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끼리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재작년 8월에 비니를 뱃속에 안고 다녀온 후로 처음이다. 사람이 무지무지 많았다.
비니는 물고기들에 정신을 온통 빼앗겼다. 정신을 빼앗길 만큼 물고기들의 빛깔이 화려하기도 했지만..
지난번에 과천 동물원에 다녀오고 나서 한참을 동물흉내를 내고 다니더니, 이제 물고기들을 보았으니 한도안은 뻐끔뻐끔 거리고 다니려나..
남편이 내내 비니를 안고 다녀서 편안했다. 물고기에 정신을 뺏긴 비니는 엄마를 별로 찾지도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엄마에게만 안기겠다고 떼를 썼을텐데..
아쿠아리움에서 나와 지니가 친구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다기에 같이 코엑스 안을 돌아다녔다. 쇼핑을 하는 동안 남편이 비니를 데리고 차에 가 있었더래서 얼마만에 한가한 쇼핑을 했다. 지니와 동갑내기 시댁조카에게 줄 선물도 사고, 지니에겐 크리스마스 선물로 예쁜 가방을 하나 사줬다.
뽀는 퍼즐가게에서 500피스짜리 퍼즐을 사달라고 했는데, 어쩐지 인터넷보다 가격이 비싼 것 같아서 나중으로 미뤘다. 지구본 입체 퍼즐을 다 완성하고 나면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뽀는 내내 아쉬워한다. 예전에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 선물이 있는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면서... 우리 뽀는 지난 해부터 머리맡 선물을 받지 못했다. 그 전까지 산타가 있다고 굳게 믿은 우리 뽀는 성탄 때만 되면 친구들과 실갱이가 붙었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친구들은 전부 산타할아버지가 없다고 한다면서, 자기가 아무리 있다고 우겨도 친구들이 단체로 아니라고 한다나? 산타할아버지가 엄마아빠라고 친구들이 우긴다면서 속상해했었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또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사실을 밝힐 수 밖에 없었다. 머리맡에 선물을 갖다 놓은 건 엄마 아빠였다고.. 너희들 몰래 선물을 사서 포장하고 숨겨두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며 큰소리 치기도 했다. 뽀의 실망하는 얼굴빛을 보면서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어 더 너스레를 떨었다.
산타할아버지는 정말로 있긴 있다고, 네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그 때 네가 산타가 되는 거라고, 그래서 크리스마스에는 누구나 다 산타가 된다고..
그래도 서운한 빛을 감추지 못했던 뽀다. 올해도 아쉬워 한다. 엄마아빠라는 거 알았어도 괜찮단다. 다음 번엔 머리맡 선물로 해달라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머리맡에 선물이 있을까 없을까 생각하느라 잠이 깼어도 눈도 못뜨고 두근두근거렸더란다. 그러다 한쪽 눈만 살며시 뜨고 일어나지도 못한 채 눈동자만 치켜 머리맡을 올려다보고는 선물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아냐고.
큰 애 지니까지 합세해서 난리다. 언제 선물을 주지 않은 적이 있었냐고, 뭘 있을까 없을까 두근거리냐고 핀잔을 주어도 그래도 그게 아니란다.
아이들과 옥신각신 하면서도 즐겁다. 열살이 넘도록 크리스마스 아침마다 머리맡에 놓여있던 선물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 흐뭇하다. 크리스마스 밤마다 아이들이 깊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차장에 내려가 차에 숨겨두었던 선물을 꺼내다가 행여 애들 잠이 깰까봐 조심조심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두던 엄마 아빠를 기억해주겠지.. 그리고 아마 이담에 자기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할 것이다.
서초동 칼국수집을 찾아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모두 피곤에 지쳐 잠들어 버렸다. 남편에게 미안했다.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두지 않아도 괜찮은 올해의 크리스마스가 어쩐지 쓸쓸하다. 내년엔 다시 머리맡 선물을 부활시켜볼까나... 비니도 그 때쯤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바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