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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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66-67)

 

이 책이 작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기술한 것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문학적 퇴행이라며 평론가들 사이에서 말들이 많았다지만, 그 나이에, 그 지성에, 그렇게 단순한 열정을 가질 수 있다니...., 지성의 겸비건 단순한 경험의 축적이 이루어졌건 간에 관계의 본질을 알만한 나이에 이른 작가가 정말 그렇게까지 사랑에 맹목적이 될 수 있을까? 이 사랑 이야기가 어떤 연극적인 놀이가 아니라 진지한 것이 틀림없다면 부럽기만 하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확실히 알겠다. 매혹, 사랑의 열정, 그건 최고의 사치임에 분명하다. 다른 건 댈게 아니지!

 

아무튼, 독자들 가운데 다수가 아니 에르노의 독백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젊은 날 어느 한 시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지 않을까 싶다. , 어려서부터 자아가 무지 강했거나 일찍부터 일이나 공부에 매진하느라 바빴던 좌뇌형 모범생에게는 비추다. 짜증만 날 수도 있을 테니까. 이 책 덕분에 쿠르베라는 화가를 알게 된 것 뜻밖의 수확이었다


현대 중년여성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는 자기 감정과 행동에 대한 어떤 지적 자기합리화도 없다. 사랑의 대상에 대한 판타지도 찾아볼 수 없다. 상대가 얼마나 훌륭한 인격과 섬세한 취향의 소유자인지 따위에 대한 묘사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애적 사랑의 속성에 대한 허영이나 가식이 전혀 없다. 베르테르보다 훨씬 더 순수한 베르테르라니! 그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13.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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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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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상은 단지 마음의 상태만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몸 스스로의 욕구와 불만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도전적인 시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제 우리 몸이 전하는 이야기에도 귀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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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
베르너 지퍼 지음, 안미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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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반박하기위해 최신 뇌과학 이론을 두루 섭렵하여 소개하는 책이라, 정보 전달 면에서 유익한 책이다. 동물에도 이타적 본성이 조금씩은 발현되며, 인간이 다른 영장류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직립보행도, 털이 없는 것도 아닌, 사회성, 즉 남을 위하는 이타적 본능이 크게 작동하도록 진화되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인간의 신체에서 뇌가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동물에 비해 현저히 높은 것도 먹이를 확보하기 위한 계산 능력이 아니라 사회성 발달 때문이란다. 


그런데 거울뉴런세포의 존재가 전혀 입증된 게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렇게 미처 검증되지도 않은 사실들이 성급하고 공공연하게 회자되었던 건 최근 공감 윤리가 대세로 떠오른 탓이었을 것이다. 내게 가장 재미있는 건 공정함이 회손될 경우 인간 뇌의 공감기능은 즉시 작동을 중지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타인에 대해서까지 이타심을 발휘하는 인간은 드물다는 말이겟지. 공감보다 중요한 공정함...!! 인간의 뇌란 게 뭔가 굉장히 공정한 것같은 느낌이다.


2013.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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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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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흐르게 놔둔 시큰둥한 성향이 어디로 자신들을 이끌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그들을 대신해 선택해 주었다. 물론,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 싶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천직이라 부르는 내부의 강력한 이끌림을 느끼며, 그들을 뒤흔들 만한 야망, 충만케 해줄 열정을 느끼며 자신을 쏟아 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그들은 단 하나만을 알았다. 더 잘살고 싶다, 이 욕망이 그들을 소진했다. (32)


엑스프레스는 그들에게 안락함의 모든 기호를 제공했다. 두툼한 목욕 가운, 재기 넘치는 탈신성과, 유행하는 해변 휴양지, 이국적인 요리, 유용한 노하우, 지적인 분석, 높은 자리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일의 내막, 돈을 별로 안 들이고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장소, 다양한 견해, 새로운 아이디어, 예쁜 원피스, 냉동식품, 우아한 소품, 요령껏 전달하는 스캔들, 최신 유행에 대한 조언. (45)


(운이 좋다면 프랑스로 돌아와 재취업에 성공해서) (...) 지위에 걸맞을 정도, 실크 셔츠와 검은색 멧돼지 가죽 장갑을 누릴 정도의 부스러기 부를 차지할 것이다. (...) 체스터필드 소파, 이탈리아 자동차 시트처럼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천연 가죽 안락의자, 전원풍 테이블, 책 받침대, 양탄자, 비단 걸개, 밝은색 떡갈나무 책장을 장만할 것이다. (137쪽)


소비주의에 잠식당해 방향을 상실해가는 현대인의 삶을 군더더기 없이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몽유병자나 다름없었다.” 카프카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내게는 정수리를 내리치는 책 가운데 하나다이 책은 정말이지 청년들의 필독서로 지정해야 한다어쩜 이렇게 짧으면서도 구체적이고 선명하고 예리하게, 한 젊은이가 사회 질서에 편입되어가는 모습을 묘사해낼 수 있을까애잔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2013.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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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섬의 가능성
미셸 우엘벡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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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다가 우엘벡 책만 네 권째 읽었다. 내겐 그만큼 흥미로운 작가라고 해두자. 늘 어떤 잠재적인 결론보다는 질문만 한보따리 던져주는 괴상한 작가.... 


우엘벡은 소립자에서 제시했던 문제의식과 대안을 이번에는 SF적인 상상력을 더욱 더 가동하여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소립자의 문제의식, 즉 극단적인 성적 자유주의가 인간관계를 무한 경쟁의 시장논리로 파괴시켜서 인간의 소외로 인한 고통을 심화시켰다는 명제는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사회적, 관습적인 성적 금기로부터 해방된현대인에게 있어 가장 큰 불행의 원인은 이제 생물학적 한계다. 노화와 죽음이야말로 인류의 적인 것이다. 우엘벡의 가설에 따르면, 노화는 성적 쾌락과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중년 이후의 세대를 소외시키고, 죽음은 많은 종교의 숙원이자 인류의 가장 큰 관심거리 중 하나였던 영생(불멸)에의 욕구를 좌절시킴으로써 인간을 갈급과 욕망으로 인한 고통에서 초연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립자에서 제시되었던 두 가지 가능한 유물론적(생물학적) 대응방식이 이번 작품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주인공 다니엘은 소립자의 브뤼노다. 끊임없이 성적 쾌락을 시도하고 실재로 완벽한 환희의 순간을 맛보기도 하지만, 중단 없는 성적 쾌락의 추구와 나이듦은 성적 매력의 경쟁에서 그를 처절하게 버림받게 만들고 그로 하여금 철저한 고립과 소외감을 맛보게 만든다. 미셸의 생화학 프로젝트는 벵상의 유전자 복제를 통한 신인류 탄생으로 완성된다. 성적 욕망도, ‘관계 맺기에 대한 욕구도 거의 없이 평온한 상태에서 자신의 유전자 조상의 기록을 읽고 기억을 유지해나가는 임무만을 묵묵히 수행해가는 수많은 중간자들이 신인류라 불리는 복제인간들이다. 올덕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시민들을 닮은 이들은 욕망과 집착이 거의 없는 상태,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상태에 도달한 이들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조상인 다니엘1의 삶을 진지하게 독해하려 애쓰던 다니엘25는 마침내 멋진 신세계의 버나드와 존처럼, 무욕망과 평온의 세계를 탈출하여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랑과 이에 동반되는 고통의 세계를 찾아 나선다.

 

그러니까 유전학도, 집착으로부터의 해탈도 노화와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작가의 결론인 듯하다. 여전히 삶은 모호한 가능성의 빛만을 비춘 채 우리에게 던져져 있고, ‘사랑이라는 가능한 섬을 찾아 방황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브뤼노와 다니엘은 왜 그토록 육체적 쾌락에 집착하는 걸까? , 마치 자기 꼬리를 붙잡기 위해 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강아지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사랑이란 게 육체적 관계로만 수렴되는 게 아닐 것이며, 노화와 죽음이 극복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을 텐데....

 

물론 작가가 이런 식의 반론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기야 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과감하고 선명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프랑스 사회의 자유분방함이 부럽기도 하다. 한 사회나 문명이 합의한 윤리 밖을 생각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것, 그게 오히려 그 사회가 문명사회임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예컨대, 자연의 질서에 의해 정당화되는 윤리규범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는 이런 작가가 존재하는 사회 말이다

 

2013.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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