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기자 정의 사제 - 함세웅 주진우의 '속 시원한 현대사'
함세웅.주진우 지음 / 시사IN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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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아빠가 든 생각은, 제목 한번 잘 뽑았다는 것이었단다. 악마 기자와 정의 사제 ㅎㅎ 이 시대 최고의 언론인 중에 한 명인 주진우 기자. 정권이 바뀌어 그도 이제 공중파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구나. 그리고 그토록 감옥에 보내려고 십 년 넘게 쫓아다니던 MB도 감옥에 들어가 계시고…. 오늘 우리가 느끼는 이 민주주의 향기… 주진우 기자의 공로도 잔뜩 실려 있다는 것에 아빠는 그에게 늘 고맙다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그보다 좀더 오래 전부터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신 분 중에, 함세웅 신부라는 분이 있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만드는데 앞장 서셨고, 과거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저항하셨던 분… 얼마 전에 재미있게 본 영화 <1987>에서도, 경찰에 도망 다니는 민주주의 운동가를 보호해주는 역할로도 등장했던 분…. 이 두 분께서 지난 2015 11월과 12월에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했던 현대사콘서트를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아빠가 이번에 읽은 <악마 기자 정의 사제>라는 책이란다.

2015년이면군사독재 이후 민주주의가 가장 쇠퇴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당시만 해도 1년 뒤에 촛불이 그렇게 뜨겁게 타오르라 예상을 못했던 시절이고, 이명박근혜가 감옥에 가리라고는 더욱 상상도 못했던 시절… 그리고 정권을 비판하면 검찰에 잡혀갈 수도 있는 그런 시절… 그런 세상이 불과 2년 만에 전혀 다른 나라로 바뀌다니… 아직도 이게 꿈인가 싶을 때가 있단다. 2015년 그 어두웠던 시절… 지나고 보니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2016년 촛불이 타오르기 직전 가장 어두웠던 시절이 바로 2015년이었던 것 같구나.

지금 2018이 책을 읽다 보니, 2015년 우리나라의 역사가 오롯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기분이더구나. 다시는 그런 어두운 시절이 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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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얼마 전에 영화 <1987>를 봤다고 했잖아그보다 더 위대한 촛불혁명이 있었던 2016년과 2017년…. 가까운 미래에 2016이나 2017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구나.

  

1.

이 책은 주진우 악마 기자와 함세웅 정의 사제의 콘서트 실황을 그대로 옮겨 적어 놓았단다. 주진우와 함세웅의 대담과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되어 있어. 주제는 장소마다 다르긴 했지만,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이야기하고, 우여곡절 그 역사 속에서 몸소 경험했던 함세웅 신부님의 이야기, 그리고 2015년 당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다. 아빠는 물론 그 콘서트에 가 본 적은 없었어. 하지만 그 콘서트가 한창이고이 책이 출간되었던 즈음에 주진우 기자와 함세웅 신부님이 팟캐스트에 나와서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단다.

주진우 기자는 통찰력이 뀌어나고논리적이면서도 위트 있고유머러스한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었는데, 함세웅 신부님도 재치 있고촌철살인 같은 말씀으로 청중의 웃음과 박수를 자아내게 하시더구나. 아빠는 사실 함세웅 신부님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고그가 하신 말씀을 들어본 적도 없어서 잘 몰랐었는데이 책을 통해서 그 또한 열정적인 삶을 사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종교인이라면서 속세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함세웅 신부님은 고통에 신음하는 시민들과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그냥 볼 수만은 없었던 뜨거운 심장을 가진 분이었던 거야. 그로 인해 1970년대에는 두 번이나 감옥에 갔다 오셨다고 하는구나. 많은 재야인사들과 함께 우리나라 민주주의 운동에 힘썼고,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약자의 인권 보호에 힘써주셨더구나. 앞으로 더 관심을 하지고 함세웅 신부님의 행보에 응원을 해주어야겠구나.

 

2.

주진우 기자와 함세웅 신부님이 함께 했던 이 콘서트 이후 2년 남짓… 그 당시에는 아무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이런 모습을 하게 되리라 예측을 못했을 거야. 통찰력이 뛰어났던 주진우 기자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란 걸 몰랐던 것 같아. 어느덧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세월이 참 빠르구나… 이제 4년 밖에 안 남았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난 1년 그가 해온 일들을 보면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일들을 해온 것 같아.

그의 행적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 언론에서도 칭송이 끊이지가 않고 있단다. 그리고 그 정점은 지난 달에 있었던남북정상회담. 온 국민뿐만 아니라온 세계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남북정상회담. 정말 꿈만 같았던 일들이 앞으로 펼쳐질 것을 기대해도 될 것 같구나. 하지만 늘 그렇듯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남북관계가 되길 바래본다. 그래서 정말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까지 갈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우리는 2016, 2017년 역사적인 한 해를 거듭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2018년은 또다시 그 역사적인 한 해를 업그레이드를 해가 되어 가고 있구나. 아빠가 앞서 2016년이나 2017년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리즈로 2018년을 다룬 영화도 나와야겠구나.^^ 오늘은 이만 줄일게…


(73)

미래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어로 퓨처(future),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도 오는 미래에요. 그런데 성서의 대림에서 말하는 미래는 앞당기는 미래, 선취하는 미래입니다. 선취적 미래, 그러니까 내가 지금 비록 2015년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미 2020년, 아니 멀리 2050년을 살고 있는 거예요. 민주주의가 이룩되고 통일이 이룩된, 박근혜는 이미 타파된 그런 미래를 살고 있는 거죠. 여러분이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101)

저는 비례대표제가 바뀔 수 있다면 국회의원 수도 현행 300명에서 50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1948년 제헌국회 때는 인구 10만 명당 한 명의 국회의원이 나왔어요. 그러니 인구가 5천만 영인 지금은 500명쯤 나오는 게 맞지요. 우리가 정책을 논할 때 300명이 논하는 게 좋겠습니까, 500명이 논하는 게 좋겠습니까? 당연히 많은 쪽이 좋겠죠. 국회의원 늘리면 세비가 더 늘어난다고 하는데, 지금 대통령이 한 해 동안 주무르는 예산이 얼마입니까? 375조 원이에요. 이걸 청와대와 재경부가 마음대로 씁니다. 반면 국회 예산은 2천7백억 원, 인건비까지 합쳐도 5천4백억 원에 불과합니다. 비교가 안 되는 수치입니다. 국가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는 게 국회입니다. 더 많은 국회의원들이 감시할 수 있어야 해요. 다 우리 세금이니까요. 청와대와 재경부가 자기들 만대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해야죠.

(159-160)

제가 함석헌 선생님을 직접 뵙기도 하고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게 많아요. 그분은 자신을 소개하시길 "나는 하느님의 발길에 차인 사람이다"라고 하세요. 그분이 일제강점기 때 감옥에서 서너 번 가신 분인데, 해방이 된 다음에는 북한에서 소련군이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해요. 그 뒤 ‘야, 내 나라 내 땅에서 고문을 당하다니’ 싶어 북한을 몰래 탈출해 남한으로 건너오죠.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이건 또 이승만 독재에 박정희 독재에 온통 독재뿐인 거예요. 여기 맞서 싸우다 보니 ‘야, 나는 일제와 싸우고, 소련과 싸우고, 북한 공산당과 싸우고, 남한에 와서는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와 싸우는구나. 이게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 거죠. 그러면서 고백하신 말씀이 "나는 하느님의 발길에 차인 사람"이라는 거예요. 저는 이 말씀을 우리 역사와 연결시킬 수 있을 때, 그러니까 순국선열, 한국의 역사, 우리 민족을 위해 ‘나는 발길에 차인 사람이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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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정확히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싸우는 거다. 브르타뉴에서 배웠지. 이 참혹한 세계는 약하고 무기력하고 굶주리고 슬프고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약자를 외면하는 건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일 게야. 특히 네가 군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전사가 어떤 남자의 딸을 빼앗고 싶으면 그냥 빼앗고, 땅을 원하면 죽이면 되니까. 결국 넌 전사가 아니더냐. 너한테 창과 탈이 있는 반면에 상대는 부러진 쟁기와 병든 소뿐인데, 거칠 게 뭐가 있겠냐?” 물론 대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저 조용히 걷기만 했다. 서쪽 성문의 통나무 계단에는 새로 내린 서리가 하얗게 쌓여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계단을 올랐다. 아서가 입을 연 건 계단 위에 완전히 올라선 후였다. “하지만 데르벨, 우리가 군인이 된 건 바로 그 약자들이 우리를 군인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란다. 그가 곡식을 키워 우리를 먹이고, 가죽을 무두질해 보호해주고, 물푸레나무를 깎아서 창대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지. 우린 그 사람들한테 봉사할 의무가 있어.”

(389)

그냥 대화나 하자는 것 아니냐! 대화는 문명의 이기야, 데르벨. 칼과 방패와 욕설만으로 삶을 꾸릴 수는 없지 않겠니? 우리 같은 사람들만이라도 그 명예로운 이기를 시도해야지.” 그가 콧방귀를 끼었다.

(515-516)

당연히 아니지. 데르벨, 사람들은 아서를 과서평가하고 있어. 그의 선과 친절을 보고, 정의 대한 웅변을 듣지만, 그 안에 정말로 어떤 불이 타오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데르벨, 자기도 모르긴 마찬가지야.”

어떤 불입니까?”

야망.” 그녀가 담담하게 내뱉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영혼은 두 마리 말이 끄는 화차야. 야망과 양심. 하지만 데르벨, 야망의 말이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양심은 그 말에 끌려갈 수밖에 없어. 게다가 그 사람, 능력도 있잖아. 그것도 상상도 못할 능력이.(슬픈 미소) 그 사람을 잘 지켜봐, 데르벨. 모든 것이 파괴되고 절망적인 순간이 되면, 사람들을 정말로 놀래줄 테니까. 전에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어. 그 사람은 이겨. 그때마다 양심의 말이 고삐를 빼앗아, 적을 용서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마는 문제지만.”

(557)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을 들여다보면, 문득 그 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그 눈빛에 숨이 한 박자씩 빨라지고, 그 눈만이 행복의 모든 조건이며, 그 눈이 없으면 영혼은 공허한 껍데기가 되고 말 거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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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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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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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빠가 싼 가격에 혹해서 사서 읽은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라는 책이 있었어. 그 책을 통해서 여럿 젊은 작가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단다. 수상작들도 괜찮았고 말이야. 올해도 수상집에 나오면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간코너의 이 책이 소개가 되어 사서 읽었단다.

올해도 책 가격이 너무 착해서굿작년에는 보지 못했는데, 책 뒷면에 이런 글이 써 있더구나. 이 책의 정가는 12,000원이라고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상의 취지에 따라 출간 후 1년 동안은 보급가로 판매한다고그래서 책가격이 5,500원이라고젊은 작가들을 많이 알리기 위해 책가격을 싸게 했을 거라고 예상을 했었는데정말 그런 의도가 있었구나. 이번에도 일곱 명의 젊은 작가들의 수상작이 있었단다. 대상은 박민정이라는 작가야. 일곱 명의 작가 중에 아빠가 알고 있는 작가는 딱 한 명이었단다. 그것도 작년에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아서 알게 된 임현이라는 작가야. 우리나라에 정말 작가가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단다. 그러면서, 앞으로 읽을거리를 떨어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러면서, 젊은작가상을 수상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했어. 몇 살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 말이야… 30대까지? 40대까지? 등단하고 나서 10년 이내의 작가들만 기준이 된다고는 하는데…. 나이는 몇 살까지일까? 약간을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는 젊은 측에 드는 걸까? 이젠 주름도 꽤 있고, 흰머리는 브릿지 넣었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많고, 탈모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젊은 것일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잖아요. 생각이 젊으니까, 난 아직 젊어요.. 라고 우겨서 될까? 생각이 젊다는 것도 내 기준일 텐데 내 생각이 젊은 건 맞나?

에구, 책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로 빠졌네. 아무튼, 이 책에는 일곱 명의 젊은 작가의 일곱 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단다. 일곱 편 중에 몇 편을 이야기해줄게.

1.

먼저 대상을 받은 박민정의 <세실, 주희>라는 소설친구 J와 함께 미국 여행을 갔던 주희는 펍에 갔다가 현지 미국남자들로부터 조롱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동영상으로 찍혀 포르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어. 짜증이 났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주희는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주희그 가게에는 일본인 직원 세실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세실은 유노윤호 팬으로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었어. 세실은 주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같이 모여서 공부했어. 세실의 외증조할머니가 전쟁 중에 오키나와의 선생님이었는데, 당시 여고생들과 함께 자살한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었어. 세실의 말 속에 자신의 할머니가 전쟁의 피해자라는 뉘앙스와 약간의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했어. 하지만, 세실의 말 속에는 모순이 있었어. 당시 자살한 여자들은 모두 처녀들이라고 했거든

세실은 일본이 가해자가 되어, 피해를 준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 크리스마스를 맞아 주희는 세실과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었는데, 세실을 데리고 명동에 있는 소녀상에 데리고 가면서 소설은 끝이 났어.

소설의 초반부에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듯 했지만, 소설의 종반에는 한일 역사에 대한 민감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했단다. 그러나 아빠는 솔직히 이 소설은 미완의 소설이라고 생각해..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라는 것은 대충 알겠지만, 좀더 깊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또는 작가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아빠가 부족하다는 생각나중에 이 소설을 개작해서 장편으로 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두번째 소설은 임성순이라는 작가가 쓴…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 제목이 의미심장하구나. 주인공는 미술작품 브로커였어. 자본가들의 돈세탁으로 미술작품을 이용하는데, 그 미술작품을 소개해주는 그런 브로커였어. 돈도 잘 벌었지. 그런데, 어떤 재벌가가 미술 작품을 숨겨둔 창고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미술 작품을 통한 돈세탁이 뉴스를 타게 되었지. 이내 미술시장은 급냉하였고, ‘또한 돈벌이가 줄어들었어. 8년 만에 모아두었던 돈도 모두 날리고, 망했어.

뉴욕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떤 노신사의 초대를 받고 어떤 전시회에 갔어. 참가에게 진짜와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해주고, 괴이함을 주는 그런 퍼포먼스였단다.. ‘나’는 어떤 것이 실제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모를 정도였는데, 그런 실제 공포를 느끼면서는 서울에서 하면 돈벌이가 될까를 생각했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모든 것이 결국 돈으로 연결되는그런 암울한 세상인가 보구나. 미술작품도 결국 자본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그런데 이 소설은 소설보다 작가노트가 더 유머가 깃들고 재미있었단다. 그래서 임성순이라는 작가는 작품이 아니라 작가노트 때문에 그의 다른 소설을 읽고 싶어지는 그런 작가가 되었단다.

임현이라는 작가의 <그들의 이해관계> 아내 해주를 교통사고를 잃은 주인공’. 그런데 그 교통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버스 운전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버스 운전사로 인해 버스 승객들이 모두 살아남았지. ‘나’는 그 운전사를 만나고 싶어 찾아가 만났어. 그 운전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그 운전사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운전사가 운전한 버스에 자신의 아내 해주가 휴게소에서 타지 않아서였고, 해주는 휴게소에서 다른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알게 되었어운명이란 정해져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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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수의 <더 인간적인 말>. ‘나’와 아내 해원은 이혼을 준비하는 부부였어. 그런데 어느날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있던 이모가 유산을에게 주겠다고그래서 찾아가보니, 평생 독신으로 살아오던 이모가 이제 살만큼 살았다면서,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하시겠다는 것이야. 스위스는 안락사가 합법화되어 있는 나라이거든. 보통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스위스에 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건강한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안락사를 하려고 하다니..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은 모두 이모를 만류했지만, 이모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어. ‘나’와 해원은 이혼의 이야기도 접고, 이모를 계속해서 만류했어.

이모와 함께 스위스까지도 따라 갔단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모를 만류했지만, 결국 이모는 병원 문을 들어섰단다. 과연 이모는 자신의 결정을 끝까지 바꾸지 않았을까? 안락사는 윤리적인 문제와 맞물려 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단다. 아직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자살과 다르게 없는데과연 이런 경우도 안락사를 그저 죽음선택의 개인의 자유로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구나..

그런데 얼마 전에 104살의 호주의 어떤 과학자가 이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스위스로 날아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일이 있어 논란이 일어났단다. 자신의 죽음으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 그것도 그 사람의 권리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맞는가? 어려운 문제로구나. 주변의 주인공의 이모나 호주의 그 과학자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아빠는 강하게 만류할 것 같구나.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 아빠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가장 괜찮았단다. 경진은 힘들게 마케팅회사에 입사를 했어. 이 회사는 블로그를 최적화해서 상품을 홍보하는 그런 일이야. 일반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처럼 보인 다음에, 홍보해야 하는 상품을 사용후기를 실제 쓴 것처럼 올려서, 관련어 검색을 했을 때 포털 사이트의 첫번째 페이지에 드러나게 하는 일경진은 채털리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블로그를 꾸미게 되었단다.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따온 것이었어. 이 일이 경진의 적성에 맞았어. 경진의 블로그는 이내 우수블로그가 되었고, 경진의 글들은 포털의 첫 페이지에 오르게 되었어.

그런데 어느날 경진이가 블로그를 통해 홍보했던 가습기를 사용하고 두 아이를 잃고, 한 아이는 산소마스크를 평생 써야 하는 아이 엄마로부터 온 쪽지를 봤어. 그 아이 엄마는 경진을 탓하는 내용이 아니고, 혹시 경진도 그런 피해를 입지 않았냐고 걱정하는 내용의 쪽지였어. 경진은 이 쪽지를 보고 괴로워해그러면서 자신은 관련 없다면서 스스로 합리화하면서도 블로그는 폐쇄시켰단다. 그리고, 회사는 얼마 뒤 포털 사이트의 검색 알고리즘 변경으로 망해서 경진도 그만 두었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제품이나, 음식점, 여행을 할 때 블로그를 많이 참고를 한단다. 아빠도 많이 참고를 해. 그런데 그런 블로그들 중에는 광고로 만들어진 글들이 존재하는 것을 아빠도 알고 있어. 하지만, 경험자들의 후기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또한 블로그이기 때문에 블로그를 참고할 수 밖에 없지거짓 후기가 실제로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면, 이 세상은 진짜 진짜와 진짜 거짓과 거짓 진짜가 마구 섞여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구나. 혹시 누군가는 아빠가 쓴 독서편지를 보고, 책을 선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글쓰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지는구나.

앞으로 해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란다. 앞으로도 책가격을 이렇게 착하게 해준다면 더욱 고맙고…^^ 새로운 작가들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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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탈핵은 가능하다. 탈핵의 대안이 무어냐고 묻지만,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탈핵은 그 자체로 대안이다. 탈핵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우리는 길을 닦아야 한다. 우리의 삶과 미래를 핵 마피아들에게 저당 잡힐 수는 없다. 설계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를 폐쇄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수명 연장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누가 정해야 할까? ‘우리 원자력계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관료들이 밀실에서 짬짜미하는 것을 계속 내버려둘 것인가, 아니면 공론의 장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결정할 것인가? 핵발전소를 더 지을 것인가, 아니면 대체 에너지에 과감한 투자를 시작할 것인가? 이런 문제는 모두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독일이 탈핵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 문제를 핵발전 전문가들이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탈핵을 결정한 17인의 윤리 위원회에는 소위 말하는 핵발전 전문가는 한 명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민주주의란 결국 일반인의 상식에 의해서, 또 일반인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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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중요한 것은 1mSv라는 기준의 정확한 의미입니다. 이 수치는 어떤 기분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선을 넘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이 선 아래면 괜찮다는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자연환경에서 나오는 자연 방사선(혹은 바탕 방사선이라 부르며, 절반 정도는 땅에서 올라오는 라돈으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을 제외하고, 일상적으로 불가피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인위적은 상사선량을 어느 정도 낮은 수준까지 관리할 수 있는가로 기준을 잡은 것입니다. 건강이 아니라 통제(control) 가능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1mSv라는 수치는 국가적으로 볼 때 그 이상의 인위적인 초과 노출은 관리할 수 있되, 그보다 더 낮게는 관리하기가 어려운 수준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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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의 생물학전 영향은 방사선(에너지)이 사람 몸을 관통하면서 세포 내의 DNA 연기 서열을 끊거나 손상시키면서 시작됩니다. 본래의 염기 서열을 끊거나 손상시키면서 시작됩니다. 본래의 염기 서열이 끊어지거나 훼손되면 생체는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수리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일부 수리 작업이 잘못되면서 비정상적인 세포, 즉 암세포가 발생하게 됩니다. 잘못된 DNA에서부터 암 발생까지의 과정이 짧게는 2(백혈병의 경우)부터 위암, 폐암, 간암 같은 고형 암(딱딱한 덩어리 암)의 경우는 20~30년까지 소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암 발생 초기에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해당 암 세포들이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다른 장기로 퍼지면서 전이가 됩니다.

(34)

세계적으로 위 내시경으로 위함 조기 검진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위 내시경 검진 제도는 일본을 따랐던 것인데 일본조차도 현재 이 제도를 포기하려고 검토 중에 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해봤으나 이를 통해 생존율이 높아졌다는 근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 내시경 검사를 열심히 해서 위암을 발견해 치료하는 효과나, ‘아프기 시작할 때 병원에 갈 수만 있다면(즉 의료 이용 접근성이 일정하게 보장만 된다면)’ 병원을 찾아가 그때 치료하는 효과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위 내시경 검사는 종종 부작용까지 수반되는 위험한 검사합니다. 위 속에서 기구가 잘못 움직이다가 위벽에 상처를 내거나 심한 경우 구멍을 뚫게 되어(위장 천공) 결국은 배를 째고 수술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위 내시경 검사 도중에 조직 검사 등을 많이 하는데, 조직을 떼어낸 후 지혈이 잘 안 되어서 계속되는 출혈로 2차 처치를 받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이런 합병증 리스크까지 계산하면, 정책적으로 이러한 제도를 고수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의 건강검진 항목이나 미국에서 나오는 자료들에는 건강검진으로서 위 내시경 검사는 하지 말라는 권고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위 내시경 검사는 합병증 리스크가 더 높을 수 있고 검진의 효과는 증명된 바 없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의 공식 보고서 내용입니다.

(65)

지금 기준치인 100Bq/kg을 넘은 일본 수산물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이 기준치 때문에 통과시키지 않은 일본산 수산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건 경부고속도로의 속도제한이 시속 1000km로 되어 있는 것과 같아요. 도저히 위반할 수 없는 기준이죠. 그래서 우리 국민들의 피폭량을 줄이는 데 정부의 기준치가 한 번도 제 역할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반만 년 역사에 한 번도 발견되어본 적이 없는 숫자를 기준치로 두고는 그 이하는 모두 안전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113)

그럼 왜 포장 인도 위에서 유독 방사선량이 높았던 걸까요? 사실 모니터링 포스트를 세울 때는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또 포스트가 넘어지지 않도록 바닥에 콘크리트와 철판도 깔지요. 이런 요소들이 방사선을 조금 차단해주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보도에 깔린 부드러운 타일입니다. 도로에는 눈이 와도 잘 녹도록, 또 걷는 사람들의 무릎에 충격이 덜 가도록 부드러운 타일을 까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통행인을 배려한 것이지요. 하지만 소재가 부드럽다는 건 빗물이 스며들기 쉽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보도블록에는 방사선이 많이 섞인 비가 스며들어 남아 있습니다. 수압이 높은 물 청소기로 씻어내도 다 씻기지 않아요. 그러니 저 보도에서 방사선을 줄이려면 블록을 다 철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철거한다 한들 그 철거한 보도블록을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습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저런 보도블록은 통학로처럼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 주변에 많이 채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161-162)

핵발전은 본질적으로 물질에 대한 끝없는 탐욕과 에너지 중독의 산물입니다. 인간성 파괴를 부추기는 악마의 발명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가장 비민주적인 속성을 지녔지요. 핵발전은 핵무기와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라서 공개적으로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관련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제대로 보도도 되지 않지요. 독점적이고 대규모로 집중적으로 반공동체, 반인권, 반생명적이라는 속성도 명백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핵발전은 자연의 질서를 근원적으로 교란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핵에너지란 본질적으로 인간 능력의 한계 밖에 있는 문제입니다. 비유하자면 핵에너지는 현대판 판도라의 상자이자, 기독교 관점으로 보자면 선악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주 달콤해 보이는 에너지원이지만 자손 수천 대에 이르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고 나아가 인류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188)

탈핵은 거저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논증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탈핵을 위한 시민 행동입니다.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도 이 일에 함께해야 합니다. 가깝게는 탈핵을 주장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일부터, 멀게는 탈핵 프로세스를 짜고 단계별로 국회를 압박하며, 탈핵을 위해 동아시아 시민들이 연대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실행에 옳기는 일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핵발전 기관차를 멈출 힘은 행동하는 국민만이 갖고 있습니다.

(246)

서울의 방사능이 왜 이렇게 도쿄보다 높은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환경운동가인 최병성 목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건축이나 도로 포장에 쓰이는 시멘트와 아스팔트에는 방사능이 섞인 산업 쓰레기와 철근들이 무차별로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저질 시멘트나 아스팔트도 문제겠지만,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을 지금 우리나라도 전국적으로 계속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저는 한동안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다니다가 포기했습니다. 방사능이 전국적으로 다 나오니 갖고 다니는 게 의미가 없더군요.

(257)

우리가 사람답게 살려면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위엄을 갖춰야 합니다. 품위 있게, 예의 바르게 남의 처지를 이해해야 사회가 성립됩니다 아무리 제도와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한 사람, 한사람에게서 출발합니다.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들에 비해 인간적으로 왜소한 것은 틀림없어요. 하지만 지금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은, 과거의 그 어떤 세대도 경험하지 못했던 정신력과 지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색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 재생 가능한 태양에너지와 식량 자급 시스템을 확보하고, 전쟁을 그만 두고, 평화 체제를 확립하고,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멈추고 생활수준을 낮추어 가난하고 소박한 상부상보의 생활에 만족을 느끼는 삶의 방식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인한 정신력과 탁월한 지혜가 필요한데, 지금같이 상상력이 결핍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것이 과연 가능할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289)

사실 친환경 식품이라도 먼 거리에서 온 제품이거나 소비 규모가 크다면 에너지의 관점에서 친환경적이기 어렵습니다. 또 유기농이라고 해도 화학비료를 쓰지 않았을 뿐, 에너지를 투입하는 가온 재배로 얻어낸 것일 수도 있어요. 즉 비닐하우스에서 전기나 석유 등으로 열을 투입해서 채소를 기른다면 재배 과정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환경적으로 건전하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그래서 일부 생활협동조합에서는 가온 재배를 하지 않도록 생산 농가와 따로 계약을 맺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계절과 관계없이 어떤 채소든 1년내내 소비하려 하면 저온 저장 시설을 가동해야 하니 또다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됩니다. 그러니 당장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이 깨끗하다고 해서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식품 소비에 있어 에너지 문제까지 확장해 고민할 때 본질적으로 친환경적인 내용을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까지 다다른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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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us_fugit 2018-05-21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미나에서 알게된 한 일본인 시만단체 회원분이 일본에서 측정되는 방사능 수치조차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측정소가 정확한 위치에 있지도 않거니와 측정기를 비닐로 덮어 씌우거나 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때도 한동안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동요를 걱정해서 였다지만 음.... 현 상황과 비교해봐도 참으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녹색평론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후쿠시마 건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습니다.

bookholic 2018-05-22 00:07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방사능과 핵발전소는 정말 지구의 암덩어리로 미래의 걱정거리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런저런 피해를 주고 있지만, 인류의 후세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세대들이 지금의 세대들에게 많은 원망을 할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탈핵을 해야 할 텐데요...

Tempus_fugit 2018-05-22 00:53   좋아요 1 | URL
정말 정말 옳으신 말씀입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미래 세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게 그럴 권리도 없습니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비용도 천문학적이지만 더 나아가 현재 우리들, 미래세대들의 불안으로 인한 비용을 경제적으로 환산한 것을 더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와닿지는 않겠지만 탈핵 쪽으로 더 여론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bookholic님과 같은 바램입니다.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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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출간되어 아빠가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라 있던 <영초언니>를 이번에 읽었단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소설인줄 알았어. 그런데, 소설이 아니고 지은이 서명숙과 그와 함께 젊음을 불태웠던 언니들과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꼭 한번 읽고 싶었어. 아빠와는 약 20년 차이를 두고 대학 생활을 했던 그들그들의 젊음은 어땠는지 알고 싶었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세 여자>라는 소설이 떠올랐단다. 시대는 달리 했지만, <세 여자>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영초언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공통점이 있었지. 불의에 참지 않았고, 부조리한 사회를 손수 고치려 했고, 무식한 권력에 저항했던 여인들행동하는 지식인들

아빠가 책을 읽을 때 북커버를 두르고 읽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북커버를 벗겼는데, 책 뒷면에 유명 인사들의 추천사가 실려 있었단다. 그들 중에는 아빠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조정래, 손석희, 유시민도 있었어.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이 추천한 책이었다니.. 그들의 추천사 중에서 유시민의 추천사를 발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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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그린 것은옛사랑이 아니라첫사랑이다. 세상에 대한 첫사랑으로 불타올랐던 청춘, 같은 대상을 두고 첫사랑에 빠졌던 여자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설명할 길 없는 불운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영초언니를 대신해, 대책 없이 씩씩했고 지금도 여전히 어여쁜 그 첫사랑의 떨림과 짜릿함을 전해준 서명숙이 내게 물었다. 짧고, 부질없으며,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우리네 인생에서 이것 말고 다른 무엇이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대답한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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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선생님의 추천사도 소개해주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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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겨울의 매서운 밤추위를 무릅쓰며 1700만 개의 촛불을 밝혀 끝내 민주시민 혁명을 이룩해냈다. 그 줄기찬 협동과 용기와 인내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 뿌리는 바로 유신독재 투쟁으로 이어져 있다. 우리가 더 온전한민주세상을 갈망한다면 필히 이 <영초언니>를 읽어야 한다. 영초언니의 희생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역사에 대해 책임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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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지은이 서명숙은 제주 서귀포 출신으로 올레길 개척자로도 유명한 사람이란다. 기자 출신이라고 해서 취재한 글을 모은 책인 줄 알았는데,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적은 글이었어. 서귀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제주도 안에서만 자랐어.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으니, 바깥세상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왜곡된 텔레비전 방송뿐이었지. 그렇다 보니 서명숙은 어린 시절 박정희를 존경했다는구나.

그러다가 1976년 고려대에 입학하게 되고, 고대 학보사에서 기자생활을 했대. 그러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 알고 지냈는지 깨닫게 되었대. 점점 세상을 볼 수 있는 진짜 눈을 갖게 된 거야. 그런데, 그 세상이라는 것이 그동안 생각했던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온갖 불의가 판을 치고, 부조리한 세상이었어. 그들의 아름다운 청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상.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들은 총칼 앞에 조용히 지낼 수 밖에 없었단다. 몇 해 전부터 연이어 내려진 긴급조치 때문에 대학에는 사복경찰들이 잠복해 있었고, 대학가에서 시위가 사라진 것도 한참 전이었지. 그렇게 1970년대 대학가는 암흑의 도시와 같았단다. 그러고 보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아빠는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앞서 1970년대,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선배님들의 저항에 감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서명숙은 학보사 선후배 모임에서 졸업생인 천영초를 알게 되었어. 말로만 들었던 전설적인 선배, 천영초. 천영초의 권유에 따라 같이 자취를 하게 되었단다. 천영초는 72학번으로 고대를 졸업하고 한신대에서 대학원으로 다니고 있었어. 천영초를 통해서 고려대 여학생 선후배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가라열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대. 그 모임을 통해 같이 공부도 하고, 여권 운동도 했었대.

2.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긴급조치로 인해 시위가 없었다고 했잖아. 대학생들이 암암리에 약속을 해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습적인 시위를 했대. 천영초도 이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나와. 서명숙은 같은 학보사 동기 엄주웅의 제안으로 야학활동을 하기도 했어. 구로동에 공장들이 많아서 그곳에서 야학교사로 일했고, 그러면서 다른 대학들의 학생들과 교류도 많이 했대. 그때 반가운 이름도 등장을 했단다. 서울대 78학번 서울대 새내기 유시민유시민의 등장은 이 책의 큰 줄기에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이 까메오처럼 등장해서 반가워서 이야기한 것이란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습 시위 이후 경찰의 단속은 더욱 심해졌고, 대학가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시 시위가 벌어졌어. 학생들의 용기들이 커져갔어. 아니, 시대가 점점 절박한 상황이 되어갔던 거야. 고려대에서도 각종 학생회에서 시위를 준비를 했는데, 가라열 모임에서미모를 담당했던 생물학과 혜자언니의 시위 주동은 뜻밖이었다고 하는구나. 당시 주위 시동을 하게 되면, 감옥에 가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감옥에 가면 모진 고문을 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럼에도 시위의 주동을 하겠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었어. 얌전하고 조용하던 혜자언니가 그걸 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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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그도 그럴 것이 이날 언니가 연단에 선 장면은 그동안 우리 모두의 잠재의식에 깔려 있던 고정관념, 운동권의 기존 프레임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었다. 입학하고 난 뒤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들은 이야기는 데모할 때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돌을 날라다주거나 마실 물을 떠다주거나 피를 닦아주었다는 등의 미담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에서 치마폭으로 돌을 나른 조선시대 여인들의 현대판이라고나 할까. 그런 남성 중심적인 대학에서 이념서클 출신도 아니고, 운동권에서도 사실상 무명이나 다름없는 여학생이 데모를 주동하다니, 일대 사건이었다. 그동안 소문으로 무성하게 나돌던데모 주동자 예상 명단에 혜자언니는 올라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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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언니는 예상했듯이 감옥에 갔고, 예상했듯 모진 고문에 시달려야 했어. 이후 혜자언니는 줄곧 노동운동 일선에 있었고, 나중에 결혼도 노동운동 때 만난 운동가와 했으며, 최근까지도 활동을 하고 있다는구나.

티격태격하던 학보사 동기 엄주웅이 어느날 늦은밤 찾아와 사랑 고백을 했어. 그리고 바로 다음날 시위를 주동하고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갔다고 하는구나. 서명숙 또한 감옥에 다녀왔어. 조금이라도 학생운동을 했다가는 긴급조치에 걸려서 감옥 구경을 아니할 수 없던 시절이었지. 교생실습 때문에 고향에 내려왔다가 교생실습은 나가보지도 못하고, 다시 서울로 끌려와 감옥에 갔단다. 당시는 그런 시대였어. 그리고 그런 시대는 한 발의 총알이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할 때까지 계속되었단다.

3.

시대가 바뀌어 1980년대가 되었지만, 불운하게도 봄은 오지 않았어. 여전히 군사독재시대.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 하지만 그 소식은 콱 막혀서 전혀 알지 못했어.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려는 운동을 했어. 영초언니는 늘 그랬어.  언제나 그런 사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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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그 좁은 방에서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등사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광주를 찾아가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시기에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온몸으로 결기를 내뿜는 그녀 앞에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경험칙상 많은 걸 안다는 건 그만큼 위험해지는 지름길이었다. 이렇게 만든 유인물을 누구를 시켜서 어디에 배포할 것인지 나는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언니도 내게 같이하기를 권하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한 차례 구속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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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밝히려고만 했을 뿐인데, 그런 일들로 영초언니는 감옥을 들락날락해야만 했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 이야기란다. 영초언니는 같이 운동을 하던 정문화라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으면서 영초언니도 젊은 날의 열정이 점점 사그러들었다고 하는구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나봐. 그리고 정문화와 헤어지고, 아이와 둘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하는구나. 아이가 한국에서 왕따를 당해서 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대. 홀로 남은 정문화는 젊은 나이에 큰병을 얻어 그만 세상을 일찍 뜨고 말았대. 다른 운동권들이 정치계에 뛰어들어 이름을 날리던 것과 상반되게, 그의 죽음은 너무 허망했단다.

지은이 서명숙은 가끔 영초언니와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캐나다에 정착을 하고 나서 영초언니가드디어행복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 비록 완벽한 행복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얻은 행복이었지.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 캐나다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뇌를 크게 다쳐서 시력을 잃고,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고 하는구나. 사고소식을 듣고 서명숙은 바로 캐나다로 날아가서 영초언니를 만났지만, 아무 기억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영초언니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 그저 눈물만….

영초언니는 나중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요양을 하고 있대. 기억은 작은 파편들만 기억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신연령도 서너 살 정도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던 영혼은 타지의 교통사고와 함께 육신 밖으로 튕겨 나간 다음에 찾아오지 못했던 거야.

그리고 모두에게 잊혀진 사람이 되었어. 서명숙은 그런 영초언니의 기억을 이 책을 통해 기록한 것이야. 그러면서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어. ,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하지만 우리고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자신의 젊음을 마쳤던 사람을 알게 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

바람이 있다면, 기적이 일어나서, 영초언니의 영혼이 잃어버린 육신을 찾아 돌아와, 모든 기억을 되찾아 민주주의 완성체가 되어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에 보고 환하게 웃으셨으면 좋겠구나.


(43)
더 큰 자괴감은 외부검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하면서 찾아들었다. 교수님이나 간사 선배에게 한소리 안 듣기 위해, 막판에 대형사고를 치지 않으려고, 우리는 스스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누가 기획안을 내놓으면 "그거 되겠어? 나갈 수 있겠어?"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갔다. 물정 모르고 용감한 제안을 내놓는 동료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안팎의 압력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부자유를 스스로 선택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표현도 점점 에둘러서, 비판인지 아닌지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문장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검열의 눈을 피해가고 비껴갈 수 있었기에.

(49)
"담배 없이 대체 무슨 낙으로 사니? 이 답답한 세상에 담배라도 없으면 정말 숨막혀 죽을 것 같 같은…… 너도 한번 피워볼래?"
‘담배 없이 무슨 낙으로’라는 말이 내 가슴에 탁 꽂혔다. 그즈음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대학과 학보사를 둘러싼 숨막히는 분위기, 신문사를 떠난 동기, 야학과 신문사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

(117)
무고한 양민들이 좌익으로 몰려서 죽어간 4.3의 영향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도로 친정부적인 정치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억울하게 몰리지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였으리라. 시장통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면서 바쁜 일상에 휘둘리던 우리 부모의 정치의식도 제주도민의 평균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평균 이상의 ‘우파 보수층’이었다. 이북 출신인 아버지는 인민군으로 강제 징용당해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혔지만 김일성 치하의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남한을 선택한 이른바 ‘반공청년단’ 소속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당시 같은 문중이던 현씨 집안이 배출한 현오봉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던, 시장통의 공화당 조직책이었다.

(237)
그 좁은 방에서 영초언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등사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광주를 찾아가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시기에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온몸으로 결기를 내뿜는 그녀 앞에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경험칙상 많은 걸 안다는 건 그만큼 위험해지는 지름길이었다. 이렇게 만든 유인물을 누구를 시켜서 어디에 배포할 것인지 나는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언니도 내게 같이하기를 권하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한 차례 구속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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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당시의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사전 속에서나 존재할 뿐, 실재하지 않는 그런 단어로 여겨졌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정치부 기자들의 최대 전쟁터, 시사지의 판도를 좌우하는 대목인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사지 편집장인 내게 ‘행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총 맞고 전사하기 딱 좋은 전쟁터에서 이 악물고 용케 버텨내고 있었기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걸어가는 느낌이었고, 내 영혼의 우물물은 바싹 말라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자각에서 진저리치는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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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뭐라 형용하기 힘든 비참한 심경이 들더라고. 우리가 그토록 목숨 걸고 맞서 싸웠던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그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다니. 우리가 젊은 날 한 그 모든 일들이 역사로부터, 국민들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받는 느낌이랄까. 박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나는 텔레비전 뉴스만 봐도 입는 것 같아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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