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그는 로세르의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지갑에 넣어 둔 유일한 사진이었다. 로세르가 피아노 옆에 서 있었다. 어쩌면 연주회 중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짙은 색 소박한 블라우스에 평소보다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소매에 목에는 레이스가 달린 옷은 몸매를 감추는 촌스러운 교복 같았다. 그 흑백사진에서 로세르는 아마득하고 흐릿했다. 멋도 없고, 나이도 불분명하고, 무표정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과 검은 머리카락, 조각처럼 곧은 코, 표정이 담긴 눈썹, 돌출된 귀, 기다란 손가락, 그녀에게서 나는 비누 향. 느닷없이 그를 덮쳐 고통스럽게도 하고 잠 못 이루게도 하는 섬세한 표정은 애써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이런 표정을 떠올리다 보면 깜빡 방심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180-181)

그들은 칠레가 몹시 가난한 나라로 광물, 그중에서도 특히 구리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지만, 정착해서 성공할 수 있는 비옥한 땅도 많고, 어업에 종사할 수 있는 수천 킬로미터의 해안도 있고, 무수히 많은 숲과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달과 같은 북쪽 황무지부터 남쪽의 빙하까지 칠레의 자연은 경이로웠다. 칠레 사람들은 한순간에 모든 걸 무너뜨려 사망자와 이재민이 속출하는 지진 같은 자연재해와 가난에 길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망명자들에게는 자기네가 살아왔던 과거와 프랑코 권력하에 있는 스페인의 미래에 비하면 칠레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칠레 사람들은 그들이 많은 것을 받을 테니 보답할 준비나 하라고 했다. 칠레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가난하지만 인색하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고 너그러웠다. 칠레 사람들은 늘 두 팔 벌려 자기네 집을 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나를 위해, 내일은 너를 위해.” 그것이 슬로건이었다. 그리고 총각들에게는 칠레 여자에게 한번 찍히면 도망칠 방법이 없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칠레 여자들은 매력적이고 강하고 권위적이라 죽음의 조합이었다. 그 모든 말이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판타지처럼 들렸다.

(316)

쿠바 혁명에 영감을 받은 지지자 몇몇은 진정한 혁명을 이뤄 평화롭게 미국 제국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무기를 들고 싸워야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옌데에게 혁명은 견고한 칠레 민주주의에 넉넉히 들어맞았고, 그는 칠레의 헌법을 존중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한 손에 자기네 운명을 움켜쥘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고발하고 설명하고 제안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마지막까지 믿었다. 또한 그는 적들의 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공인일 때 아옌데는 약간 우쭐해하며 근엄하게 행동해 적들에게 건방지다는 트집도 잡혔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수수하고 농담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지켰다. 그로서는 배신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마지막에 가서는 그 자신을 잃게 되었다.

(462-463)

빅토르는 임종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의 로세르의 말을 듣는 것 같았다. 그때 그녀는 우리 인간은 모여 사는 생명체이고, 우리는 고독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기 위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혼자 살면 안 된다며, 심지어 그를 위해 애인까지 정해 주며 집요하게 굴었다. 빅토르는 느닷없이 매체를 정감 있게 떠올렸다. 그에게 고양이를 선물하고 텃밭의 토마토와 허브를 가져다주는, 마음이 열린 옆집 사람, 뚱뚱한 요정들을 조각하는 꽤 자그마한 여자였다. 빅토르는 딸이 떠나자마자 오징어 먹물 파에야와 크레마 카탈라나 남은 것을 메체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 그것을 새로운 항해이며, 그렇게 그는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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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중국이 백제라는 나라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백제가 대륙에 영토를 개척한 서진 이후부터였다. 그 전까지 중국에선 한반도 중부 이남을 삼한의 땅으로 인식했고, 때문에 백제가 대륙에 진출하기 전에는 삼한의 맹주인 마한과 마한의 중심국인 목지국에 의해 그 땅이 다스려지고 있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백제가 처음 대륙에 진출할 때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백제를 마한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송서> <남제서>, <위서>, <주서>에 백제 편은 있으나 신라 편은 없는 것도 당시에 중국은 신라를 진한의 한 소국으로 인식한 반면, 백제는 대륙에 진출한 비교적 큰 나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남사>에서는 신라의 위치를 백제의 동남쪽 5천여 리에 있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백제의 대륙 영토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다. 5천 리라는 개념은 백제를 대륙에 설정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수치인 까닭이다.


(167)

아신왕과 광개토왕은 둘 다 391년에 정권을 장악하고 392년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광개토왕은 18, 아신왕은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모두 혈기 왕성한 때였다. 이들은 젊은 혈기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패자를 자처했고, 그것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선제 공격을 가한 쪽은 광개토왕이었다. 고국원왕의 전사 이후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은 줄기차게 복수전을 꾀하였으나 번번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젊고 용맹한 광개토왕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광개토왕은 백제가 왕위 계승 문제로 내분을 겪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륙백제의 북쪽 요충지인 관미성과 주변 10개 성을 공략하여 얻음으로써 먼저 승기를 잡았던 것이다.


(256-257)

하지만 일본 사학계의 주장처럼 임마가 일본에 의해 지배된 것은 아니었다. 임나엔 백제, 가야, 왜의 군대가 모두 주둔하고 있었고, 백제와 왜는 대사관 격인 객관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임나의 땅 주인은 가야이다. 가야는 6개의 분국으로 갈라져 있는 상태였고, 백제와 왜에 비해 국력이 쇠약했다. 그래서 가야는 왜와 백제 양국과 동맹을 맺고, 임나 지역을 자유무역 도시로 내놓고 공동 관리를 한 것이다. 덕분에 임나는 당시 최대의 국제무역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왜와 백제는 물론이고 고구려와 중국의 제국들도 임나에서 거래되는 물품을 사갔을 정도였다. 고구려가 섭라에서 사서 중국에 팔던 옥도 역시 임나에서 거래되던 것이었다. 현재 한반도 내에서 옥 생산지가 어디였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옥은 아마도 임나 지역에서 대거 생산되었던 듯하다. 임나는 그 옥을 기반으로 경제권을 형성하고, 국제적인 무역 도시로 성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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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망막에 도달한 빛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각 세포층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키고 뇌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신호를 생성한다. 망막의 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뇌에 전달되는 시각 정보가 결정된다. 가령 원추세포가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에 각각 반응하는 세 가지 세포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도 우리가 무수하게 많은 색채를 인식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세 가지 세포들이 얼마든지 다양하게 조합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색채를 부르고 표현하는 언어에 한계가 있을 뿐 색채는 무한하게 존재한다. 눈은 단순히 빛의 신호를 수용하고 전달하는 기계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세포의 유기적인 얽힘과 신호의 재배치를 통해서 다양한 기표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37)

특히 사람마다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상대적 민감도가 다른 것도 색채의 차이를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가령 원추세포의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어떤 이미지를 볼 때 색의 차이에 더 주목하게 되고, 간상세포의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빛의 양이나 조명 효과와 같은 정보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같은 대상을 보면서 서로 다른 색이라고 지각하게 된다.


(42)

뉴턴은 일곱 가지 무지개색을 원행 다이어그램에 배열한 색상환을 만들면서 세 가지 원색인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맞은편에 보완이 되는 색을 배치했다. 빨간색의 맞은편에 초록색을 배치했고, 노란색의 맞은편에 보라색을 배치했다. 이는 대조되는 색의 상호보완이 시각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뉴턴의 색상환은 1708년 프랑스 화가 클로드 부테에 의해 확장되어 삽화로 그려졌는데, 이것이 오늘날 색상환의 시초가 되었다.


(65-66)

점묘법은 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고흐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프랑스 아를에서의 짧은 시간을 정리하고 파리 근교를 돌아오면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그려냈다. 연이은 우울한 사건들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지녔던 그의 붓질은 점묘법에 기반을 두면서도 훨씬 더 크고 불규칙한 점에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을 더해 그 효과가 더욱 강화되었다. 불안감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은 강렬한 색의 대비도로 곧잘 드러났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대비는 꿈틀거리는 듯한 붓질로 인해 더욱 생동감을 더하고, 태양의 강렬한 빛에 지배받은 주변 경환의 시간에 따른 변화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되고 있다.


(66-68)

뉴턴에 본다는 것이 하나의 자연현상이라면, 괴테에게는, 괴테에게는 인간의 심리적 작용이 더해진 인식 활동이었다. 고흐와 같은 미술가들은 그 영역을 더 확장해 우주와 인간 내면의 탐구를 더하고 재해석해 다시 우리 눈앞에 가져다주었다. 광학이 밝혀낸 시각 작용과 색채 원리에 화가들의 집요하리만큼 열정적인 탐구심이 더해져 탄생한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본다는 것의 의미는 분명 빛에서 출발하지만 빛이 닿지 못하는 인간 심연의 어떤 곳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30-131)

매타물질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제3의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빛의 파장보다 훨씬 저 작은 크기의 금속이나 유전체 등과 같은 물질을 복합적으로 섞여 설계되었으며, 메타원자는 새로운 물질 단위 요소의 주기적인 배열로 이루어졌다. 메타원자는 새로운 광학적 값을 가지는 새로운 개념의 인공원자이다. 1968년 러시아 물리학자 빅토르 베셀라고가 메타물질의 가능성을 처음 제시했으며, 영국 물리학자 존 펜드리 경이 투명망토처럼 빛을 완벽하게 투과시킬 수 있는 음의 굴절률 원리를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90-191)

폴로늄(Po)과 라듐(Ra)을 발견하여 방사선에 관한 연구를 더욱 발전시킨 공로로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과학에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연구실 과학자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마치 동화처럼 자신에게 감명을 주는 자연현상 앞에 선 어린아이기도 하다.” 마리 퀴리를 비롯해 모든 과학자는 눈으로부터 출발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궁극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변의 법칙과 진리를 밣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마리 퀴리는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6)

과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원자를 이해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하는 것을 반복했다. 빛을 탐구하고 욕망하며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얻고 보폭을 맞춰왔던 미술가들 역시 더 낮은 차원의 단순한 세계로 들어가 자연의 본질에 다가가고 그것을 화폭에 옮겼다. 과학자들의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과 미술가들의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다시 한 번 만나 자연현상 너머의 본질에 관한 탐구로 수렴되었다.


(226)

곤살베스는 양자 중첩을 시각화하기 위해 인지적 착시라는 도구를 활용했다. 왼쪽에는 긴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가 바다 위 고정된 다리 위에서 자동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희미한 자동차 불빛과 덩그러니 뜬 달이 외로운 여행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런데 길을 따라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어느 순간 수평선이 시작된다. 오래된 돛단배들은 수평선 너머에 있을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탐험을 암시한다.


(228)

양자역학의 등장은 기존의 고전물리학으로 대변되는 과학사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었는데, 이는 예술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결정론과 인과율의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에겐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양자역학의 세계관을 받아들여 새로운 예술적 감수성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곤 자연과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원적으로 바꿔놓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양자역학의 세계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양자역학이 과학과 예술을 통해 동시에 던져준 자연과 인생에 대한 무수한 질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지금도 온 우주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244)

최근에는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극도의 검정이 등장하기도 했다. ‘반타블랙(vantablack’)이라는 물질인데 빛을 99.965퍼센트 흡수해 사실상 우리가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완벽한 검정을 구현한다. 이 극도의 검정은 빛을 모두 흡수해버려 산란과 반사가 없으므로 물질의 입체감을 완벽하게 없애버리고 2차원의 평면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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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인간은 원래 물에서 살았대, 아주 먼 옛날에는 말이야. 쇄골은 아가미가 있던 흔적이고 갈비뼈는 지느러미가 떨어지고 생긴 무덤이야. 그런데 인간은 결국 어떤 이유로 퇴출당한 거야. 육지는 해상의 유배지였던 셈이지. 그래서 물에 사는 것들은 육지에서 걸을 수 없지만 육지에 사는 것들은 유전자가 가진 태초의 기억으로 수영을 할 수 있어. 물로 몸을 씻어내는 것도 육지의 죄를 닦아내는 행위에서 비롯된 거야.


(251)

인간의 치아는 음식을 씹어 삼키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내장은 피부보다 연약해 씹히지 못한 덩어리를 소화시킬 능력이 없었으므로, 어쩌면 인간의 창조주가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걸 다 집어넣지 못하도록 해놓은 장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씹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왜 치아를 만들었을까. 눈을 보호할 필요가 없는 진에게 속눈썹과 눈꺼풀은 왜 필요한가. 손등의 미세한 털과 귓바퀴의 굴곡, 복사뼈까지도. 그렇다면 이 모든 걸 같은데 인간은 쉽게 죽고 자신은 쉽게 죽지 않는 이유가 무석인가. 그 모든 질문의 끝에 진은 한 마디 더 덧붙이고 싶었다. ‘자신은 왜 이 질문을 하고 있는가.’


(259)

기존의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깨는 것이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이었지. 이성적 사고에는 형태가 분명히 존재해. 바보 같이 우리는 그걸 몇 천 년 동안, 인류가 생각난 이후로 계속 동식물을 포함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이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는 차이점은 형태였지. 두 다리, 두 팔, 그 둘을 연결시키는 허리. 발가락의 관절과 심장과 폐를 감싸는 갈비뼈 하나하나 전부가 이성의 실체였어. 모든 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인간은 은하야. 구성된 물질은 서로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결국 다 하나의 항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거지. 인간적인 사고 능력을 가지려면 인간처럼 생겨야 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전부. 인간만의 특권이라 여긴 직립보행이 실마리였어. 서로 다른 개체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을 옆을 두고 그렇게 긴 시간을 헤맨 거야. 인간은 휴론의 생각이 데이터를 통한 판단이라 여겼고 이름과 개성이 성격을 종합해 낸다고 믿고 있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인간과 똑 같은 형태를 가진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 개체에게는 자유로운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믿지. 나는 인간들에게 이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아.”


(329)

사랑은 이제 끊임없이 생명에게 기생해 수 세기를 살아남은 질긴 바이러스다.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버려지지 않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생명의 생각을 조종하는 것이다. 뇌를 커다랗게 감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을 만들어 때에 맞춰 심장을 뛰게 하고 체온을 높이고 시각을 둔화시켜 현실의 객관성을 잃게 만든다. 상대방이 없을 때에는 기관지의 크기를 줄여 답답함을 느끼게 하고 잠들지 못하게 생각을 깨우며 상대방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최악의 망상을 반복해 함께 있음에도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419)

개인의 비극은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 섞이거나 나눌 수 없다. 인간은 개인이 하나의 행성이므로, 각자의 비극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결국 그 파괴의 에너지가 은하수 전체에 퍼질 테니. 연쇄적 비극은 언젠가 모든 것을 태초의 상태로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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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꿈꾸는 것을 이루려 한다면 억압체제에 저항하게 돼요. 왜냐하면 체제에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사랑과 자유는 항상 같이 가는 거예요. 인문학의 정신이 사랑과 자유가 아니면 뭐겠어요. 그 두 가지 내용을 가진 것이 인문주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예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33)

노예사회, 농노사회, 노동자사회, 본질적으로 진보한 것이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이들 다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지 못해요. 지금 노동자들이 아무리 농노보다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생산이 아니라 특정 소수, 부르주아들이 원하는 생산을 하고 있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을 주인이라고 하고, 남이 원하는 것을 사람들을 노예라고 불러요. 고전적 정의예요. 질적으로 보면 아직도 억압사회인 거죠. ‘소비사회라는 논리로 자본주의가 발달해야 되기 때문에 노동계급한테 소비자의 위상을 주는 거예요. 월급을 주고 물건 만들고, 또 그 돈으로 소비하고, 이 과정이 계속 돌면서 계속 월급쟁이 생활을 하지만, 과거 농노보다는 경제 사정이 좋죠.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예요.


(52)

인문(人文)이라는 말이 영어로 휴머니티(humanity)이기도 하지만, 한자로 사람 인() 자에 무늬, 결 문()자잖아요. 천문(天文)은 하늘의 무늬를 뜻하고, 지문(地文)은 땅의 무늬잖아요. ‘터무니없다는 말이 터의 무늬가 없다는 뜻인데, 풍수지리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인문은 사람의 문맥을 읽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배운다는 것은 무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에요. 그 안에 콘텍스트가 많이 들어 있는 거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표현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콘텍스트가 많이 들어 있어서 오해 없이 설명을 해서예요. 예를 들어 영화를 보고 나서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별점으로 점수를 줘요. 그런데 평론가는 왜 좋았는지를 길게 쓰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평론가의 글을 읽고,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할 수 있죠. 콘텍스트가 불분명해서 생기는 반응이에요. 한마디로 글을 잘못 쓴 거예요.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평론가의 얘기가 더 쉬워요. ‘너무 좋았어이렇게만 말하면 뭐가 좋았는지 모르잖아요.


(65)

젊은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운 것은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하고 얘기할 때 빵빵 터지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선순위에서 밀어놓은 것은 손주는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니까요. (웃음) 이상한 상상력을 가진, 새로움을 접하니까요. 젊다는 것은 새롭고 낯설다는 거예요. 어린아이들끼리는 서로 차별도 하지 않아요. 어린아이가 피부색이 다르다고 인종차별을 할까요? 그러지 않잖아요. 차별은 위계질서가 굳어지고 우선순위가 매겨진 기존 사회에서 물려받은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그런 거죠. 새롭고 낯설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현실은 굉장히 슬픈 일인 것 같아요.


(88)

자본주의는 공동체에서 쪼개진 개개인들이 생계를 걸고 참여하는 게임 같은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고요. 누군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필요를 만들 수 있는지를 분석해서 신제품을 만드는 것이 자본의 논리니까요. 그래서 빅데이터가 중요한 거예요. 노동자는 그 정보를 계속 빼앗기고 있고, 자본은 계속 그 정보를 축적하고 있단 말이에요. 플랫폼 기업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하는 사회가 됐어요. 내가 모르는 내 습관까지 알고 있어요. 내 나이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취미는 뭐고 관심사는 뭔지, 내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방문했던 사이트에서 무엇을 검색하고 구매했는지…… 내 흔적들이 당신이 좋아할 만한 책과 영화, 상품으로 광고 창에 뜨잖아요. 내가 남긴 소비의 흔적들이 플랫폼 기업의 자본이 되는 거죠. 소비자, 곧 노동계급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도록 강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 팽창 전략이에요.


(124)

자본주의사회는 나이 든 사람이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배울 게 없는 존재로 만들어놨어요. 기계 조작도 서툴고, 데이터 분석 같은 일들은 젊은 직원이 대신 해줘야 돼요. 권력이 있기 때문에 해주는 거예요. 사실 기계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가장 잘 다뤄요. 할머니 할아버지 스마트폰은 손주들이 다 세팅을 해주잖아요. 이 순간 손주들이 우외에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열등한 위치에 있게 돼요.


(152)

간혹 가다가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살지도 않는 집을 하나 더 가지고 있으면서 임대료를 얻어서 생활을 한다고 해요. 그러고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노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수익이 생긴다면, 그건 다른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한 거예요. 임대료의 경우는 물론 주거가 불안한 사람들로부터 착취한 거죠. 작은 자본가고 작은 지주인 거예요. 그래서 속상하고 이런 사람들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아요. 큰 집에서 사는 건 상관이 없지만, 대신 집으로 임대료를 받으면 안 돼요. 그런데요, 집이 없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간혹 월세 등을 받아서 노후를 유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죠. 이 경우는 조금 난감해요. 가족공동체가 와해되어서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니까요. 이런 서글픈 경우가 아니라면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자 등으로 이윤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돼요. 자본가처럼 지주처럼 살면서 어떻게 노동계급을 아낀다고 떠들 수 있나요?


(178)

철학적으로 말해서 좋은 교육은 모순적인 표현이에요. 교육은 나쁜 거예요. 기성세대든 억압세대든 자신의 말을 잘 듣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니까요. 더군다나 교육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의미라면, 교육은 인문주의자가 목숨을 걸고 없애야 할 대상일 거예요. 교육이라는 말을 없애고 차라리 성장이란 말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정확히는 성장을 돕는 거죠.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책과 교재는 다른 거예요. 교재 즉 교과서는 아이들을 졸게 만들죠. 반면 그 교과서 밑에 몰래 숨겨놓고 읽는 책은 그렇지 않잖아요. 선생님이나 부모가 읽으라는 교재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은 이렇게 차이가 있어요. 앞에서 저는 자신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이 주인이고, 반대로 타인의 권위에 눌려 타인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말했어요. 결국 교재는 노예의 문자고, 책은 주인의 문자였던 거예요.


(179)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찾아주는 일, 아니 정확히 말해서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살아낼 수 있는 길에 들어선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리고 노력 없이 주인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만, 그걸로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폭력 수단과 정치 수단을 독점했기에 국가는, 그리고 생산수간을 독점한 채 국가의 비호를 받기에 자본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찾은 아이들은 이미 물을 만난 물고기와 같아요. 그러니 국가나 자본이 땅에서 살기를 요구해도, 그들은 가급적 물을 떠나지 않으려 할 거예요. 한편으로는 자신을 노예로 만들려는 경향과 맞서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두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갈 거예요. 여기에 바로 인류의 희망과 미래가 있죠.


(205)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하는 거예요.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는 온전히 주어졌을 때, 그때 나를 좋아해줘야 기쁘고 희열이 있죠. 스토킹은 그 사람의 자유를 제거한 상태에서 나만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자유를 제거하는 방법은 그 사람을 죽이는 데서 정점에 이르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는 타인의 쾌락과 즐거움은 중요하지 않고, 나의 쾌락과 즐거움만 있는 거죠. 개인주의적 자아는 자기 안에 갇혀서 쾌와 불쾌만을 따진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한다는 말과 같아요.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한 말이죠.


(228)

21세기 초반 한국 사회는 이런 모습이에요. ‘강남청와대, ‘여의도를 장악하려는 강남좌파와 강남우파의 각축장이죠.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강남우파의 무기가 기만적인 자유개념에 집중되어 있다면, 강남좌파는 노동계급에 대한 애정,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표방해요.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유권자들은 강남좌파에 표를 던지기 쉬워요. 강남좌파의 애정 공세에 넘어간 셈이죠. 그래서 강남좌파는 특히나 사회적 약자의 문제 민감해요. 그들은 대중이 감정이입을 하며 분노하는 이슈에 대해서는 감정적이라고 할만큼 개입을 해요. 그래야 여론의 지지를 받고 새로운 선거에서 승리를 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강남좌파는 여러모로 좋은 지주를 닮았어요. 좋은 지주는 소작농의 집을 찾아가 그를 위로하는 말을 하고 쌀을 두고 가지만, 결코 자신이 독점한 땅을 주지는 않으니까요.


(256)

세상이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희망도 버려야 해요. 또 세상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비관도 버려야 하고요. 자본과 국가라는 구조적 악은 여전히 강력하게 거대한 요새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요. 이 요새의 문은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죠. 그렇지만,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문을 밀어붙어야 해요. 열리지 않더라도 그 문 앞에서 외쳐야 돼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저랑 함께 이 문을 밀어 열어젖힐 분 없나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267)

<조선혁명선언>에서 신채호는 구시대의 혁명을 주정해요.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는데, “구시대의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상전의 교체가 아니라 상전이 없어지는 것, 개인의 자유와 정의로운 공동체를 스스로 주인이 돼서 만드는 것이 혁명이라는 얘기예요. 신채호가 간디보다 수천 배 위대한 이유죠. 상전의 자리에 일본인이 들어오든, 아니면 한국인이 들어오든 마찬가지예요. 상전의 자리에 어떤 권력자가 들어오든 마찬가지죠. 상전의 자리, 형식, 혹은 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 안 돼요. 결국 신채호의 시선에서 촛불집회는 혁명일 수 없어요. 여전히 수많은 상전의 형식이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채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상전인 회사의 CEO가 있고, 자본가가 있고, 국가는 명령을 내리고 있고, 입법으로 그것을 강제하고 있잖아요.


(301)

거대 문명이 탄생한 기원전 3000년 이래로 지금까지 인류는 복종의 시대에서 5000~6000년 정도를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분업 체제에 진입을 해서 이 사회 시스템을 벗어나서는 먹고살 수 없을 정도로 분업의 강도사 세졌어요. 자동차 바퀴만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생태운동을 할 수 있나요? 자동차가 존재해야 자기가 사는데, 산업화된 시스템에서 하나의 나사가 되지 않으면 생계의 위험에 빠지는 사회인 거예요. 타율적 복종에서 자발적 복종으로 바뀐 것뿐인데, 체제는 타율자율만 강조해서 자본주의사회가 왕조시대보다 더 발달했다고 얘기를 해요. 그런데 내가 볼 때는 복종에 방점을 찍어야 돼요. 노동자를 정확하게 출퇴근 노예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면 노예는 이렇게 정의 내리면 되죠. ‘출퇴근이 불가능한 노동자.’


(329-330)

저도 바람을 좋아해요. 제가 왜 산에 가냐면 산에서 느끼는 바람은 다르거든요. 더 정확히 말하면, 산에서는 수많은 바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산에 오르면서 몸이 뜨거워지고 땀도 나니까, 작은 바람도 쉽게 느껴지죠. 그래서 계곡으로 올라가지 않고 능선을 타요. 순간순간 바람이 불고, 비바람이 치고 이런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산등성이에서 갑자기 구름 생기는 것 못 봤죠? 비 오는 날 산에 가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습한 날은 바람이 조금만 불면 등성이에 구름이 생겼다 없어졌다 생겼다 없어졌다 그래요. 그런 광경이 너무 예뻐요. 그게 정서적으로 저랑 맞는 것 같아요. 타르코프스키하고 미야자키하고 모네하고 정서적으로 맞아요. 바람을 모티프로 자기 얘기를 드러내는 것, 바람과 멀리 있는 문명과 바람과도 같은 자연, 우주적인 것들에 감수성이 있는 것 같아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폴 발레리(1871~1945)<해변의 묘지>라는 시 마지막 구절이에요. 시가 아주 철학적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는 이 구절이 자막으로 올라가면서 시작이 돼요.


(369)

몸의 시간은 정신보다 느리고 조심스럽고 그만큼 안정적이다. 아픈 몸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벌레가 가는 듯 마는 듯 걷는 것 같아, 언제나 몸이 좋아질까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건강한 몸이 아파지는 것도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얼마나 집중도 높게 집필 작업을 했는지, 얼마나 정열적으로 강연을 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내가 몸을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말을 할 수 없는 몸이 퍼져버린 것이다. ‘너 이제 혼자 가. 나는 더 이상 못 가겠어.’ 몸은 몸으로 그리 표현했던 셈이다. 이제는 몸의 시간이었다. 몸의 마음에, 몸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어야 했다. 지금까지 나의 말을 묵묵하게 들어주었던 몸 아닌가. 이제는 내가 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어야 할 때였다. 몸이 걷고 싶을 때 걸을 것이고 몸이 쉬고 싶을 때 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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