 또 하나의 우주임을 느낀다.
그리고 나의 이 똑같은 일상도 함부로 여기지 말고 소중히 여기며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 어느 누구의 위로의 말보다 큰 힘을 가진 것이
잠든 내 아이의 심장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