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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이옥전집 3 : 벌레들의 괴롭힘에 대하여 ㅣ 완역 이옥 전집 3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3월
평점 :
이옥 전집 3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앞부분은 <백운필>, 뒷부분은 <연경>이라 이름 지었다. <백운필>은 그가 충군에서 해배된 이후 경기도 남양에서 탈고 했다고 한다. <백운필>은 새, 물고기, 짐승, 벌레, 꽃, 곡식, 과일, 채소. 나무, 풀 등에 관한 글이고 <연경>은 담배에 관한 글이다. <백운필>은 거의 박물지라 할만하다. 이옥은 서문에 해당하는 소서(小敍)에 이 글을 어쩔 수 없이 썼다고 밝혀두었다.
그가 있던 백운은 궁벽한 곳으로 사람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고 별로 즐기지도 않은 모양이지만 심심풀이 삼을 놀이기구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혀를 대신하여 이글을 적었는데 또 무엇을 적을 것인가를 두고 깊이 생각한 듯하다.
하늘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람들이 천문을 공부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천문을 공부하는 자는 재앙을 입게 마련이라 그것을 할 수 없고, 땅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지리를 아는 자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니 그도 할 수 없고 사람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남에 대해 얘기를 하자니 남들 역시 자기 얘기를 할 듯하고 문장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만 문장을 우리가 추켜올리거나 폄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또한 얘기할 수 없다. 귀신 이야기도 조정의 이야기도 석가나 노자 얘기도 할 수가 없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또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그가 택한 것이 짐승, 물고기, 꽃, 곡식, 과일 등이다.
동식물의 생태를 면밀히 관찰하여 그것을 인간사에 빗대어 사람을 관찰하는 표본으로 삼았다. 생물도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여기에 이옥의 생각이 적확한 언어로 더해지니 스스로를 경금자라 칭했던 그의 뜻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뉴월의 벌레들>이라는 글은 오뉴월 무덥고 후덥지근한 방 안으로, 몸으로 달려드는 벌레들을 살피다 적은 것이다. 천지에 생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모두 벌레이고 그 중의 대표가 사람이라, 이 사람의 면면을 뭇 곤충과 비교했다.
작은 산 무성한 계수나무 숲속에 깃들어 만승의 천자에 대해서도 오만하고, 청색 자색의 인끈을 지닌 공경을 업신여겨 돌아보려고 하지 않으며 스스로 그 한 몸을 깨끗이 하는 자를 달관의 안목으로 보면 곧 일개 반딧불이다.
고관대작의 집에 잔약한 객이 실세한 자를 등지고 권세 있는 자를 쫓아, 이익이 있는 곳을 백방으로 뚫으려 시도하여 달콤한 것을 핥고 빨기를 혹 남에게 뒤질까 저어하는 자를 달관의 안목으로 보면 곧 일개 파리이다.
감사와 수령처럼 뿔 나팔을 불고 아기(깃발)를 뽐내며 남의 뼈를 깎고 피를 약탈하여 그 백성을 파리하게 하고 제 배를 불리는 자를 달관의 안목으로 보면 곧 일개 모기이다.
이옥의 관찰에 의하면 이백년 전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글 곳곳에 보이는데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그의 생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 형식이다. 상추쌈에 관한 글에서는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이고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 밤길에 만난 반디와 모기가 상대방의 흠을 잡아 서로를 공격하는데 사용한 인용과 대화체 형식. 들은 이야기를 실감나게 옮겨 적는 방법 등 참고할 것이 참으로 많다.
‘담배의 경전’이라는 뜻을 가진 <연경>에는 그의 벽이 잘 나타나 있다. 담배 재배방법에서부터 유래와 성질, 담배의 쓰임, 담배 피울 때 쓰는 도구, 맛있게 피우는 방법, 귀격, 복격, 묘격, 염격, 진격 등 담배의 품격까지 다루었다. 그가 적어놓은 담배 피우기 좋을 때를 보면 ‘달빛 아래에서 좋고, 눈 속에서 좋고, 빗속에서 좋고, 꽃 아래에서 좋고, 물가에서 좋고, 누각 위에서 좋고, 길가는 중에 좋고, 배 안에서 좋고, 배갯 머리에서 좋고, 변소에서 좋고, 홀로 앉아 있을 때 좋고, 벗을 마주 대할 때 좋고, 책을 볼 대 좋고, 바둑을 둘 때 좋고, 붓을 잡았을 때 좋고, 차를 달일 때 좋다.’ 담배가 맛있을 때를 보면 또 이와는 다른 많은 상황들이 전개되는데 참으로 담배를 맛나게 피웠을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담배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영화에서 송강호가 담배피우는 모습을 보고 난 후였다. 바람 부는 벌판에서 그가 피우는 담배가 어찌나 맛있어보이던지....... 내가 그려보는 이옥의 모습은 송강호와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다. 그러나 담배 피우는 모습만큼은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왠지 그들과 함께 있으면 담배를 아주 맛있게 피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옥전집을 아껴가며 읽었다. 마무리를 지었다는 편안함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전작을 읽으면서 이런 아쉬움이 싫어서 마지막 <명암>에 관한 리뷰만은 쓰지 않았다.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늘 소세키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읽을 책이 넘쳐나므로 다시 보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옥의 책을 다시보기 위해 마무리를 지었다. 지난 2010년에 만난 책들 중에서 가장 아끼고 오래 마음줄 수 있는 책으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