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우다 2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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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현기영 님의 <제주도우다> 2권을 이야기해줄게. 1권에서는 길고 긴 일제 시대가 끝나 해방이 되고,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희망의 시대로 나아가면서 노력하는 제주도민들의 이야기하는 부분까지 했었지. 특히 청년들 중심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단다. 이 소설의 중심인 제주도 조천리도 마찬가지로 정비를 하고 있었어.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갔던 사람들도 올 사람들은 다 온 것 같았어. 안타깝게도 죽어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1권 마지막 부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군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반씩 나누어서 통치를 한다고 했잖니. 그래서 제주도에도 미군정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그들에 의해 행정체계가 만들어지는데, 충격적인 것은 그들은 일제시대 일제의 앞잡이로 일했던 사람들을 재등용한 것이란다. 그들이 관리를 해봤다는 이유 하나였어. 나머지 제주도 사람들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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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미군정이 충격적인 명령을 내린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공식 출범한 미군정이 인민위원회 해체를 명령했던 것이다. 미군정이 삼팔선 이남 조선에서 유일한 정부라고 했다. 인민위원회 체제가 미군정의 행정체제에 반영되기를 원했던 도민들에게 그것은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해방의 기쁨과 열광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도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민위원회 간부들 중에서 미군정에 발탁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개는 친일파의 재등용이었다. 일제의 착취 기구에 종사했던 자들이 미군정의 부름을 받고 그 자리로 복귀하다니, 하급 관리들은 그만두더라도 친일파의 고위직 재등용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면서기를 하던 자들이 버젓이 면장으로 승진하여 복직하기도 하고, 순사 노릇 하던 자들이 경찰서장, 지서 주임이 되었다. 명칭이 순사에서 순경으로, 주재소에서 지서로 바뀌었을 뿐 복장도 검정색 일본 순사 제복 그대로였고, 무기도 일본군으로부터 압수한 99식 혹은 38식 장총과 일본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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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열 받는 사건이 일어났단다. 미군이 일반 시민들을 죽인 사건이 일어난 거야. 그러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어. 뿐만 아니라 미군들은 제주도민들을 무시하고, 희롱했으며 폭행까지 휘둘렀단다. 제주도민들은 미군정을 해방군이 아니라 침략군으로 보기 시작했단다.

 

1.

1946년이 되었어. 안창세는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였단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얼마 안되어 아직 중학교가 많지 않았어. 조천리 주민들은 합심해서 학교도 직접 짓고 교원들도 직접 뽑아서 조천중학원을 세웠단다. 창세는 그 조천중악원에 다니기 시작했어. 미군정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조천중학원도 미군정에 의한 교육검열을 받기도 했어.

청년들은 여전히 자주 모여서 공부를 했는데,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공부도 했어. 그런데 최근에는 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어. 특히 소련과 미군의 신탁통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 우리나라가 둘로 나뉘게 될까 봐 걱정을 하면서 말이야. 당시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제주도에서도 자주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일어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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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09)

해가 바뀌어 1946년이 되자 제주도에서도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맹렬하게 벌어졌다. 미국과 소련이 삼팔선을 경계로 조선을 둘로 분할하여 오년간 통치하려는 음모에 대한 반대였다. 한시바삐 독립하기를 갈구하던 조선 백성들에게, 특히 지난 반년 동안 뜨거운 열정 속에 새 나라 건설의 꿈을 안고 달려온 청년들에게 그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해방자를 자처한 미국과 소련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경악 속에서, 조선 땅을 삼팔선으로 두동강 내어 이북은 소련, 이남은 미국이 차지하려는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천리에서도 오일장이 열릴 때마다 신탁통치 반대 집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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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여름은 긴 가뭄으로 모두들 고생했단다. 제주도에서는 66일간 비가 오지 않았대. 물이 부족해지면서 곡식들이 말라가고 그 해에 대흉년이 들었다고 하는구나. 식량 부족으로 고생을 했는데, 거기에 호열자라는 역병까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대. 해방으로 희망으로 부풀었던 제주도민에게 자연은 시기를 했던 것인가? 주인공 안창세의 누나 안만옥의 친구 따알리아 혹시 기억나니? 간호사가 되려고 일본의 간호학교에 갔었잖아. 해방이 되고 나서 따알리아도 돌아왔는데, 따알리아는 간호사가 되어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았단다. 따알리아가 얼굴이 예뻐서 조천리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어. 그 중에 정두길이라는 사람과 연애를 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에 알리기 부끄러워서 비밀 연애를 했더구나.

….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로 인해 남한과 북한이 나뉘어져 가는 분위기 속에서 이승만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지지한다고 발표했어. 민심의 불만지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단다. 미군정은 그런 민심은 신경도 안 쓰고 강제 공출을 실시했단다. 가뭄으로 대흉년인데 공출까지 당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지. 전 인민위원회 청년 조직이 만든 민주청년동맹을 중심으로 강제 공출 반대 운동을 했단다.

 

2.

1947년이 되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어.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지자 제주도 곳곳에서 시위가 자주 열렸단다. 2 10일 최초로 미군정 반대 시위가 일어났어. 그러자 미군정은 병력을 증원했는데, 충청도에 있는 충남 경찰 부대 병력을 데리고 왔단다. 하지만 제주도민의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았어. 1947 3 1일 삼일절 기념행사 때 제주도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단다. 미군정은 이 집회를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고 허가하지 않았어. 하지만 제주 곳곳에서 집회는 일어났단다. 조천리에서도 북소학교에서 3.1운동 기념행사를 했고, 집회 후에는 가두 시위를 했단다. 주요 내용은 미군정을 반대하고 남한단독정부를 반대하는 내용이었어. 다시 모인 주민들의 만세 소리를 듣고 다들 희망을 느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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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266)

극심한 불행과 좌절의 연속인 지난 일년이었다. 대흉년의 굶주림과 호열자에 짓눌린 죽음의 시간이었고, 강제공출, 복시환 사건, 친일파 재등용, 단독정부 추진 등등 미군정이 자행한 총체적 모순이 만들어낸 절망의 시간이었다. 해방의 감격과 미래에 대한 꿈이 참혹하게 짓밟힌 한해였다. 이제 사람들은 피폐했던 마음에 다시 활기가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사람마다 가슴속에 환한 빛이 가득해졌다. 정두길은 감격이 북받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미군정을 반대하는 거대한 실체가 거기에 있었다! 정두길에게 그것은 소름 끼치는 강렬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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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 시위를 하는 주민들에 대해 미군정과 경찰은 강압적으로 맞섰고 폭행에 발포까지 하면서 민간인 여섯 명이나 죽였단다. 이런 평화적 시위가 죽을 만큼 잘못한 것인가. 제주도민들은 이 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졌단다. 이 사건은 더 시위로 이어지고, 총파업으로 응수했단다. 이때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경무부장 조병옥이라는 사람이 제주도에 왔단다. 하지만 그의 적반하장 언행은 일을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더 키우고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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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조병옥은 3.1절 발포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정당방위였다고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심지어 사살은 내가 시킨 바다. 발포 명령자를 처벌하라고? 발포는 내가 명령했으니 처벌할 테면 나를 처벌하라라고 싸늘하게 비웃었다. 읍내 공무원들이 모인 시국 강연 사리에서는,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면서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듯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방약무인이었다. 너무도 놀라운 발언이어서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 이 말이 도민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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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압 조치를 위해 조병옥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경찰을 지원받아 증원시켰어. 제주도 경찰들은 제주도민들을 온건하게 대한다고 다 쫓겨났어. 육지에서 들어온 경찰들은 마구잡이고 폭력을 휘두르고, 경찰서에 잡혀 들어오면 고문을 가했어. 이때 조천리에도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는데 주로 청년들과 학교 선생님들이었어.

당시 제주도지사였던 박경훈은 미군정의 이런 강압적인 조치에 실망을 하여 자진사퇴를 했는데, 후임으로 온 도지사가 완전 똘아이 같은 사람이었어. 극우주의자 유해진이라는 사람이 도지차로 취임했는데, 그는 서북청년단을 경호대로 데리고 제주도에 도착했단다. 그가 데리고 온 서북청년단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서북청년단은 서청이라고도 불렀는데, 북한에서 토지개혁 이후 땅을 빼앗기고 남한으로 이들로 공산당에 치를 떨던 이들이었는데, 완전 깡패나 다름없었어. 좌익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어. 그들 뒤에는 정부가 있었지. 그런 서청을 경호대로 제주도로 데리고 들어온 거야. 서북청년단은 도지사의 빽을 믿고 제주도 곳곳에서 횡포를 부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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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무자비한 테러 행위로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서북청년단의 존재가 제주 사회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그간 육지부의 각 도시, 각 읍면 지역에 조직을 만들어 대규모로 세력을 확장해온 서청은 좌파 인사와 집회에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백색테러의 대명서로 떠올랐다. 신임 도지사 유해진이 자신의 경호원으로 일곱명을 데리고 들어온 이래 서청 단원의 입도가 두어차례 이어져 지금은 그 수가 수백명에 이르렀다. 충남 부대의 탄압에 시달리던 도민은 이제 그보다 훨씬 사나운 세력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승냥이가 나가더니 범이 들어온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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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 5, 미군정은 미군정 반대와 단독정부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민주청년동맹을 불법으로 지정했고, 얼마 안가 남조선노동당(남로당)도 불법으로 지정되었어. 내륙에서는 좌우합작에 노력했던 여운형의 암살당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단다. 상황은 점점 안 좋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단다. 여기까지가 <제주도우다> 2권의 이야기란다.

아직 4.3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열 받게 하는 장면들이 많이 있었단다. 이런 일을 직접 겪은 이들이 어찌 참을 수 있었을까. 총칼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참을 수 있겠지만, 그 폭압의 강도가 점점 세어진다면 결국에는 폭발할 수밖에 없을 것 같구나. 해방된 지 불과 2년만에 이렇게 되다니…. 3권에서는 또 얼마나 억울하고 분한 일들이 일어날지… 3권도 조만간에 이야기해줄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조천소학교에서 해방을 기념해 운동회가 열렸다.

책의 끝 문장: “! 비밀 엄수, 하겠습니다!”


해방 후 맞는 첫 봄, 신생의 기운이 제주섬 도처에서 샘솟듯 기운차게 솟아나고 있었다. 새봄, 새 학교, 새 일꾼, 새 나라, 해 희망! 그 모든 것이 청년들, 소년들의 것처럼 생각되었다. 꽃들도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해방의 노래를 부르고, 침울했던 청년들의 가슴도 꽃망울 터지듯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렸다. 해방 직후 시작된 집단적 열광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전장과 탄광 등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살아 돌아온 귀환 청년들이었다. 그들이 겪은 지독한 절망감이 이제 급격하게 강력한 에너지로 바뀌어 그들을 추동했다. 그들은 생각했다. 지금은 귀향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상태라 취직난이 극심하지만 친일파들이 물러나면 자리가 생기리라고, 그러한 집단적 열광은 곳곳에 신설 중학원이 등장함으로써 더욱 증폭되었다. - P131

"일제의 노예 경험이 너의 마음에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 생각해보아라. 무엇을 가르쳐주었는가? 그렇다, 내 나라, 내 땅을 다시는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점거하여 신탁통치 운운하면서 남북분단을 획책하고 있지만, 그것은 열화 같이 일어난 거족적 반대 투쟁에 의해 반드시 분쇄될 것이다." - P133

정두길 : 순태 너는 박헌영파지만 난 여운형이 맘에 들어. 그가 말하는 좌우합작에 나는 찬성이여.
부대림 : 나도 여운형이 좋아. 한독당 김구 선생의 노선도 좋아 보이고.
박털보 : 미국이나 소련이나 우리에겐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이여, 독립의 훼방꾼!
양순태 : 하아, 해방과 훼방! 거참 딱 맞는 말이네예.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
정두길 : 그래서 온 나라 온 백성이 이렇게 외치는 거 아니우꽈? (구호를 외치듯이 큰 소리로)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조선 사람 조심하자!
- P162

조병옥은 3.1절 발포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정당방위였다고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심지어 "사살은 내가 시킨 바다. 발포 명령자를 처벌하라고? 발포는 내가 명령했으니 처벌할 테면 나를 처벌하라"라고 싸늘하게 비웃었다. 읍내 공무원들이 모인 시국 강연 사리에서는,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면서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듯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방약무인이었다. 너무도 놀라운 발언이어서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 이 말이 도민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 P296

무자비한 테러 행위로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서북청년단의 존재가 제주 사회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그간 육지부의 각 도시, 각 읍면 지역에 조직을 만들어 대규모로 세력을 확장해온 서청은 좌파 인사와 집회에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백색테러의 대명서로 떠올랐다. 신임 도지사 유해진이 자신의 경호원으로 일곱명을 데리고 들어온 이래 서청 단원의 입도가 두어차례 이어져 지금은 그 수가 수백명에 이르렀다. 충남 부대의 탄압에 시달리던 도민은 이제 그보다 훨씬 사나운 세력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승냥이가 나가더니 범이 들어온 격이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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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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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읽은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서평으로 소개해주어 현기영 님의 <제주도우다>( 3)을 알게 되었단다. 현기영 님은 <순이 삼촌>이라는 단편소설로 유명하신 분인데, <순이 삼촌>은 제주도의 아픈 역사인 4.3 사건을 다룬 몇 안 되는 작품이란다. 그것도 4.3사건을 금기시하고 있던 군사독재 시절에 4.3사건을 다룬 소설을 내셨어. 당시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야.

오랫동안 4.3사건의 대표 소설이었던 <순이 삼촌>. 현기영 님은 이번에는 3권짜리 장편 소설로 4.3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어.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제주도우다>의 서평을 보고,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리스트에 올렸다가 이제서야 읽고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려 한다. 책 제목 제주도우다우다입니다의 제주도 방언이란다. 오늘은 <제주도우다>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1.

임창근과 안영미는 결혼한 지 2년이 갓 지난 신혼부부란다. 그들은 4.3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었어. 안영미는 제주도 출신으로 아직 생존해 계시는 할아버지께서 직접 4.3사건을 경험하셔서 할아버지의 증언을 듣고자 했단다. 4.3사건이 발생한지 오래되었지만, 그 사건을 엮은 이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아픔이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해 증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다시 상처를 줄 수 있어 조심스러웠단다. 안영미의 할아버지 안창세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자세하면서 친절하게 임창근과 안영미에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셨단다.

4.3사건이 일어난 1948년 안창세의 나이는 열여섯이었고, 소설의 시작은 그로부터 5년 전인 1943년 제주 조창리라는 곳에서 시작된단다. 1943년이면 안창세의 나이는 열 하나였어. 1943년이면 일제 말기로 얼마 전 조정래 님의 <아리랑>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일제의 강제 공출이 심해지고 징용, 징병 등으로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많이 끌려가던 그런 시기였단다. 열한 살 안창세와 누이 안만옥은 야학에 다녔는데, 그 야학은 불법이었단다. 이 야학이 일제에 발각되어 야학을 운영하던 야학 선생 이민하는 감옥에 갔다가 6개월만에 풀려났단다.

안창세의 아버지는 화물선을 이용하여 사업하고 있었는데, 1943년에는 일제에서 강제로 군수품을 나르게 하여, 군수 물자를 나르는 일을 하셨어. 그런데 어느날 큰 파도를 만나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이후 창세의 집은 살림은 무척 어려워졌단다. 강제 징용과 징병으로 조천리 마을은 텅텅 비다시피 했단다. 징용과 징병으로 빈 제주도에 만주에 있던 일본군인 관동군이 잔뜩 들어와 주둔하고 있었어. 왜냐하면 미군과 싸울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어. 진주만 사건이 이후 미군과 일본은 전쟁 중이었고, 미군이 일본 본토에 진입한다는 소식이 있어서 관동군은 제주에 훈련 받고 있다가 여차하면 일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단다. 관동군의 군수품과 식량을 제주도민들이 대주어야 하다 보니, 제조도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단다. 뿐만 아니라 관동군이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안 미군은 전투기를 제주도로 보내 툭하면 폭격을 가했단다. 이로 인해 일본군뿐만 아니라 제주도 평범한 백성들도 많이 죽었어. 또 제주도와 일본을 오가는 여객선과 군용선도 공격을 받아 침몰되기도 했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물론이고 말이야.

안창세의 누이 안만옥은 해녀로 일하면서 집안 생계에 보탰단다. 만옥의 아주 친한 친구인 따알리아(본명 : 이순배)가 간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어. 그런데 어느날 간호사들이 전쟁에 징집되었다는 소문에 만옥도 친구 따알리아 걱정을 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해방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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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272)

면장을 마을 밖으로 내친 시위대는 예순살의 원로 김시범 선생을 모시고 동쪽으로 일주도로변에 위치한 만세동산으로 행진해갔다. 기미년 3.1만세운동 때 올라 만세를 불렀던 동산에 그 운동의 주역으로 징역살이를 한 김시범 선생을 모시고 오른 조천리민들의 가슴에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조천리의 모든 항일운동의 원천은 만세동산이었고, 항일로 점철된 마을의 수난사는 언제나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만세동산에서 만세 소리가 다시 터져나온 것이다. 만세동산의 남쪽 사면을 빈틈없이 뒤덮은 군중은 강풍 맞은 대숲처럼 다 함께 온몸을 흔들면서 열렬하게 만세를 불렀다. 이십육년 만에 터져나오는 조선 독립 만세였다. 열세살 창세도, 열여섯살 행필도 땅에 두 발을 쿵쿵 구르면서 목이 쉬도록 소리쳤다. 일제에 의해 억눌렸던 땅, 그 땅에서 기운이 솟아올라 그들의 몸에 넘쳐오르는 것 같았다. 온 세상, 온 우주가 환희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한층 가깝게 다가온 한라산을 향하여, 그 아래 질펀하게 펼쳐진 푸른 들판을 향하여, 저 푸른 희망을 향하여 함성을 지르고 또 질렀다. 휑하니 비어 있는 일주도로 또한 밝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질주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조선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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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방이 된 이후 징용, 징병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왔단다. 수십 년 일제와 친일파들에 억눌려 살았던 그들에게 이제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다들 기쁨을 만끽했단다. 해방이 되자마자 친일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일본군들도 사라졌단다. 조천리 사람들도 서로서로 태극기를 만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며칠 동안 목청껏 외쳤다고 하는구나. 아직 나라의 기틀이 없고 지방 자치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끌어가고 있었단다.  인민위원회는 청년들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청년들은 자주 회의도 하고, 당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에 관한 책들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나라, 좋은 마을을 만들지 고민들을 했어. 멀리만 있던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는 그런 기분이었어...

우리나라가 해방하는데 큰 공을 나라가 미국이었기에 미국에 고마움을 다들 느끼고 있었지. 그래서 맥아더 장군의 포고령에 의해 미군정이 들어오기 전까지 아직 철수하지 않은 일본군에게 치안을 맡겼을 때도 이해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일본군이 다시 총칼 들고 활보하는 것을 보고는 누군가는 옛 기억에 치를 떨기도 했단다. 얼마 후 미군정이 제주도에 들어오면서 일본군을 완전히 빠져나갔단다. 그런데 안 좋은 소식도 들려왔어. 삼팔선을 긋고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이 통치를 한다는 거야. 그래도 당시만 해도 그 선이 모양이 바뀌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거라 생각지 못했을 거야. 한시적으로 그랬다가 우리나라 정부가 온전히 구성되면 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 징병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남으로 갈지 북으로 갈지 질문을 받았다고 하는데, 제주도 사람들은 남도 아이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로 가겠다고 했다는구나. 그렇지, 제주도 사람들은 제주도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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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296)

우리 삼팔선이 그어진 중도 몰랐수다. 전쟁 중에 정신없이 살아서……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출국심사하는 맥아더 사령부 미군이 우리한테 물읍디다. 북조선으로 가겠느냐, 남조선으로 가겠느냐고. 허 참! 북조선, 남조선이라니, 난생처음 듣는 말 아니우꽈? 그래서 물어십주. 거 무슨 말이냐고, 북조선은 뭐고 남조선은 뭐냐고 하니까 삼팔선이 그어졌다는 거라예. , 그것참!”

그래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해십주.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로 가겠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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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시대에 소학교에서는 일본어만 가르쳐서 어린 학생들 중에는 한글을 모르는 이들도 있었대. 그래서 학교에서 시급하게 가르치려는 것은 한글이었다는구나.

1권의 이야기는 4.3 사건이 일어나기 5년 전부터 해방 직후까지 제주 조천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끝이 났단다.. 광복 후 청년들이 스스로 나라를 이끌려는 모습도 보기 좋았단다. 우리나라 스스로 충분히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책에서 누군가 이야기한 것처럼 청년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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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청년 여러분,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저 악독한 왜놈들을 위해 종노릇한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지긋지긋해여마씸. 식민지 청년이란 얼마나 가난하고 누추하고 비굴한 존재였수과? 우리는 채찍 맞아 돌아가는 팽이처럼 날이면 날마다 매 맞고 구박을 당해야만 했수다. 그러나 이제는 해방이우다. 압제의 족쇄와 쇠사슬이 풀리고 해방이 왔수다. 금방 안세훈 선생님의 말씀, 참말로 옳은 말씀이우다. 이제 청년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시대란 말이우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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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비극적인 미래가 있을지 아마 상상도 못하고 있었을 거야. 그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는 조만간에 이어서 해줄게.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내 이름은 임창근, 나이는 서른두살, 전주가 고향이고, 한살 아래인 안영미는 제주가 고향인데, 우리 둘은 결혼한 지 이년 반밖에 안 된 풋내기 부부이다.

책의 끝 문장: 양쪽 광대뼈가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불거진 그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번졌다.


조천리 김해 김씨의 젊은 반역아 집단을 대표하는 최초의 인물은 솔뫼 김명식과 목우 김문준이었다. 솔뫼는 이론가였고 목우는 현장 활동가였다. 처음에는 서울의 같은 단체에서 함께 일하던 두 젊은이는 곧 헤어져 한 사람은 서울, 다른 한 사람은 일본 오사카로 활동 영역을 달리했다. 김명식은 <동아일보> 창간 역원이면서 1면의 논설란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한 열정적인 논객이었다. 자유가 무엇이고 평등이 무엇인지,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루소와 몽테스키외가 누구이고 맑스가 누구인지 아는 이가 별로 없던 그 시절에 그 시절에 그의 논설은 새로운 사상에 목마른 청년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 나중에 신문사를 떠나 정치조직운동에 투신한 그는 조선 최초의 사회주의 필화사건을 일으켜 세간의 이목을 모은 바 있었다. 그 사건으로 투옥된 그는 모진 고문과 옥독(獄毒)으로 병을 얻어 형기 중간에 출감했지만, 이미 몸은 형편없이 망가져 반신불수에 청각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 P49

"조천리민 여러분! 그동안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수과?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수과? 부모 없는 설움보다 나라 없는 설움이 더 컸수다. 왜 놈들한테 당한 일을 생각하면 참말로 치가 떨립니다. 멸시당하고 매 맞고…… 아아, 그러나 이제는 해방이우다. 압제의 굴레에서 풀려났수다. 여러분, 고맙수다. 이 기쁜 자리에 우리를 불러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참말로 고맙수다. 하지만 우리가 축하받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어른님들이 있수다. 극악무도한 살인적, 강도적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다가 해방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순국열사, 우리 마을 조천리가 낳은 영웅들, 그분들을 먼저 생각하면서 애도를 표합시다!" - P327

일제의 극심한 압박에 짓눌렸던 제주 사회는 일본군이 떠나자 도처에 신생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사방 초목도 억압에서 벗어난 듯 더욱 푸르고 푸른 바다, 푸른 하늘도 새로운 빛으로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밭마다 돌담 안에 가득 실린 조 이삭들이 탐스럽게 자라 풍작을 기약하고 있었고, 알뜨르, 진뜨르 비행장도 농토로 복구하여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분 공장, 단추 공장, 방직 공장이 작업을 재개했고, 공습으로 파괴된 주정 공장은 복구 중에 있었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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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 : 근대 -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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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라는 슬로건으로 역사 유튜브를 운영하는 황현필 님의 신간 <요즘 역사:근대>를 읽었단다. 이번 책은 구독자 100만을 기념하기도 하는 책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가끔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를 보는데, 몰랐던 새로운 내용을 알게 좋았단다. 역사라는 것이 그것을 이야기하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황현필 님의 역사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 사관이 많이 공감이 되더구나. 아빠랑 아무래도 정치적 성향이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역사 사실을 합리적이고 이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그의 생각에 다들 동의하지 않을까 싶구나.

이번에 새로 출간한 책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 스물한 가지를 뽑아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각각의 사건들은 아빠가 다른 책들을 통해서 여러 번 이야기를 해 준 것과 겹치기도 하더구나. 특히 작년에 읽은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 10)>과 올해 다시 읽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12)> 읽고 이야기해준 부분에서도 소개된 부분들이 많았어. 그래서 오늘은 지은이의 색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한 것들을 몇 개 발췌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단다.

 

1.

우리나라 근대를 여는데 중요한 인물 중에 한 명인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도 상반된 평가들이 많이 존재한단다. 쇄국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 근대화가 지연되면서 일제에게 뒤쳐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천주교 신자들 수천 명을 죽인 이력이 있고, 민비와 권력 다툼으로 인해 국력을 소진했다는 안 좋은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란다. 하지만 조선의 오랜 악습을 끝내는 공들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서는 그런 흥선대원군의 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어. 하지만, 무너져가는 조선을 바로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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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물론, 국가적으로 천주교를 문란하다고 여긴 시대였다고 할지라도, 무려 8천여 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를 학살하다시피 한 대원군을 마냥 존경할 만한 인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가를 새로 창업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오직 개인의 통치력만으로 시대적 병폐를 끊고, 이전 세상과의 긍정적인 단절을 이룬 인물로 대원군만 한 인물이 또 있던가?

첫째, 60여 년의 세도정치를 끝냈다.

둘째, 300년 만에 비변사를 해체했다.

셋째, 300년 만에 붕당정치를 끝냈다.

넷째, 300년 만에 경복궁을 재건했다.

다섯째, 400년 만에 서원을 제대로 철폐했다.

여섯째, 역사상 최초로 양반들에게 군포를 부과했다.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원군이 30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조선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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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서양 열강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던 시절이었어. 프랑스가 쳐들어 온 병인양요에서는 프랑스군이 대패하고 돌아갔단다. 이때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를 훔쳐서 달아났는데, 이것이 100여 년 뒤에 우리나라 고속철도와 연결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거야. 1995년 우리나라는 고속철도를 도입하면서 어느 나라와 손잡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줄 테니 프랑스의 TGV 도입을 제안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프랑스 TGV가 우리나라 고속철도로 들어오게 되었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프랑스는 <외규장각 의궤>를 한참 동안 돌려주지 않다가 2011년에 되어서야 영구임대 조건으로 우리나라도 돌아왔다고 하는구나. 좀 치사하구나. 나라 간 약속인데 제때 지키지 않고, 나중에도 조건부로 지켰으니 말이야.

미국이 쳐들어온 신미양요에서는 혈전 끝에 미국이 승리를 하긴 했지만, 미국은 조선 백성들의 저항에 대해 깜짝 놀라고, 승리를 했지만 강화도에서 퇴각하기로 결정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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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미군 대위 틸톤(Mclane Tilton)은 부인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남겼다.

나는 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한 섬에서 치른 전투만큼 끔찍한 기억은 찾아볼 수 없소.”

신미양요는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로저스 제독은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날 퇴각을 결정한다. 조선 출정을 통해 미국과 로저스 제독이 얻어 낸 것은 없었다. 조선을 개항시키기는커녕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사과조차 받아 내지 못한 출정이었다. 일본과는 너무나도 다른 조선에 큰코다친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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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 시대 말기 우리나라 시스템은 이미 나라의 기틀로써 많이 무너진 상태였단다. 흥선대원군 마저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면서, 일본과 서양 열강이 우리나라에 물밀 듯 들어왔단다. 군인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여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신 지식인들에 의해 갑신정변이 일어났지만 이내 실패하고, 부정부패한 지방 관리들에 불만이 쌓인 농민들 중심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 등 조선은 대혼란의 시기였단다. 정부도 무능력하여 나라 안의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자국의 힘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일본과 청나라의 군대까지 끌어들였단다. 이웃 나라 간의 우리 정부의 위험한 줄타기는 결국 한 나라의 왕비가 우리나라 궁궐 안에서 다른 나라인 일본의 칼에 맞아 죽는 사건까지 일어났단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왕은 겁을 먹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대피하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연출하였단다. , 창피하도다.

서재필이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들어와 우리나라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면서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신문을 창간했지만, 그가 그리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는구나. 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미국인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활동을 할 때도 조선 사람이 아닌 미국인으로 행동했다는구나. 그가 나중에 현충원에 안장되려고 할 때, 많은 역사가들이 그를 막았다고 하는데, 정부 기관은 좀더 심사를 하고, 많은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할 것이지, 뭐 급하다고 그리 빨리 결정했는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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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서재필의 큰 오점은 따로 있다. 부유한 나라 미국 국적의 서재필이 가난한 나라 자신의 모국 조선에서 너무 큰 돈 욕심을 낸 것이다. 독립협회의 고문 자리를 받아들여 10년을 계약한 서재필은 독립협회가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자, 남은 7 10개월의 급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사퇴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황국협회까지 만들어 독립협의를 해산시키려 한 고종은 그깟 돈이 대수냐며 서재필의 남은 임기만큼의 급료를 모두 지급하였으니, 지금 돈으로 30억쯤이었다고 한다.

<윤치호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만일 봉급을 두 배로 올려 주었다면, 서재필은 조선에 남아 있을 생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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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204)

1951년 서재필은 88세의 나이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눈을 감았다. 이후 미국에서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된 서재필의 묘소가 한국 뉴스에 나오자, 여러 기독교단체가 그의 유해 송환을 주도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서재필의 유해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되려는 순간, 한국의 역사가들은 현충원의 정문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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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조선의 수난 역사다시 일으킬 희망도 없이,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로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단다. 500년 긴 역사가 이어진 나라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다른 나라에 넘겨주었다는 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란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들의 책임도 컸지만 하필 이 시절 왕이 무능한 고종이었던 이유도 컸을 거야. 그래도 고종이 일제로부터 강제로 폐위당한 이후에는 나라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등 왕다운 모습을 보였다는 평도 있는데, 이 책의 지은이 황현필 님은 고종은 끝내 무능했고, 그는 독립운동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황제권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 것이라고 평가 절하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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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고종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며 나라까지 잃었음에도 그는 대단히 풍족하게 살았다. 국권피탈기 고종의 행동들은 그저 황제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된 후 고종의 독립운동이란 것들은 모두 자신의 황제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종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최소한 잃어버린 강토의 회복과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는 만백성의 자주성 회복을 천명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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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정도로 간단히 이야기를 마치려고 해. 앞서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그 동안 다른 책을 통해 한 이야기들과 중복이 되어서 짧게 했어. 황현필 님의 책들이 그렇듯 한 가지 소재에 대해서 짤막하게 요점 정리해서 말씀을 해주셔서 읽기 편했단다. 너희들 같은 청소년들도 읽으면 좋을 것 같았어. 문득 학교 교과서에 근대사가 어떤 식으로 기술했는지 궁금하구나. 한번 너희 교과서를 훑어봐야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할게.

 

PS,

책의 첫 문장: 1800, 정조가 갑자기 사망했다.

책의 끝 문장: 옆집 아저씨가 아무리 잘났어도 내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존중하듯이 다소 아쉬운 역사라 할지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설에 의하면 안동 김씨도 나름 계산을 했다고 한다.
왕이 되기 전, 어린 이 이명복의 연이 끊어져 어느 안동 김씨의 집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보통 아이들 같았으면 겁도 없이 대문을 두들기며 연을 달라고 하든지 그럴 용기가 없다며 차라리 포기할 텐데, 이명복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문 앞에 않아서 하루 종일 울고만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안동 김씨는 이명복의 우유부단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를 왕으로 세워 설령 그의 아버지 이하응이 살아 있는 대원군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껏 이하응의 처신으로 보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P15

한 사람만 더 언급하자면 동학을 진압한다고 핑계로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을 당시의 일본군 사령관이 오시마 요시마사다. 오시마 요시마사라는 이 낯선 이름은 사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얼마 전까지 일본의 총리였던 아베 신조의 외고조부다. 그리고 전범임에도 사형을 면하고 일본의 총리까지 역임했던 기시 노부스케도 조슈번 출신이자 아베 신보의 외조부다. 당연히 아베 신조 역시 조슈번 출신이고,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정한론의 창시자 요시다 쇼인이었으니 최근 일본의 정치 권력을 잡은 주류들의 사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P96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일본군을 기어이 막아선 이순신.
우리 강토를 짓밟은 외적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고, 침략자의 후손들이 우리의 후손을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량해전을 설계했던 이순신.
이순신은 비록 노량에서 전사하지만, 그는 일본 에도막부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후 에도막부와 조선은 250년의 평화를 유지했으니, 이순신의 노력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순신에게 짓밟히고 에도막부에 눌려 있던 자들이 에도막부를 몰아내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정한론이 다시 대두됐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한반도가 다시 침략당했다.
- P97

1592년 임진왜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일본이 외세와 치른 전쟁들이다. 모두 일본의 선제공격이었다. 이토록 수많은 선제공격에 앞서 일본은 단 한 번도 전쟁에 대한 선전 포고를 하지 않았다.
일본인이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무사도, 즉 사무라이 정신은 형식이자 겉치레에 불과했다. 사무라이는 자신들이 동경하는 이상향이었을 뿐, 그들 내면의 뿌리에는 닌자 정신이 깔려 있던 것이다.
- P151

민비는 임오군란 당시 도망 중에 만난 진령군이라는 무당을 신처럼 받들고 살았다. 성리학 국가 조선의 궁궐을 무당이 마음껏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진령군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고, 무당의 결정으로 벼슬이 주어지기도 했다. 민비가 세자의 건강을 기원하며 금강산 1만 2천 봉마다 쌀을 뿌린 것 또한 진령군의 진언 때문이었다. 임오군란 이후부터 민비가 시해되기 전까지 조선의 서열은 고종 위에 민비가 있었고, 민비 위에 무당 진령군이 있었다. - P176

회고의 애국계몽운동단체는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였다.
회장 윤치호와 부회장 안창호를 중심으로 구성된 신민회는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하여 교육과 산업 진흥에 힘을 쏟았다. 안창호는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웠고, 이승훈은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웠다. 기호흥학회, 서북학회, 호남학회 등 각 지역에 학회가 설립된 것도 신민회의 역할이 컸다. 이 밖에 신민회의 주도로 평양에 자기회사가 설립되었고, 대국에는 태극서관이라는 출판사도 설립됐다.
신민회의 또 다른 특징은 비밀결사적 성격이 짙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신민회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다. 비밀결사의 앞뒤 연락책 정도만 알 뿐이었다. 대신 비밀조직인 만큼 신민회는 일제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계속 준비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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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공포는 없으신가요?”

자신은 없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사람은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 했어. 그것을 본 한 기자가 물었지.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왜 정작 당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느냐?’

로스가 이렇게 답했다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44-45)

인터뷰가 뭔가? Inter. 사이에서 보는 거야. 우리말로 대담이라고도 번역하는데, 대담은 대립이라는 뜻이야. 대결하는 거지. 그런데 말 그대로 서로 과시하고 떠보고 찌르면 거기서 무슨 진실한 말이 나오겠나. 위장술밖에 더 나오겠어? 군인들이 전투할 때 왜 위장복을 입겠어살기 위해서 감추고 색을 바꾸는 거지. 인터뷰는 그래선 안 되네. 인터뷰는 대담(對談)이 아니라 상담(相談)이야. 대립이 아니라 상생이지. 정확한 맥을 잡아 우물이 샘솟게 하는 거지. 그게 나 혼자 할 수 없는 inter의 신비라네. 자네가 나의 마지막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왔으니, 이어령과 김수지의 틈새에서 자네의 눈으로 보며 독창적으로 쓰게나.”

 

(55-56)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지.

자네가 가장 잘 아는 게 뭔가?’

꿀벌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꿀벌을 잘 봐. 꿀벌처럼만 하면 좋은 문학이 돼.’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지.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는 부류. 개미 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야. 거미 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이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만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밥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74-75)

차이는 있어. 남자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의 신호가 있다네. 파이브 어 클락 새도(five o’clock shadow)라고 들어봤나? 샐러리맨들이 오후 다섯시가 되면, 깨끗했던 턱 밑이 파래져. 퇴근 무렵, 면도 자국에서 수염이 자라 그림자가 생기네. 그게 오후 다섯시의 그림자야. 매일 쳇바퀴 돌 듯 회사에 나와 하루를 보낸다. 문득 정식 차리면 오후 다섯시. 수염 자국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지면 우수가 차오른다네. 오늘 뭘 했지? 내일도 또 이렇겠지. 다시 전철을 타고, 술집에 가고, 이윽고 집에 돌아가 아내를 만나고….. 그게 샐러리맨의 고독이지.”

오후 다섯시. 남자의 얼굴에 수염 그림자가 생길 때, 여자는 립스틱 자국이 지워진답니다.”

 

(125-126)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로 사는 거라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지. 그게 어떻게 인간인가? 그냥 무리 지어 사는 거지. 인간이면 언어를 가졌고, 이름을 가졌고, 지문을 가졌어. 그게 바로 only one이야. 무리 중의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한 놈이라는 거지. 그렇게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거야.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끌어안겠나? 내가 없는데 우리가 있어? 그런데 나 없는 우리?’ 아니 될 말씀이야. 큰일 날 소리지. 그래서 내가 사이를 강조했잖아. 나와 너 사이. 그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거지. 자네와 나 사이에 interview가 있는 것처럼.”

 

(144)

밤사이 내린 눈은 왜 그렇게 경이로울까요?”

변화잖아. 하룻밤 사이에 돌연 풍경이 바뀌어버린 거야. 우리가 외국 갔을 때 왜 가슴이 뛰지? 비행기 타고 몇 시간 날아왔더니 다른 세상이 된 거야. 하루하루 똑같던 날들에서, 갑자기 커튼콜 하듯 커튼이 내려왔다 싹 올라가니까 장면이 바뀌어버린 거야. 막이 내렸다 올라가는 건 일생 중에 그렇게 많지 않거든. 외국 여행을 한다든지, 수술했다 마취에서 깨어난다든지…… 그런데 일상에서 유일하게 겪을 수 있는 게 간밤에 내린 눈이라네. 잠자는 사이 세상이 바뀐 거지. 보통 쿠데타가 밤에 일어나잖아. 자고 일어났는데 탱크가 한강은 넘어 세상이 싹 달라진 거야. 밤에 내린 첫눈이 그래. 쿠데타야. 오래 권력을 누리지 않고 바로 사라지는 쿠데타. 오래 있어 봐. 눈 녹으면 지옥이지. 곧 사라지니까 그만큼 좋은 거야. 아름다운 쿠데타.”

 

(168)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길 잃은 양은 그런 존재라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종교조차 문학이었다네. 신학에서 자를 빼면 시학이잖아. 보들레르도 니체도 나는 성경을 읽는 마음으로 읽었지.”

 

(171)

천재가 있으면 특별 교육시켜야 해요. 특권이 아니에요. 오히려 불쌍한 애들이지. 하나님이 인간들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쓸모를 못 찾은 놈에게 눈곱 하나 떼서 붙여주면 그 아이가 화가가 되고, 귀지 좀 후벼서 넣어주면 그 아이가 음악가가 되는 거예요.

너 세상 나가면 쓸모없다 조롱받을 테니, 내 눈곱으로 미술 해먹어라. 너 세상 나가면 이상한 놈이라고 왕따 당할 테니 내 귀지로 음악 해먹어라.’

그게 예술가예요. 예수가들은 그 재능 빼면 세상 못 살아요. 아무것도 못해서 범죄자 돼요. 그러니 자비를 베풀라는 말이에요. 학교 만들어주는 게 자비에요.’

그 얘기 듣고 사람들이 웃고 잠시 침묵했어. 총리가 그럼, 통과된 걸로 알겠습니다하고 땅땅땅 때린 거야. 그 순간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생겨났다네. 한예종 아이들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오면 내가 그래.

너희들은 five minute kids, 5분 동안 태어난 아이들이야.’

 

(191)

나에게 행복은 완벽한 글 하나를 쓰는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계속 쓰는 것이고.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은 실패한 글이라네. 지금까지 완성된 성인들 중에 글을 쓴 사람은 없어. 예수님이 글을 썼나? 공자가 글을 썼나? 다 그 제자들이 쓴 거지. 역설적으로 말하면 쓰여진 글은 완성되지 못한 글이야. 성경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인간이 쓴 글이고 세상의 모든 경전, 문자로 쓰여진 것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 그림자의 흔적일 뿐이네. 나 또한 완성할 수 없으니 행복에 닿을 수 없어. 그저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쾌락이고 고통이야. 어찌 보면 고통이 목적이 돼버린 셈이지.”

 

(225)

그렇지. 갑작스럽게. 물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영적 판, 인화지가 있어야 셔터를 눌렀을 때 빛이 담기지. 종이 넣고 아무리 셔터 눌러봐야 거기에 뭐가 나와. 0.001초의 셔터를 끊어주는 그 짧은 순간에 감광지에 비치는 모습, 그게 영의 세계야. 순식간에 다른 세상을 보는 거지. 그런데 내 딸 민아처럼 하나님을 진실로 믿으면 영성의 세계에 들어가 거기서 머무는데, 나는 미끄러져서 계속 땅에 떨어져. 그래서 영성이 아니라 땅 지()자 지성이 되는 거야. 땅의 성이지.”

 

(245-246)

제 기억으로는 88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이 반바지를 입고 굴렁쇠를 굴리며 갈 때, 사이렌이 울렸던 것 같습니다.”

그 제목이 silence였지. 내가 올림픽에서 수십 억 지구인들에게 들려준 것도 바로 그 침묵의 소리야. 꽹과리 치고 수천 명이 돌아다니던 운동장에 모든 소리가 딱 끊어지고 어린애 하나가 나올 때, 사람들은 듣고 본 거야. 귀가 멍멍한 침묵과 휑뎅그레한 빈 광장을…… 그게 얼마나 강력한 이미지였으면, 그 많은 돈 들여서 한 공연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시끄럽던 운동장이 조용해지고 소년이 굴리던 굴렁쇠만 기억들을 하겠나. 그게 어린 시절 미나리꽝에서 돌 던지며 정적에서 나온 이미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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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세상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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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인 피에르 르메트르의 신작 소식을 듣고 바로 샀단다. 792페이지나 되는 책을 분책하지 않고 한 권으로 출간한 출판사 열린책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세계1차대전과 2차대전을 다룬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그 이후 프랑스 사회를 이야기하는 4부작을 쓰겠다고 했는데, 4부작 중에 첫 번째 책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것이란다. 제목은 <대단한 세상>이라는 책이란다.

아빠가 프랑스 역사, 특히 현대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읽은 부분도 있단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재미있고, 작가의 블랙 유머 스타일의 글들도 재미있어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단다. 다만 책이 무거워 한 손으로 들기 어려웠다는 점…^^ 그래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분책하지 않고, 두툼하게, 디자인도 예쁘게 잘 만든 것 같구나. 그러면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소설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시작한단다. 레바논은 프랑스로부터 1943년에 독립했지만, 독립 이후에도 서로 협력 관계에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레바논에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던 것 같구나. 베이루트에서 비누 공장으로 크게 공상한 루이 펠티에라는 사람이 있었어. 루이의 아내는 앙젤이라는 사람이고, 그들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단다.

루이는 첫째 아들 장에게 비누 공장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장은 비누 공장에 적성이 맞지 않았으며 태도도 불성실했단다. 우체국장 딸 준비에브와 결혼한 이후 파리에 취직하여 파리에 살고 있었단다. 장의 별명은 뚱땡이인데, 아내 준비에브도 장에게 뚱땡이라고 부르고 무시하는 발언을 많이 하더구나. 준비에브는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먼, 그런 스타일의 아내였단다.

둘째 아들 프랑수아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고등사범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파리로 갔단다. 하지만 고등사범학교에 적성이 맞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언론 관련 일을 찾다가 르 주르날이라는 신문사에 취직을 하게 된단다. 셋째 아들 에티엔은 베이루트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의 애인 레몽이 인도차이나 전쟁에 갔다가 소식이 끊겨 걱정을 하다가 레몽을 찾기 위해 직접 인도차이나로 가기로 마음 먹었단다. 에티엔이 남자인데 애인이 전쟁에 갔다고 하니 레몽이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레몽은 남자란다. 에티인과 레몽은 동성애였단다. 마지막으로 딸 엘렌은 아직 학생으로 베이루트에서 부모님과 지내고 있는데, 오빠들이 하나둘 베이루트를 떠나고, 막내 오빠마저 인도차이나에 간다고 하니 엘렌도 베이루트를 떠나고 싶어한단다.

주요 등장 인물들은 이 정도로 하면 다 한 것 같구나.

 

1.

레몽을 찾아 인도차이나 반도로 온 에티엔은 사이공에 도착했단다. 당시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베트남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을 벌이고 있던 시기였어. 베트남에 사이공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지금은 이름이 호치민으로 바뀌었단다. 베트남의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익숙지 않은 에티엔은 그곳 생활을 적응하는데 애를 좀 먹었단다. 레몽이 베트민들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소문을 들었어. 레몽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에티엔은 사이공에 있는 외환국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외환국에는 국장 장케, 동료 가스통 등이 있었어. 아참, 에티엔은 사이공에 자신의 고양이도 함께 데리고 왔는데 그 고양이의 이름은 조제프란다. 외환국에 일하면서 에티엔은 주변 사람들에게 레몽의 사촌이라고 하면서 레몽의 부대 소식을 물어보았어. 아무래도 애인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볼 것이 뻔하니 사촌이라고 했나 보구나.

에티엔은 외환국에서 일하면서 환전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이상한 환차익으로 부당하게 돈을 벌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 환차익을 이용하면 돈을 두 배로 뻥튀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사실을 외환국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는데 쉬쉬하고 있었단다. 에티엔은 환전을 승인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부당하게 환전을 하는 것으로 망설이게 된단다. 양심상 도장을 찍기 어려웠던 것이지. 그 일로 사이공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어.

….

, 이제 파리에 살고 있는 다른 형제들 이야기를 해볼게. 첫째 아들은 알고 보니 완전 싸이코패스더구나. 자기 뜻대로 안되면 화를 참지 못하고, 그때 눈에 띄는 약자들, 특히 여자들을 죽이곤 했단다. 그렇게 파리에서 두 명을 죽였는데, 알고 보니 베이루트에서도 살인을 저지른 전적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베이루트를 도망쳐 파리로 온 것이었던 거야. 어느 날은 장은 준비에브, 프랑수아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화가 나는 일이 생겼고, 화장실에 갔다가 그곳에 일을 보고 있어 어떤 여인을 그 자리에서 죽였단다. 그냥 홧김에 말이야. 그 사건은 나중에 화장실에 온 다른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단다. 영화는 중단되고 극장은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혼란스러웠어.

장과 준비에브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준비에브는 피가 묻은 장의 옷을 보게 되었어. 그리고는 조심하라고 한 마디만 하고 말았단다. 준비에브도 장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알고 있었나 봐. 극장에 있던 프랑수아는 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인, 그것도 미인의 살인 사건은 자신이 특종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프랑수아는 기자를 신분을 이용하여 살인사건 현장에서 가서 피해자의 수첩에서 신분증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그 여자는 그들이 보고 있던 영화의 여자 주인공으로 초특급 여배우인 메리 램슨이었던 거야. 프랑수아는 곧바로 신문사로 들어가서 기사를 써 내려갔단다. 그리고 이 기사로 인해 프랑수아는 인해 인정 받는 기자가 되었고, 그 후속 보도로 인해 신문사도 매출이 올라갔어.

한편 베이루트에 홀로 남은 엘렌은 방황의 길을 걷는단다. 20살 많은 수학 선생님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수학 선생님은 유부남이었어. 그런데 그 사실을 엘렌의 아버지 루이 펠티에가 알고 있었어. 루이는 이걸 어떻게 해결했을까? 엘렌을 혼냈냐고? 아니야, 딸 몰래 수학 선생님을 파멸시키는 작전을 펼쳤는데, 그 작전이 성공하여 수학 선생님은 교직에서 쫓겨나고 말았단다. 아버지 루이는 그저 비누 공장으로 성공한 짠순이 부자인 줄 알았는데, 자식들을 사랑하는 남다른 방식이 있는 것 같구나. 앞으로도 그런 일이 더 나오는데 좀 이따 이야기해줄게.

 

2.

에티엔은 레몽의 뒷조사를 계속 했는데 결국 레몽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이후 에티엔은 타락의 길을 걷는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불법 환차익 거래를 승인해 주는 대신 뇌물을 엄청 받았고, 그 돈으로 도박장을 드나들었고, 아편도 하면서 타락의 길을 걸었지. 하지만 다시 정신차리는 계기가 있었는데, 적군인 베트민들도 외환국의 환차익을 부당 수입을 얻는 정황을 포착했어. 베트민들은 불법 환차익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군자금으로 써서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프랑스와 베트남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베트남도 프랑스 돈으로 군수품을 사서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인 거지. 프랑스 돈으로 무기를 산 베트민들이 자신의 애인 레몽을 죽인 것이고이 사실을 외환국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정부기관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증거가 없다고 무시를 당했단다.

그 뒷이야기는 잠시 후에

다시 엘렌의 이야기를 해보자. 18살인 엘렌은 메모 한 장 남기고 베이루트를 떠나 무작정 파리에 왔단다. 오빠 프랑수아와 장을 차례로 만나 잠자리를 부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재워주긴 하겠지만, 싫어하는 표정들이었어. 화가 난 엘렌은 호텔에서 자겠다고 다시 거리로 나왔는데, 소매치기를 만나 돈과 짐을 모두 다 털리고 말았단다. 예나 지금이나 파리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는 모양이구나. 아버지의 지인이 호텔을 운영한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 호텔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이미 아버지 루이가 와 있었단다. 엘렌이 파리를 떠난 사실을 알고 바로 그 다음 비행기로 파리로 온 루이. 장과 프랑수아를 만나고 엘렌의 이야기를 듣고 혼자인 엘렌이 이 호텔로 올 것을 예상하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역시..

이번에도 루이는 엘렌에게 화를 내기 않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호텔 방도 알아봐 주었단다. 다음 날 아들들인 장, 프랑수아와 며느리 준비에브도 함께 모였어. 루이는 엘렌을 베이루트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고 파리에 머물 수 있게 집을 구해주겠다고 선언했어. 그리고 엘렌이 어리니 그 집에서 프랑수아와 함께 지내라고 했고, 장과 준비에브도 서운하지 않게 그들이 준비중인 가게 비용도 보태주겠다고 했단다. 이런 배려심 깊은 아버지인데, 그런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장 같은 싸이코패스가 태어날 수 있는지

….

메리 살인사건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나도 진전이 없었어. 그러다가 증인이 나타났어. 메리가 죽기 전에 화장실에 나오던 어떤 여인이 남자와 어깨를 부딪혔다는 거야. 이 사실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자 장은 긴장을 했단다. 증인의 진술에 따라 많은 남자들이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는데, 장은 자신이 명단에 빠진 것에 안심을 했단다. 하지만 준비에브는 법원을 찾아가 항의를 했어. 파리 시민으로 법원 소환을 받는 것은 의무인데 자신의 남편 장이 빠졌다면서 말이야. 준비에브, 참 독특한 캐릭터이구나. 그렇게 장은 다시 긴장을 했어. 법원에서도 잔뜩 긴장을 해서 벌벌 떨고 그랬어. 하지만 증인을 다른 사람을 지목했는데, 그 사람은 유사 범죄 이력이 있던 사람이었단다. 누구나 범인으로 생각할 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는 계속 부인하고 명확한 증거도 없어서 다시 풀려나고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단다.

….

사이공에서 불법 환차익이 베트민들에게 들어간다는 정황을 포착한 에티엔계속 조사를 해보니 프랑스의 주요 정부 요인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증거도 확보하게 되었어. 기자로 일하고 있는 형 프랑수아에게 전화를 했어. 환차익 부당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하고 기사를 써달라고 했어. 증거를 가지고 가겠다면서 말이야. 그리고 먼저 전화로 약자 10개를 불러주었단다. 에티엔은 증거 서류를 입수하고 떠날 준비를 했는데 그의 집에 누군가 침입하여 에티엔을 도와주었던 베트남 청년을 죽였단다. 그리고 에티엔도 공격을 당해 무작정 도망을 갔어. 추적을 피해 사이공을 탈출하는 경비행기를 탔지만 비행기 폭발 사고로 그만 죽고 말았단다.

 

3.

아버지 루이는 에티엔의 사망 소식을 전보로 받았단다. 여행 중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내용이었어. 루이뿐만 아니라 식구들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단다. 특히 에티엔과 가장 친했던 엘렌의 상심은 말할 수 없이 컸단다. 프랑수아는 에티엔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죽기 얼마 전에 전화통화한 내용을 알고 있었잖아. 프랑수아는 앨렌이 알려주었던 알파벳 10개를 이용하여 외환국 관련 사람들을 알아보았어. 그리고 두 사람의 거물급 인사를 의심하게 되었단다. 에티엔이 알려준 알파벳 10개와 관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사이공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이력도 있었어. 프랑수아는 인터뷰를 가장해서 그 중 한 명을 만났어. 인터뷰를 마치면서 은근 슬쩍 그러면서도 기습적으로 사이공 근무 이력을 물어보았어. 그리고 그 얼굴에서 당황함을 볼 수 있었지.

그런데 얼마 후 프랑수아, , 엘렌은 모두 누군가에게 강제로 연행되었단다. 엘렌은 친구가 마약을 훔치는데 망 본 일이 있는데 그것으로 잡혀 들어간 줄 알고 걱정했고, 장은 자신의 살인 사건이 드디어 드러난 줄 알았어. 장은 메리를 죽인 이후, 또 한 명의 여자를 죽였는데 그 여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지인의 딸이었고, 현장에 지문이 남아 있다고 해서 초조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강제 연행되다 보니 그 일로 잡힌 줄 알았던 거지. 그런데 알고 보니 에티엔의 일 때문이었단다.

정보부에서 그들을 강제 연행한 것이었고, 부모님도 파리에 오고 있다고 했어. 정보부 요원들은 프랑수아에게 경고를 했어. 지금 조사하고 있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일가족이 제대로 생활하지 못 하겠다고 경고를 했어.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그들의 부모님의 온갖 비리도 온 세상에 다 퍼뜨릴 거라고 했어. 부모님의 비리가 무엇이냐고? 아버지 루이는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었는데, 참전 이후 사기로 돈을 벌어들였고 그 돈으로 비누 공장을 차린 거라고 했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파리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만났고, 아버지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더 이야기를 해주었어.

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에게 국가는 무관심하였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으며, 그렇게 번 돈으로 참전용사협회를 만들어 생활이 어려운 참전 용사들을 도와주었다고그리고 나중에 사기로 번 돈은 모두 돌려주었다고 했어. 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도 있다고 했단다. 그동안 자식들에게 숨겨왔던 아버지 루이의 비밀을 다 이야기해주었어. 아빠가 들어보니 그리 큰 잘못도 아니구만루이는 알고 보니 자식들 몰래 뒤에서 후원을 해주고 있었더구나. 프랑수아는 에티엔의 준 정보에 대한 후속 조사는 하지 않기로 했단다. 남아 있는 식구들의 명예를 지키기로 했어.

엄마 앙젤은 에티엔의 유품을 가지러 직접 사이공에 가기로 했단다.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 있으면 알아보기도 하고앙젤은 딸 엘렌과 함께 사이공으로 갔어. 앙젤은 사이공에 오고 보니 에티엔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어. 외환국와 정부 기관을 찾아가 에티엔이 밝히려고 했던 환차익 부당 거래 의혹을 이야기했지만 모두 증거가 없었고, 에티엔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어. 에티엔의 친구 로안을 만났고, 로안으로부터 에티엔의 유품이 담긴 트렁크를 받을 수 있었어. 앙젤과 엘렌은 에티엔의 죽음을 조사하다 보니, 환차익 부당 거래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에티엔의 죽음은 사고가 아닌 타살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 에티엔이 생전에 도움을 많이 주었던 중국인 차오를 만나게 되었는데, 차오를 통해서 여러 정보를 알게 되고, 에티엔의 죽음에 그의 친구였던 로안이 깊숙이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로안이 친구를 배신하고 에티엔을 죽인 거야. 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었고, 사이공의 경찰들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그들을 믿을 수도 없고 말이야.

결국 앙젤은 엄마의 해결법을 썼단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 앙젤은 청부업자를 고용해서 로안을 저격했단다. 그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앙젤과 엘렌은 레바논 베이루트로 돌아왔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책의 뒷편에 옮긴이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 글에 그런 내용이 있더구나. 이 소설의 이야기를 이전 3부작에 나왔던 사람의 가족 이야기라는 거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해주지 않겠다고 하네. 아빠의 기억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잖니. 그래서 이전 독서 편지를 뒤져보았단다. 찾았다.

<오르부아르>에 알베르 마야르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은행 돈을 빼돌려 추모비 카탈로그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구나. 그리고 <대단한 세상>에서는 배려심 깊은 아버지 루이 펠티에의 본명이 바로 알베르 마야르라는 하는 부분이 있었단다. 뒤늦게 알게 된 이 깨알 같은 재미. 아빠가 예전에 이사벨 아옌데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쪽 소설 등장인물이 저쪽 소설에 나오는 것에 대해 재미있다고 했던 적이 있잖아. 그런 것처럼 피에르 르메트르도 그런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셨구나. 옮긴이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힌트를 주어 알게 되었단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다음 소설을 읽을 때도 등장 인물들을 유심히 봐야겠구나. 피에르 르메트르의 새로운 4부작의 시작나쁘지 않구나. 아빠 취향에 딱 맞는 책이었어.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게.

 

PS,

책의 첫 문장: 프랑세로()를 따라가는 가족 행렬은 해를 거듭해 가며 여러 모습을 보여 왔지만, 여태껏 장례 행렬처럼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책의 끝 문장: “…… 정말 잘됐다, 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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