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
詩/김민서
해사한 소국들의
얼굴 위로 햇살이
투스탭으로 건너가더니
금천교 너머 조선의
땅에 비 내립니다
인정전 빈 뜰에서
시간의 주름은
쥘부채처럼 펼쳐지고
화계 위 굴뚝에 갇힌 꽃사슴의 눈길
만질 수 없어도 느낄 수 있는
당신의 체온처럼 따사롭습니다
몇 백 년 전이던가요
고단한 시간의 다리 위에서 그대가
젖은 지우산 아래 곁을 내주던 것이
당신의 궁에는 여전히 비 내리고 나는
우산도 없이 내의원 담장을 끌며
부용지에 이르렀습니다
인적이 드문 궁 뜰 너머 서울의 하늘은
먼 나라 하늘처럼 푸르고
나는 부용정 그늘에 젖어 하릴없이
담장을 넘는 호랑나비 한 마리를 봅니다
나비는 언제나 바람을 몰고 와서
바람을 남기고 사라지는데
나비의 오는 곳과
가는 곳을 나는 모릅니다
나비와도 같고
바람과도 같은 당신
온몸으로 출렁이는 그대의 바람 속에 서서
나는 뜨거워진 체온을 식히며
한때 나의 꿈이었던 그대와
나의 불가해한 인연을
마음껏 서러워하겠습니다
어제 저녁 거리에서 돌풍과 천둥번개를 만났다.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였다. 갑자기 하늘이 검은 보자기를 펼쳐놓은듯 캄캄해지더니 자동차 지붕을 뚫을듯이 비가 쏟아졌다. 차를 멈추고 한참 거리를 내다봤다. 소나기 채찍을 맞은 단풍잎들은 바람에 등 떠밀려 알지 못할 곳으로 마구 흩어졌다. 겨울은 저렇게 급하게 잎을 보내야할 이유가 있는 걸까? 기다리지 않아도 와야할 것은 오고 보내지 않아도 가야할 것은 다 간다. 남겨진 자는 '마음껏 서러워'하는 노래를 부를 뿐이다.