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봄이다. 초여름 날씨처럼 덥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댄다. 어제는 시조부님 기일이라 산소에 가는데 도로 화단에 심어놓은 팬지 꽃들이 세찬 바람에 꽃잎을 떨어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꽃이 늦어진다 했더니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다 만개해버린 것도 올봄이 유별나다는 증거다. 매년 노란 산수유 꽃이 피고 나면 가녀린 매화가 짧게 피었다 져버리고, 그 다음에 개나리와 벚꽃이 핀 다음 목련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나무가지 위에 툭툭 피어나곤 했다. 그런데 올봄엔 산수유와 매화와 개나리, 벚꽃, 목련이 다 한꺼번에 피었다. 신기하게도 민들레 꽃은 참 드물게 보인다. 작년에 첫 민들레를 3월 14일에 보았고, 재작년에는 3월 21일에 보았는데, 올해는 3월 30일에서야 민들레를 보았다. 그것도 거의 찾아다니다시피 해서 너무나 작고 약해 보이는 민들레를 만날 수 있었다. 
올봄은 지금까지 내가 맞이했던 봄들 중에서 제일 못됐다. 



미세먼지에 날씨도 요동을 쳐서 가뜩이나 나다니기 싫어하는 나는 거의 매일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책을 읽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읽고 호감을 느꼈던 작가 박지리의 첫 소설책이다. 이 작품으로 2010년에 제 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던 것 같다. 오합, 오체라는 이름의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인데,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비해 문체가 밝고 경쾌했다. 다음엔 <맨홀>을 읽어볼 작정이다. 



오래 전부터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다, 얼마전 가수 요조가 이 책을 '내 인생의 책'으로 소개하는 걸 읽었다. '요조'라는 이름도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딴 거라고 했다. 더욱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나는 이 책이 내 인생을 뒤흔들만큼 인상깊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래, 맞아.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하는 마음으로 자꾸 곱씹게 된다. 물론 이 작가와 나는 살아가는 시대적 상황이 다르고, 환경도 여건도 다 다르고, 나는 무엇보다 자살 기도를 할 정도로 삶이 고통스럽다거나 세상에 환멸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소설 속 주인공 요조가 인간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 공포, 인간 삶의 난해함 같은 것들이 자꾸 마음을 건드렸다. 
아무래도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읽고 나서 불편해지는 책은 대부분 좋은 책이다.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매일매일 가만가만히 작은 공책에 옮겨 적고 있다. 지금까지 63쪽 '나비'라는 시까지 옮겼다. 옮겨 적으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구절들이 있다. 눈으로 쓰윽 읽었을 땐 그냥 스치듯 지나갔던 행들이 갑자기 돋을새김을 한 듯 눈에 띈다. 그럴 땐 잠시 펜을 멈추고 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가만히 좋아하는>을 다 옮겨 적고나면 집에 있는 시집들을 한 권씩 꺼내어 옮겨 적는 일을 계속 해보려고 한다. 


책을 샀다.
며칠 전에 마음책방 '서가는'에 가서 책을 두 권 사왔다.


내가 요즘 내 오래된 기억들을(예를 들면 내가 기억하는 첫 집, 어릴 때 엄마가 사줬던 목걸이, 어릴 적 동네의 풍경 같은 것들) 확인하려 든다고 했더니 책방 쥔장이 추천해준 책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지 알 수없지만 정신분석학자인 저자가 자기의 여러 기억들을 돌아보는 내용인 것 같다. 나의 기억을 돌아보는 것. 나와 나의 기억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아무도 '나의 기억'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신분석학자는 자기의 기억으로 책을 한 권 써냈다. 정신분석학자가 생각하는 '기억'의 가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고 '나'를 넘어서는 확장된 공감을 일으킬만한 것일까. 나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불안을 다룬 심리 그림책인데,  그림책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궁금해지는 책이다.  그림책이지만 그림책 같지 않은 책.  뭐랄까, 그림책으로서의 매력이 약하다는 게 아쉽다. 일러스트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아마 글작가가 정신의학과 교수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설명문 같은 글들이 부자연스럽다. 굳이 따지자면 그림책이라기보다 글이 적고 그림이 예쁜 짧은 교양심리에세이? 


오늘, 아니다. 이미 어제가 되어버렸다. 어제 우리동네 세 책방(카모메 그림책방, 프루스트의 서재, 서실리)이 모여 '호호서가'라는 이름의 플리마켓을 열었다. 바람 불고 춥고 비까지 뿌리는 날씨였다. 집에서 늑장을 부리다 3시 반이 지나서야 집을 나섰다. 가면서 속으로 '날씨도 구질구질한데 벌써 철수한 거 아닐까. 다 철수해서 없으면 걷기 운동했다 치고, 아직 마켓을 하고 있으면 책 구경을 하면 되고.'하는 마음이었다. 
바람 불고 춥고 비까지 뿌리는 날씨였지만 플리마켓은 진행 중이었고 책 3권을 데려올 수 있었다



'심리학과 뇌과학이 파헤친 시간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혹시 자기계발서인 건 아닐까 슬쩍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저자가 '철학과 물리학, 심리학과 뇌과학을 넘나'드는 사람이라고 하니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게다가 이 책은 중고책이라 단돈 3천원에 내 품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꺼내놓으니 큰딸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응, 나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데려왔어.)


난 임경선이라는 작가를 모른다. 그리고 '예담'이라는 출판사도 나와 성향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내 경험을 돌아보면 '예담'의 책들은 거의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책을 고른 건 제목때문이었을 거다. 자유라잖아. 자유로워지라잖아.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만큼 대담할 수 있는지 가르쳐줘,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아마 이 책이 나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거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말이 쉽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책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메모지에 '화분에 물줄 것'이라고 적어 놓은 걸 보는 기분이다. '자유로울 것'이라니...... 이 작가는 어떤 생각일까. 그 생각이 궁금해진다. 



김선우의 시집이다. 사실 난 김선우의 글은 시집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아까 적었듯이 나는 매일 시를 옮겨적는 사람. 그러니 기념으로 시집 한 권을 더했다. 집에 있는 시집을 다 필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지만 거기에 이 시집을 한 권 더하는 건 꽤 걸리는 시간에 아주 조금을 보태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다. 김선우의 시와는 좀 친해져보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집에 있는 김선우의 다른 시집들과 한꺼번에 이어서 필사하면 좋겠다. 

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는 날씨가 풀린다고 했다. 이제 미친 봄은 그만하고 화사하고 청명한 봄을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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