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가 숨진지 올해가 20주기가 되는 해란다. 신문사진 속의 백발이 성성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모습이 20년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했다. 아직도 내 기억엔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할 말이 없데이"하던 좀더 젊은 모습이 남아 있는데.. 그렇게 세월이 갔다.
이 책은 광주민주항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0년 5월에 나는 중학생이었고, 몇년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광주민주항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째서 크지도 않은 이 나라의 작지 않은 도시에서 일어난 잔혹한 일들이 어쩌면 그렇게 철저히 입막음 될 수 있었던 건지 납득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했던 기억이 난다. 거기다가 그런 만행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이나라의 통수권을 지닌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국민들 앞에 그 뻔뻔한 얼굴을 꼿꼿이 쳐들 수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때 알았던 것 같다. 세상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방법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걸. 수업거부와 시험거부, 최루탄 등으로 얼룩졌던 대학시절은 1987년 6월항쟁을 정점으로 차츰 제모습을 찾아갔지만 아직도 내 기억 안엔 답답함과 혼란, 당황스러움이 혼재된 한 편의 아픈 그림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광주민주항쟁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펼치는 내 기분은 묘했다. 대학 때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보았던 광주민주항쟁과 갖가지 고문에 대한 사진과 글들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오래된 기억에서 스멀스멀 일어섰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부지런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모범청년 영균의 죽음과 그 영균에게 희망을 두고 살아가던 어머니 월산댁의 통곡이 아프고 아프게 마음에 꽂혀온다.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역사가 되어버린 광주민주항쟁을 배경으로 청소년이 읽을 글이 출판된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역사를 들려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씁쓸해지기도 하는 복잡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지은이 박상률님도 그런 복잡하고도 착잡한 이 미묘한 감정을 나보다 훨씬 더 진하게 느꼈을 터이다. 그래서였을까... 영균과 월산댁의 이야기와 번갈아 들어간 작가의 글이 자꾸 이야기 진행에 걸림돌이 되는 건.. 작가가 영균을 '너'라고 부르며 써나간 작가의 글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읽는 이의 뒷덜미를 잡는다. 영균을 향한 추도사같은 느낌이 드는 그 글들이 좀더 소설이 갖는 '이야기'의 힘 속으로 들어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쎄... 그냥 '이야기'가 되어버리기엔 너무나 큰 아픔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가가 쓰는 '이야기'는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모여 나누는 수다스런 이야기들과는 다른 강한 힘과 의미를 지니게 되므로 그냥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월산댁의 한맺힌 통곡소리도 우리의 귀에 더 크고 생생하게 메아리쳐 울렸을텐데 말이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별 하나를 뺀다.
그래도 우리의 십대들을 위한 이런 역사적 배경의 글들이 좀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