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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K의 나를 찾는 여행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유혜자 옮김 / 대산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미리암 프레슬러,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라는 책을 읽고 반해버린 작가다. 그 작가가 쓴 다른 책들을 찾다가 발견한 책이 바로 이 <꼬마 K의 나를 찾는 여행>이다. 원래 이스라엘 작가 야코브 삽타이가 희곡으로 발표했던 것을 다시 소설 형식으로 개작한 글이다.
순진하고 어리숙한 꼬마 두꺼비 K가 자기가 사는 마을의 호수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미지의 호수를 찾아 낯선 세상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독특한 성격과 작가 특유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글, 그리고 독특한 분위기의 일러스트로 잘 짜여져 있다.
메뚜기 리처드.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몽상가. 꼬마 K가 미지의 호수를 찾아 마을 떠나는 원인을 제공한 친구다. 엉뚱한 이야기 속에 별처럼 빛나는 말들이 섞여 있어 거짓말쟁이 리처드를 미워할 수가 없다. 미지의 호수를 보고 싶어하는 꼬마 K에게
" 너 그리움에 사무쳤구나.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그리움이라는 거야. 그리움에 네 마음을 맡겨. 그건 너를 행복으로 실어다 주는 바람 같은 거야." 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갑자기 내 마음속에 꼭꼭 접어두었던 그리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 발을 떼야 할 지 몰라 난감해 하는 꼬마 K에게 리처드는 또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지마. 모든 길은 서로 교차하면서 다시 만나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아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 언젠가는 북과 남이 다시 만나게 되어 있거든. "
그래서 낯선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꼬마 K . 여행을 함께 할 친구를 구하려고 찾아간 가재와 게. 이 가재와 게가 나의 모습을 닮아서 읽다가 쓴웃음을 웃었다. 가재는 "아무리 먹어도 늘 허기에 시달리는 가여운 친구"다. 꼭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많은 내모습을 꼭 닮아 있어서 뜨끔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자기 가진 것을 쉽게 놓을 수 없다. 그러니 새롭고 낯선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을까. 게는 "나는 심심한 걸 너무 좋아해. 난 평생 동안 심심해하면서 지루한 삶을 살 각오가 되어 있는 걸" 이라고 말하는 친구다. 나 또한 그렇다.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해보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생각하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 자체가 영 귀찮을 때도 있다. 그냥 이대로 다른 변화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게와 가재를 합쳐놓은 전형적인 인물인 셈이다.
거북이 메투살렘이 꼬마 K가 여행을 떠나기전에 한 말이 있다.
" 가끔은 새빨간 거짓말이 하얀 나이트 가운을 걸치고 나와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보일 때도 있거든. 더구나 거짓말쟁이가 말할 때는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워지지." 라고.
꼬마 K가 여행길에서 만난 대부분의 인물들이 하얀 나이트 가운을 걸치고 나온 새빨간 거짓말쟁이들이다.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사기꾼 투구풍뎅이, 종교를 들먹거리는 위선자 쥐 유라리아, 권력욕의 상징같은 까마귀 헤르지그노, 상대방의 이용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풍뎅이 등등..
꼬마 K는 미지의 호수를 찾게 되지만 "모든 길들이 서로 얽히게 되어 있으니까. 북과 남이 만나는 것처럼 처음과 끝이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 여행의 끝은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미지의 호수는 꼬마 K가 여행을 하면서 더 성숙해지고 삶의 진실에 한층 가까워진 눈으로 바라본 고향마을의 호수였다. 그건 가재의 말대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어느 책에선가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황금공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태어나면서 아이들은 황금공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는데 학교에 들어가 제도화된 교육을 받으면서 황금공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래서 난 가끔씩 막내 비니의 노는 모습을 보며 그 마음 속에 빛나고 있을 황금공을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 또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기적인지도 모른다. 비록 황금공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다양한 부정적인 부분들과 부딪쳐야 하지만 부정적인 부분조차도 세상 진실의 한 부분이니까. 그래도 아이의 황금공을 될 수 있으면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긴 어렵다.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황금공이니까 말이다.
우화형식의 글로 담고 있는 세상의 여러가지 모습과 진실들이 아릅답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봄이다. 매화와 벚꽃이 지더니 이제 목련이 한창 만발했다. "그리움은 너를 행복에 날려 보내는 바람 같은 것"이라는 리처드의 말에 공감하며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는 서정주님의 시를 노래로 흥얼거려본다. 아이 손 잡고 산책이라도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