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망막에 도달한 빛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각 세포층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키고 뇌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신호를 생성한다. 망막의 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뇌에 전달되는 시각 정보가 결정된다. 가령 원추세포가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에 각각 반응하는 세 가지 세포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도 우리가 무수하게 많은 색채를 인식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세 가지 세포들이 얼마든지 다양하게 조합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색채를 부르고 표현하는 언어에 한계가 있을 뿐 색채는 무한하게 존재한다. 눈은 단순히 빛의 신호를 수용하고 전달하는 기계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세포의 유기적인 얽힘과 신호의 재배치를 통해서 다양한 기표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37)

특히 사람마다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상대적 민감도가 다른 것도 색채의 차이를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가령 원추세포의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어떤 이미지를 볼 때 색의 차이에 더 주목하게 되고, 간상세포의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빛의 양이나 조명 효과와 같은 정보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같은 대상을 보면서 서로 다른 색이라고 지각하게 된다.


(42)

뉴턴은 일곱 가지 무지개색을 원행 다이어그램에 배열한 색상환을 만들면서 세 가지 원색인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맞은편에 보완이 되는 색을 배치했다. 빨간색의 맞은편에 초록색을 배치했고, 노란색의 맞은편에 보라색을 배치했다. 이는 대조되는 색의 상호보완이 시각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뉴턴의 색상환은 1708년 프랑스 화가 클로드 부테에 의해 확장되어 삽화로 그려졌는데, 이것이 오늘날 색상환의 시초가 되었다.


(65-66)

점묘법은 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고흐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프랑스 아를에서의 짧은 시간을 정리하고 파리 근교를 돌아오면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그려냈다. 연이은 우울한 사건들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지녔던 그의 붓질은 점묘법에 기반을 두면서도 훨씬 더 크고 불규칙한 점에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을 더해 그 효과가 더욱 강화되었다. 불안감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은 강렬한 색의 대비도로 곧잘 드러났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대비는 꿈틀거리는 듯한 붓질로 인해 더욱 생동감을 더하고, 태양의 강렬한 빛에 지배받은 주변 경환의 시간에 따른 변화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되고 있다.


(66-68)

뉴턴에 본다는 것이 하나의 자연현상이라면, 괴테에게는, 괴테에게는 인간의 심리적 작용이 더해진 인식 활동이었다. 고흐와 같은 미술가들은 그 영역을 더 확장해 우주와 인간 내면의 탐구를 더하고 재해석해 다시 우리 눈앞에 가져다주었다. 광학이 밝혀낸 시각 작용과 색채 원리에 화가들의 집요하리만큼 열정적인 탐구심이 더해져 탄생한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본다는 것의 의미는 분명 빛에서 출발하지만 빛이 닿지 못하는 인간 심연의 어떤 곳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30-131)

매타물질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제3의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빛의 파장보다 훨씬 저 작은 크기의 금속이나 유전체 등과 같은 물질을 복합적으로 섞여 설계되었으며, 메타원자는 새로운 물질 단위 요소의 주기적인 배열로 이루어졌다. 메타원자는 새로운 광학적 값을 가지는 새로운 개념의 인공원자이다. 1968년 러시아 물리학자 빅토르 베셀라고가 메타물질의 가능성을 처음 제시했으며, 영국 물리학자 존 펜드리 경이 투명망토처럼 빛을 완벽하게 투과시킬 수 있는 음의 굴절률 원리를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90-191)

폴로늄(Po)과 라듐(Ra)을 발견하여 방사선에 관한 연구를 더욱 발전시킨 공로로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과학에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연구실 과학자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마치 동화처럼 자신에게 감명을 주는 자연현상 앞에 선 어린아이기도 하다.” 마리 퀴리를 비롯해 모든 과학자는 눈으로부터 출발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궁극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변의 법칙과 진리를 밣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마리 퀴리는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6)

과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원자를 이해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하는 것을 반복했다. 빛을 탐구하고 욕망하며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얻고 보폭을 맞춰왔던 미술가들 역시 더 낮은 차원의 단순한 세계로 들어가 자연의 본질에 다가가고 그것을 화폭에 옮겼다. 과학자들의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과 미술가들의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다시 한 번 만나 자연현상 너머의 본질에 관한 탐구로 수렴되었다.


(226)

곤살베스는 양자 중첩을 시각화하기 위해 인지적 착시라는 도구를 활용했다. 왼쪽에는 긴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가 바다 위 고정된 다리 위에서 자동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희미한 자동차 불빛과 덩그러니 뜬 달이 외로운 여행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런데 길을 따라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어느 순간 수평선이 시작된다. 오래된 돛단배들은 수평선 너머에 있을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탐험을 암시한다.


(228)

양자역학의 등장은 기존의 고전물리학으로 대변되는 과학사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었는데, 이는 예술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결정론과 인과율의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에겐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양자역학의 세계관을 받아들여 새로운 예술적 감수성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곤 자연과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원적으로 바꿔놓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양자역학의 세계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양자역학이 과학과 예술을 통해 동시에 던져준 자연과 인생에 대한 무수한 질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지금도 온 우주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244)

최근에는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극도의 검정이 등장하기도 했다. ‘반타블랙(vantablack’)이라는 물질인데 빛을 99.965퍼센트 흡수해 사실상 우리가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완벽한 검정을 구현한다. 이 극도의 검정은 빛을 모두 흡수해버려 산란과 반사가 없으므로 물질의 입체감을 완벽하게 없애버리고 2차원의 평면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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