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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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은 늘 나에게 난해함으로 다가온다.  고대미술이든 현대미술이든 상관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자신이 없다.   감상하고 이해하는 주체는 나 자신인데 나에게 이해받아야할  미술작품이라는 대상에 왜 기선제압을 당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억울할 때도 있다.  미술작품이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어쩌면 작품을 창조해 낸 작가들의 천재성에 지레 겁을 먹은 거나 아닌지.. 그럴 수록 작품 속에 풍덩 뛰어들어가 구석구석 헤엄쳐다니며 한바탕 신나게 즐기고 싶다는 바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려운 이론서를 읽어낼 자신은 없었다.  학문적인 난해함에 짓눌려 오히려 더 주눅이 들고 말 것이 뻔했으니까.  그래서 찾아낸 책이 바로 <천천히 그림읽기>다.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숨고르며 알아가자고, 쉬운 것 부터 예를 들어가며 차근차근 가르쳐주겠다는 것 같았다.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다. 스무고개를 하듯,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도상학, 정신분석학적 해석법, 사회학적 방법, 기호학적 분석과 수용미학적 접근법이 소개되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갑자기 미술작품의 해석과 분석에 능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그대로 '천천히' 가자.  르네상스양식과 바로크양식의 그림을 대충 구분할 수 있게 된 것만도 어디며, 고전주의 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미술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행운도 얻었고, 요하네스베르메르의 '금의 무게를 다는 여인', 보티첼리의 '봄', 푸생의 '사계'를 예로 작품해석에 대한 친절한 안내를 받았으며, 다빈치와 고흐의 무의식적 세계를 엿보는 즐거움을 얻었고, 모르던 여성화가 겐틸레스키와 안젤리카 카우프만, 수잔 발라동과 파울라 모더존 베커를 소개받았고,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고상함과 미적 거룩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왔던 작품들이 '브랑주아의 재산 자랑'이기도 했을 뿐 아니라 '교묘한 포르노그라피'가 되기도 했다는 것도 알았으니 이만하면 나로선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거기에 덧붙여 저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 이렇게 한 작품에 대한 해석은 시대마다 달라진다.  따라서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완전한, 최종적인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한 작품에 대한 해석을 마감하는 것은 곧 작품의 생명을 끊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예술작품은 오직 해석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

"예술은 작품을 보는 내가 있음으로 해서 완성된다.  나는 단지 작가의 의도를 가만히 서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관람자가  더 이상 아니다.  나의 해석은 작가의 그것보다 더 창조적일 수도 있다.  나는 작품을 창조적으로 읽는다.  창조적 해석을 통하여 나 또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근사하지 않은가."

"소통의 통로는 어떤 권위있는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따르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 통로는 수용자인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통로를 만들 때 요구되는 것은, 딱딱하게 굳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항상 다르게 생각하거나 새롭게 보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자, 그러니 내가 뒤샹의 변기, '샘'을 보고 '저게 뭐야? 너무 웃기다.'하거나 '오물을 받아 삼켜야 하는 변기를 보면서 고달프고 쓰디쓴 삶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삼켜야만 하는 인간 삶의 비애를 느낀다.'고 한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랴.  명작이라는 작품들이 우리 앞에서 겸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존재가 바로 우리니까. 보다 당당하고 자신있게 미술작품을 읽는 시도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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