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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같이 놀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5
마리 홀 에츠 지음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환한 노란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는 듯 했다. 마치 한움큼의 밝고 따뜻한 봄햇살이 그대로 책 갈피마다 꽂혀 있는 것처럼.
그 노란색에 반해서 망설이지 않고 골라 들었던 그림책이다. 해님의 미소를 받으며 작은 여자 아이 하나가 들판으로 놀러가고 있다. 친구가 없는 아이는 메뚜기며, 개구리, 거북이, 다람쥐, 어치, 토끼, 심지어 뱀에게 까지 "나하고 놀자"고 다가가지만 모두 달아나 버리고 만다. 그 서운함이란..
아이는 시무룩해져서 연못가 바위에 걸터 앉는다. 해님은 여전히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고.. 함께 놀 친구가 없어서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 곁으로 달아났던 동물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든다.
들판은 환한 햇살과 고요한 평화, 친밀함, 친구를 얻은 아이의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는 노랑은 바로 그런 아이의 세계에 대한 상징의 색이다.
절대로 깨뜨리지 않고 싶은 풍경이 있다면 바로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다. 혹시라도 동물들이 다시 달아나 버리면 어쩌나 하고 읽는 사람마저 조심스러워지게 만드는 책이다.
저편 덤불 속에 사슴이 있다. 엉? 그런데 그림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철조망.. 사슴이 등장하면서 마치 그림책을 읽는 사람과 그림 사이를 갈라 놓는 듯한 철조망이 쳐지기 시작한다.
아이는 줄곧 잠자코 앉아 있고, 이젠 아무도 겁을 먹고 달아나지 않는다. 사슴은 아이에게 다가가 뺨을 핥을 정도로 친한 친구가 되고 다른 동물들도 아이 가까이로 옹기종기 모여든다.
행복해 하는 아이와 동물들이 바로 저기 철조망 너머에 있다. 그것도 너무나 허술해보이는 철조망 너머에.
처음 이 그림책을 볼 때는 무슨 휴전선도 아니고 웬 흉물스런 철조망을 그려 넣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철조망이 갖고 있는 의미, "절대 접근 금지" 를 떠올리며 그림책 속의 철조망을 고마워한다. 그래, 아무도 방해해선 안되는 풍경이니까. 절대로 아무도 침범해선 안되는 '그들만의 공간'이니까, 저 밝고 환한 노랑의 평화와 친밀함이 세상으로부터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철조망이 아니었으면 나라도 불쑥 참견하며 끼어들고 싶었을테니까 말이다.
이젠 그림책을 펼칠 때마다 철조망을 그려넣은 작가의 센스에 감동하곤 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렇게 함부로 짓밟히지 않도록 보호되고 지켜져야 하는 밝고 환한 평화와 친밀의 공간이어야 함이 마땅하니까.
그러나 저 철조망이 너무 허술해서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들어가 버릴 것 같다. 그러면 저 아이와 동물들은 모두 겁을 먹고 달아나겠지. 그러니 보호의 책임과 의무는 철조망 밖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잘 지켜주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