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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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떤 엄마들보다도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때까지 받은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무도 나는 맡으려 하지 않았을 때도, 이모나 삼촌들 손에 끌려 이집 저집 전전할 때도 나는 그 사랑을 가슴 속 깊이 간직했으며, 아무도 나를 친딸처럼 받아들이지 않아도 투정을 부리거나 남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가엾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을 남겨두고 간 것이다. -11쪽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다가 돌아가셨다. '밭을 가꾼다'는 표현은 아줌마가 즐겨 쓰던 말이다. 파예트 군에서는 누구나 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말은 어쩐지 흙먼지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투덜대면서 일하는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었고', 아줌마가 그렇게 말하면 아주 사랑스런 사람이 머리에 노란 꽃 모자를 쓰고 어깨에 작은 울새들을 잔뜩 앉힌 채 귀여운 분홍 장미를 다듬는 장면이 떠오른다. -17쪽

그것은 단지 쓸쓸함일 뿐이었다. 등 뒤에는 오브 아저씨가 바람개비들이 잠들어 있는 낡은 트레일러 속에 혼자 남아 있고, 나는 이 캄캄한 길을 혼자 걷는다.
아저씨도 나도 메이 아줌마가 몹시 그립다. 이 어둠, 이 겨울, 그리고 이 차디찬 새벽에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약한 일이다. -19쪽

나는 메이 아줌마처럼 좋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오브 아저씨보다도 훨씬 좋았다. 아줌마는 오직 사랑밖에 없는 커다란 통 같았다.
오브 아저씨와 내가 몽상에 빠져 헤매고 다닐 때도, 아줌마는 늘 이 트레일러에서 우리가 돌아왔을 때 아늑하게 쉴 수 있도록 집 안을 정돈해 두었다.
아줌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누가 어떻게 행동하든 간섭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를 다 믿었고, 그 믿음은 결코 아줌마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아줌마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아줌마가 자신들의 가장 좋은 면만 본다는 점을 알고, 아줌마에게 그런 면만 보여 줌으로써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던 모양이다. -26쪽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와 클리스터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은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아줌마는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이 세상만이 아니라고 일러주곤 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또 다른 생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37~38쪽

일단 장례식을 직업으로 삼은 장의사나 목사들 같은 외부인들이 오고 나면 사람들의 슬픔마저 어떤 틀에 맞춰야 한다. 마치 극장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줄을 서는 것처럼, 혹은 병원에 가서 앉아 있는 것처럼.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그저 트레일러 안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몇날 며칠이고 엉엉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짬도 없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죽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정해진 틀에 따르기를 바란다. -54~55쪽

"너도 알겠지만, 오브 아저씨의 바람개비는 그게 뭔지 한눈에는 알아볼 수 없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건 하나도 없지. 아저씨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아저씨는 마당을 꾸밀 장식품 따윈 안 만들잖아. 예술 작품을 만들지. 나는 아저씨가 왜 바람개비들을 마당에 내다 걸지 않는지 알아. 아저씨는 이웃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생각 같은 건 없거든. 메이 아줌마는 그런 아저씨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준거야."
클리터스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저씨에게는 상상의 세계가 있어. 서머 너랑 똑같이. 하지만 넌 항상 그걸 떨쳐 버리려고 애쓰지."-58쪽

메이 아줌마는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모두 천사였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삶이 끝나면 다시 천사로 되돌아간다고. 그러면 다시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 지상에 머무르고 싶어할까? 왜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견디면서도 이 곳에 머무르려 할까?
예전에는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헤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 같다. -113쪽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울어 보지 못했다. 그저 아줌마의 빈 자리를 견디는 데 급급해서 지난 두 계절 동안 내 속에 차오르던 눈물을 안으로 삼켜 왔다. (중략)
아저씨는 나를 꼭 끌어 안고는, 내가 울음으로 쏟아 내는 생명보다 더 많은 생명을 나한테 불어넣어 주었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몸 속의 눈물이 다 빠져나가서 가뿐해질 때까지 나를 안고, 크고 튼튼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마침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나는 아저씨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메이 아줌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러자 아저씨가 대답했다.
"아줌마는 여기 있단다, 아가야. 사람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단다."-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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