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룬과 이야기 바다
살만 루시디 지음, 김석희 옮김 / 달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건져올린 참 매력적인 동화다.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를 발표하고 문학적 명성을 얻은 반면 이란정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은둔생활을 할 때 만들어진 작품이라서 그럴까.  '이야기'라는 말로 대표되는 표현과 언론, 토론의 자유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침묵과 어둠의 잠잠 나라의 독재자 카탐슈드와 '지퍼로 채운 입술'로 상징되는 추종자들, 그리고 그 억압아래에서 할말을 하지 못하고 억눌려 있는 백성들에 대한 묘사도 그렇거니와 '이야기'의 가치와 원천에 대한 상징적 묘사들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살만 루시디가 바라던 것은 침묵과 어둠의 나라의 종말이 아니다.  화해와 평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시피 우리가 하는 '이야기'나 '말'이란 것이 모두 가치있고 소중한 것은 아니다.  때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하지마안'씨처럼 차라리 침묵하는니 보다도 못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침묵과 이야기의 조화는 필요할 것이고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살만 루시디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을 터이다. 할말을 다하고 살 수있는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또하나 필요한 것은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마음을 다해 들어줄 수 있는 '모모'의 귀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가만히 보자면 특히 정치분야에서 이제 말보다 귀가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잠잠 나라의 그림자와 실체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종종 우리의 실체에 대한 인식 없이 그림자를 쫓아 살아갈 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 소크라테스의 '선'에 대한 글을 읽었다.  소크라테스의 선은 진정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흐름을 쫓아가기에도 지쳐서 진정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내면을 투영하는 법은 이미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동화라고는 하지만 다음에 다시 읽게 되다면 이번엔 찾아내지 못한 다른 보물들을 찾아낼 것만 같은 책이다.  그리고... 워낙 캐릭터들의 개성이 강한데다가 구성도 탄탄한 편이라 언젠가 영화나 에니메이션으로 이 작품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꼭 그럴 것만 같다.  그 땐 그 영화를 보기가 두려울 것 같다. 원작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면 늘 원작을 읽고 나서 내 마음 속에 일었던 감동에 구정물을 뒤집어 쓴 것 같아서 며칠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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