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품절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1979.8.15)-12쪽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묵묵히 한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너는 묻고 싶겠지. 초벌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감에 따라 그리고 최초의 덧없이 지나가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18-19쪽

제발 내가 포기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나는 꽤 성실한 편이고, 변했다 해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니까.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가 무엇에 어울릴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쓸모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어떻게 지식을 더 쌓고 이런저런 주제를 깊이있게 탐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뿐이다. 게다가 고질적인 가난 때문에 이런저런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고, 온갖 필수품이 내 손에는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고,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또, 내 영혼을 갉아먹는 지독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사라이 있어야 할 곳에 파멸만 있는 듯해서 넌더리가 난다.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신이여,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20쪽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1880. 7.)-24쪽

크고 작은 고충은 수수께끼같다. 힘들더라도 해답을 찾으려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1881년 11월 10일 - 11일)-35쪽

그림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 요즘, 작업을 방치해둔 채 감상에 젖거나 낙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봄에 딸기를 먹는 일도 인생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건 1년 가운데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고, 지금은 가야 할 길이 멀다. (1881년 12월 21일)-39 쪽

내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 목표를 이루는 것 지독하게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내 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이 야망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 (.....) 예술은 끈질긴 작업,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 작업, 지속적인 관찰을 필요로 한다. '끈질기다'라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쉼없는 노동을 뜻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려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1882년 7월 21일)-57쪽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나가면 언젠까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1882년 7월)-62쪽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네가 들려준 사람들의 삶이 엄한 규칙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문제는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행동에 있다. 규칙은 지켜졌을 때에만 인정받을 수 있고 가치가 있다. 깊이 생각하고 늘 신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까닭은, 그런 자세가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다양한 행동을 하나의 목표로 모아주기 때문이다. 네가 말한 사람들도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더 분명한 생각을 가졌더라면 의연하게 일했을 것이다.
(....)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이 먼저 있고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인지, 인간의 행동에서 규칙이 추론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규정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사고력과 의지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긍적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 (1882년 10월 22일)-82-83쪽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 때문이다. (1883년 12월 17일)-98-99쪽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하게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 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884년 10월) -106쪽

종교나 정의나 예술이 그렇게 신서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한데.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하라.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든지.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네 스스로 퇴보하길 바라지 않는 이상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 많이 즐기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에서 요구하는 것은 강렬한 색채와 강한 힘을 가진 살아 있는 어떤 것임을 명심해라. 네 건강을 돌보고 힘을 기르고 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공부다.
(........)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할 때라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약국에서 파는 약보다 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일은 저절도 더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발전하게 돼 있다. (1887년 여름~가을)
-141-142쪽

우리는 삶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삶의 한 귀퉁이밖에 알 수 없는 것일까?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으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가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177~178쪽

이곳에 오면서 겪었던 발작 후에 나는 더 이상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고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건강은 확실히 좋아졌지만 희망이나 무언가를 이루려는 욕망은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이제는 오직 필요에 의해,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고통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그림을 그릴 뿐이다. (1888년 7월)-183쪽

화가가 자기 그림에 너무 몰두해서 감정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가정생활이나 다른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할 때, 그래서 그가 단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 희생과 자기 부정, 그리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 역시 그만큼 힘든 일이다. 너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화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너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1888년 7월 25일)-185쪽

요람에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보면, 눈 속에 무한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는 이 느낌이 현재의 우리 삶을 단순한 철도여행에 비유할 수 있게 해준다.
기차를 타고 빨리 전진할 때면, 아주 가까이서 지나치는 대상도 분간할 수 없고 무엇보다 기관차 자체를 볼 수 없다. (1888년 8월)
-186-187쪽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함으로써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은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1888년 9월 3일)-196쪽

사랑하는 동생아, 너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서 그걸 모두 갚으려면 (꼭 갚게 되리라고 믿고 있다) 내 전 생애가 그림 그리는 노력으로 일관돼야 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유일한 문제는 그림 그리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늘 이렇게 많이 그리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지금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는 까닭은, 네가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말처럼 내가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사실이 너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사실 나에게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1888년 10월 24일)-205쪽

신경의 열기 혹은 정신적인 광기 속에서(어떻게 써야 할지, 뭐라 불러야할지 잘 모르겠네) 내 생각은 많은 바다를 항해했네. 네덜란드 유령선의 꿈도 꾸었지. 요람을 흔드는 여인이 선원을 잠에 빠지게 하려고 노래하는 것을 듣기도 했고, 음악을 모르는 문외한인 주제에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색의 배치를 통해 그림으로 표현하려던 모습도 떠올랐고, 어릴 때 들었던 자장가를 듣기도 했다네. (1889년 1월 22일)-213쪽

우리가 용감하다면 고통과 죽음을 완벽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와 자기애를 깨끗이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런 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리고 우리 삶을 만드는 모든 것, 네가 원한다면 인공적인 것이라 불러도 좋은 그 모든 것을 접하고 싶다. 그래, 진정한 삶이란 다른 어떤 것일 테지. 그러나 나는 살아가고 고통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사람은 못 되는 것 같다.
붓을 한 번 움직이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바람에, 태양에, 사람들의 호기심에 노출된 야외에서는 별다른 생각없이 잔뜩 몰두해서 캔버스를 채운다. 그것이 진실된 것, 본질적인 것을 잡아내는 방법이다. 가장 어려운 일이지.
(중략)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 정신병원 철창을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고독과 고통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런 불길한 예감이다.
성공하려면,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을 즐기려면, 나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 나야 할 것 같다.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소망하고 이루려고 해야 할 일을 나는 이루지 못했고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이다. (1889년 9월 7일 - 8일)-234쪽

이곳 사람들이 그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다소 미신적인 생각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슬프게 한다. 사실 그 말이 꽤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빠져 있는 사람이어서, 살아가면서 다른 것을 잘 움켜쥐지 못한다는 말. (1890년 1월)-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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